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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태엽 Nov 05. 2024

아픈 몸 수선하기 026

10월 16일

한의원에 다녀왔다. 이틀 연속이다. 어제 갔다가 밤에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서 도저히 버티질 못했다.


화요일 이야기부터 하겠다. 의사 선생님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피부색이 거멓게 죽으면 문제가 되지만 붉은색이고 고통과 진물을 동반하는 건 나으려고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니 아프겠지만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목요일까지 상태를 보고 그때도 한의사 선생님이 대충 잡아놓은 마지노선을 넘지 못하면 스테로이드를 소량이라도 복용하면서 치료하자고 하셨다.

한의원에 오면 마음이 뭔가 편안해져서 집에서보다 잘 잔다. 침을 다 꽂은 채로 토막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종아리 옆쪽에 있던 오래된 상처에서 진물이 흐른 자국을 남기고 말라 있었다. 몹시 오염된 눈물 자국 같았다…. 피부가 우는 것 같았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멋대로 터져 나오고, 양도 조절할 수 없고… 닮긴 했다.

나는 눈으로도 울고 다 터진 피부로도 운다. 몸에 눈물이 많이 차서 눈물샘으로 뱉는 것만으로도 부족한가 보다.


어쨌든. 치고 올라가면 한방치료를 계속하고 아니면 양약을 쓰기로 했으니, 꼭 이틀만 버텨보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안 됐다. 일부러 집에서 일찍 자려고 밖에서 뻐겼다. 간호사님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선물해 주신 책을 읽었다. 8시쯤 집에 돌아가는데 그때부터 귀가 이상했다.

한 시간쯤 지나니 딱 죽을 것 같았다. 악귀가 귀에 달라붙어 송곳 같은 이빨로 물어뜯는 게 분명했다. 내 귀는 실제로 뜯겨나가는 일은 없어서 악귀의 이빨에 몇천 번이고 깨물릴 수 있다. 차라리 한번 씹혀서 뜯겨나가면 다음엔 뜯길 귀가 없을 텐데. 제대로 먹은 게 없는데 속이 메슥거렸다.

녹슨 못으로 몸을 긁고 고무망치로 퍽퍽 치는 듯한 통증… 실체 없는 통증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저번에 처방받고 남았던 스테로이드를 먹었다. 먹으면서도 바른 환자가 되고 싶은 건지 한의사 선생님의 말을 어기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내가 망설이자 언니가 화를 냈다. 약을 먹고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크게 효과가 없었다. 약을 먹고도 몇 시간을 고통에 시달렸다. 겨우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귀를 부여잡고 헐떡였다. 아침에도 엉엉 울면서 피부과를 갔다.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눈물이 났다. 길을 걷는데 출근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눈물이 안 멈췄다. 선을 넘은 고통은 비참함도 수치스러움도 없다. 그냥… 너무 아팠다. 그냥 덜 아프고 싶었다.

원래 동네 피부과 의사 선생님은 엄청 과묵하셔서 진료가 1분 내로 끝나는데 이렇게 말을 많이 하신 건 처음이었다.

심각한데 약을 며칠간 안 드셨네요.

많이 바쁘셨나요.

너무 안 좋아서 약 멈추시면 안 돼요.

약 용량 조금이라도 줄여야 해서 광선치료하고 가세요.

광선 치료 효과가 좋아요…

부어터져 반쯤 감긴 눈으로 광선치료를 받았다. 커다란 자외선 패널 앞에 서서 2분간 앞뒤로 자외선을 쬐는 시술이었다. 피부가 약간 따끔거리긴 했는데 그 정도는 이제 가뿐히 참는다. 비척비척 약국으로 갔다. 걸음마다 뭔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약을 받고 집에 와서 잠깐 누워 있었다. 멍하게 천장을 보는 사이 한의원이 열자마자 예약한 시간이 다가왔다. 귀신처럼 일어나 옷을 입고 한의원에 갔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결국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치료 기간이 더 늘어날 것 같지만 그래도 살아야 치료를 하니까 그렇게 됐다. 죽을 만큼 아프면서 빨리 낫기보다는 은은하게 조금 더 아픈 게 나을 것 같았다. 속전속결이 나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빨리 죽는 길이었다. 약을 먹기로 결정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피부로 회복력은 잘 가고 있다고 하셨다. 이제 스테로이드를 먹으면서 괜찮아진 맥이 주저앉지 않게 잡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위 건강이 한방치료만 할 때보다 더 중요해져서 앞으로는 저녁에 먹던 요구르트도 먹지 않기로 했다.


요 몇 회 진료할 때마다 발목과 손목 피부 신경이 많이 죽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무슨 전기로 자극 주는 기계로 여기저기 자극을 주시더니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신경이 생각보다 많이 죽었다고 하셨다. 신기했다. 밤이면 발목이 너무 아프고 왼쪽 손목 피부가 쩍쩍 갈라져서 따가운데, 왜 전기 자극 신호는 못 느끼는 걸까? 통증이란 건 뭘까. 왜 염증 때문에 일어나는 통증만 잘 느껴지는 걸까. 이것도 뇌가 착각하는 건가. 사실 발목 통증은 별로 강하지 않은데 내 편도체가 지레 겁을 먹고 과대 해석을 해버리는 것이다….

모르겠다. 생각 깊이 하지 말라고 단단히 충고하셨으니 그만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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