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통과의례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나는 유난히 첫 번째 손가락이 시리고 아프다.
첫째 딸 우리 재은이는 2020년 열세 살이 되었다. 얼굴도 이쁘고, 마음도 이쁜 재은이는 남의 아픔을 자신이 아픔처럼 느끼는 따뜻한 아이다. 주위사람들에게 먼저 손길을 내미는 인정 많은 우리 재은이지만 이런 우리 재은이는 상대적으로 아주 예민한 아이다.
19개월 때까지는 아빠는 옆집 아저씨였고, 엄마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가지 않았다. 친정에 잠시 맡기고 나가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지치지 않고 울었다. 저녁잠도 없고, 아침잠도 없는 재은이는 무조건 캥거루처럼 엄마 품에 있어야 웃음을 찾았다. 나는 가끔씩 이런 재은이에게 지치고 화가 나 모른 척할 때도 많았다.
재은이를 이해해 주고 온정 한 사랑을 나눠줘야 할 때 둘째가 태어났고, 동생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안 된 28개월 재은이를 힘들다는 이유로 친정으로 보냈다. 두 달 정도를 우리 집과 친정집을 오가면서 재은이는 두 집 생활을 했고, 심리적으로 아이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속으로 외면하고, 무시했다.
아이의 정서적인 감정을 읽어주기엔 그 당시 내가 너무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린 남편의 근무지 이동으로 계룡으로 이사를 갔고, 재은이는 어린이집이 구해질 때까지 할머니댁에 머물기로 했다. 이를 직감한 듯 재은이는 함께 같이 있고 싶은지 자꾸 안 떨어지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5년도 재은이는 서울로 이사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 오는 일이 잦았다. 화장실이 무섭다고 꾹꾹 참고 있다가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음과 동시에 실수를 해버리는 것이다. 좋으신 선생님 덕분에 연락이 오면 얼른 옷을 들고 교실에 있는 재은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옷을 갈아입혔다. 하교시간이 다 된 시간에 실수를 할 때면 담임선생님 배려로 미리 아이를 데려 오기도 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아이를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화를 내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아이에게 내뺃었다. 남편도 권위적인 부모라 아이의 편에서 생각해주지 못했고, 되려 혼을 많이 냈었다. 또한, 아이가 제대로 집중도 못하고, 옷이나 소지품을 잃어버리고 오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의 직감으로는 아이가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는 조용해서 티는 안 났지만, 엄마인 나는 알 수가 있었다.
마침 친정아버지 친구분 소아과에 다니고 있던 터라 아저씨에게 재은이의 상태를 말씀드리니 상담받아 볼 것을 권유하셨고, 후배병원을 소개해 주셨다. 병원에서는 아이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검사결과를 듣고서 나는 정말 심한 충격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주의력결핍 ADHD가 우리 딸이라는 것이다.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선천적인 것이니 너무 죄책감 갖지 말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에 비해 불안감도 높은 이유는 뱃속에 있을 때 (시댁문제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아이를 엄마인 나는 이해를 못 해주고 나를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친정에 맡기고, 혼내고, 어린아이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던 죄책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우리 재은이는 심리치료인 놀이치료를 했고, 집중력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약물치료의 효과는 좋았다. 약물이 맞는다는 건 큰 축복이라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집중력이 좋아지니 학업성적도 좋아졌다.
하지만 불안감은 꾸준한 치료와 함께 시간이 흘러야 한다고 한다. 치료사 선생님과 함께 할수록 좋아져 화장실에서 실수하는 일도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 재은이는 서울에 있는 삼 년 동안 치료를 꾸준히 받았고,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에 다음 근무지인 포천으로 이사 가면서 약물치료만 하고,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심리치료를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