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운수좋은 날

앱등이의 복 받은 날

by 관리비

오늘도 가을바람의 공격에 아침부터 일어나기 힘든 하루가 시작되었다.


침대에 내려와 바닥을 밟으니 냉기가 발로 스며들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이 집에 온기가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내려온 침대를 벗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평소보다 빨리 온 셔틀버스에 몸을 싣기 위해 나는 달려야 했다.


그리고 도착한 사무실. 오늘은 다른 선생님을 대신해 본점에 위성처럼 붙어있는 분점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로 한 날이다. 신난다.


그곳에는 나의 모니터를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고 조용한 공간이어서 독서실 같은 분위기에서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평소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다소 좁은 닭장 같은 사무실이다. 빼곡히 들어가 있는 책상들은 누군가 전화라도 한다면 그 전화 내용을 모두가 들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는 부끄러워 남이 내 통화소리를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다 상대방의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해 큰 목소리로 통화하기 일쑤였다. 그렇게라도 된다면 옆에 있는 선생님은 내 목소리에 시끄러워 더 큰 소리로 통화를 했고 나도 그것이 시끄러워 더 큰소리로 통화를 하며 결국 모두가 시끄러워지게 목소리 배틀이 일어나는 그런 공간이다.


그런 곳에서 벗어나 개인 간 거리 유지가 가능하며 조용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상담원 선생님도 출근하는 날이라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점심도 같이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분점 사무실. 나는 상담원 선생님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일을 깨작거리고 있었는데 최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신고건 0건이래.”


두둥. 이 말은 곧 내가 원래 일하던 사무실로 복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상담원 선생님에게 비보 아닌 비보를 전하자 자신은 이미 출발했다며 사무실에서 보자는 말을 남겼다. 이것을 핑계 삼아 점심시간 지나서 이곳 업무를 마무리하고 들어간다고 총괄 주임님에게 말했고 다행히도 그러라 대답해줬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기뻐할 새도 없었다. 나는 계속되는 전화를 받아야 했고, 상담원 선생님은 연결되지 않는 BC카드 고객센터에 50분째 전화연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50분 정도 BC카드사 안내 멘트를 들으며 일해야 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와 상담원 선생님, 최 선생님, 그리고 박 경위님과 점심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즐거웠다. 제육 두루치기에 쌈을 싸 먹으며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먹으며 참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가 함께 지내는 강아지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로 웃어가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와 헤어지고 나는 또 닭장 같은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11월까지 일하는 선생님이 병가로 갑자기 들어간다는 비보를 접했다. 나도 병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선수를 뺏긴 거 같았다. 어찌 준비한 시나리오인데… 순간 막막했지만 그녀도 아픈 것을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


스아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날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액정까지 모두 깨져버린 아이폰 6s를 아는 분의 중고 아이폰 12프로로 바꾸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얼마냐고 물었는데 읭? 그냥 준다고 한다. 내 눈을 믿기 힘들었다. 건조한 눈을 비비며 카톡창을 보고 다시 보았지만 그냥 준단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나 다시 물었지만 껄껄 웃으며 그냥 준단다. 너무 기쁘고 갑작스러운 큰 선물에 겁까지 났다.


퇴근 후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 지나가고 저녁 8시 즈음. 나에게 아이폰을 하사하신 그녀의 남편과 스타벅스에서 접선을 했다. 머리숱이 적은 그녀의 남편은 데이터를 모두 새로 산 아이폰에 넘긴 후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네 여기 액정필름도 같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대감님이 하사하신 엽전이라도 받는 마냥 허리를 숙여 감사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었다. 딱히 그 말 말곤 할 말이 없었다. 아이폰 새로 사셔서 축하드려요~도 좀 이상하고 이렇게 좋은 아이폰 주셔서 성은이 망극합니다. 도 좀 이상하고. 좀처럼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며 상황에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감사함을 어찌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궁리하며 세포 하나하나 들썩이는 마음으로 감사하다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 얼떨떨했다. 내 손에는 나름 최신형(나에게는 너무 최신형) 아이폰이 들려있었고 그와 더불어 챙겨주신(어떻게 여기서 더 챙겨주지?) 고급 액정필름이 함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으며 데이터를 옮기고, 애플 워치를 다시 연결하고, 페이스 아이디를 등록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어쭈. 나에게 새 아이폰(최신형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최신형이다.)이 생겼다!!! 외치고 싶은 마음 한가득.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하우스메이트가 졸린 눈을 하고 침대에 누워있어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다.


이런 날이 있었다. 나에게 중고가로 80만 원 상당하는 아이폰을 턱 하고 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이런 날이 있었다. 이런 거 받기만 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나에게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마음껏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벌써부터 설렜다. 주는 기쁨이라 했던가. 그녀에게 돌려줘야지. 더 크게. 더 많이. 참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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