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몇 개 찍히지도 않았는데 여권 기한이 만료됐다.
어쩌면 이번 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새 여권을 만들어야 하니 여권 사진 잘 찍는다고 소문이 자자한 북부청사 앞 오진관엘 갔다. 조금은 허름하고 어수선한, 앉을 의자도 변변찮은 대기실 구석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차례가 됐다고 커튼 안쪽으로 들어오란다.
나무 의자 하나와 삼각 다리 사진기 한 대가 전부인 실내. 의자에 똑바로 앉아서 어깨 펴고 눈 크게 뜨고 턱은 당기고 활짝 웃으세요. 찰칵.
아니 아니 이 안 보이게 다시 웃으세요 찰칵찰칵!!
뭐라구요?이 안 보이게 활짝 웃으라구요? 지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하십니까!!!
하마터면 따질 뻔 했다.
혹시 살짝 웃으랬는데 내가 잘못 들은 겨???
아이고 이런... 무안한 채로 촬영이 끝났다.
대기실에 모니터 두 대가 있는데 견출지에 「수술실2」라고 써 붙인 모니터 앞에 불러 앉혀졌다.
좀 전에 찍은 사진을 모니터에 좌악 펼쳐놓고 맘에 드는 걸로 고르란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 뭐. 하면서 그래도 웃는 얼굴이 좀 낫지 않을까 하고 이거요! 한 장을 찍었더니 순식간에 다른 사진들을 싹 밀어 없애고 선택당한 사진 한 장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후 '어디를 고칠까요?' 묻는다.
'예? 여권 사진인데 왜 고쳐요?' 내 대답과 상관없이 2번 수술실에서 내 사진은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잔주름이며 검버섯을 슥슥 지우고 머리도 가지런히 단정하게 만들어놓았다.
'더 고칠 데 있나요?' 원하기만 하면 이영애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진관은 여권 사진을 잘 찍는 게 아니라 모니터 수술실에서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거였다.
오진관 사장님 손에서 이십 년 젊어진 사진을 들고 가 남색으로 바뀐 새 여권을 받았다.
이제 고소공포증으로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비행기와 친해질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