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스쿼시
문뜩 행복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지치는 듯했지만
12시간만에 잠자리에 등을 붙이며 눕는데
문뜩, 행복했다.
하루동안 굽어 있던 내 척추가 서서히 펴지고
쉴 새 없이 굴러갔던 내 머리도 전원이 꺼지며
'엄마'를 더 이상 찾지 않는 시간,
아무 소리도 안 들어도 되는
온전한 고요함에 행복해진다.
아, 고된 하루였다,
더할 나위 없는 하루였다.
새벽반 스쿼시 2시간
신랑 출근 커피 드립
애들 아침 식사
집 청소
영업업무 시작
첫째 점심 준비
다시 영업업무시작
공부방 2타임
저녁식사 준비(시장보기)
애들 독서 및 학습
애들 싸움 중재 (가정교육)
뉴스 영어 낭독
그리고, 설거지.....
... 는 내일 아침으로 연기
새벽 알람소리와 함께
난 스쿼시장에서 라켓을 들고 서있다.
스쿼시장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이 없다.
기계처럼 일어나서
기계처럼 양치와 세수를 하고
기계처럼 걷다 보니 잠이 깼고
새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스쿼시장 벤치에 앉아
운동화 끈을 묶고 있었다.
나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한 회원들의
'찍찍'거리는 운동화 마찰소리,
스쿼시장을 웅장하게 울리는 공 타격소리에
정신이 번쩍 깨어난다.
불과 20분 전 이불속에 있었던 나는
딴 세상에 서 있다.
라켓을 든 나는 전투태세로
스쿼시장에 입장한다.
'아, 오늘도 20분의 고비를 넘겼다.'
1시간의 강습과 게임
땀으로 젖어있는 운동복과
달아오른 몸뚱이로
잠시 고민한다...
이만하면 됐나, 집에 갈까?
출근하는 회원들로 조용해진 코드장
새벽 기상이라는 고난도 고비를 넘긴 것
단단히 묶긴 운동화 끈
이 모든 게 아깝다는 계산이 선다.
충분하지 않다. 더 할 수 있다.
물 한잔을 마시고
고민의 시간은 3초를 넘기지 않는다.
4초가 되는 순간
난 집으로 향할 확률이 높아진다.
공을 튕기면 90% 성공이다.
그렇게 2시간의 운동시간을 확보한다.
선택의 기로들에서
선한 선택들을 한 나 자신을 사랑하게된다.
벌게진 얼굴
땀 냄새가 진동하는 운동복
흐물거리는 몸뚱이
만신창이가 따로 없지만
불순물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해진 정신 하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스쿼시 가방만 내려놓고
남편의 출근 커피 원두를 내리는 내가 기특하다.
출근하러 성실히 일어난 남편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숨 가쁘고 치열했던 새벽시간은
하루를 살아가게 할 의지이자 에너지다.
그 시간을 보내고 온 어미는
하루동안 수없이 찾아 올
불안, 걱정, 나태의 악령에
무너지지 못한다.
무서울 게 없다.
그 새벽 2시간 보다
더 힘들 일은
오늘 하루 중 없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