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민주주의에서 내 곁의 민주주의로 빠른 태세 전환을
훌륭한 후배 교사 한분이 고민을 나누었다.
학생 한명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이후 왜 시민들은 (시위에 나가야 할 상황인데도) 시위에 나가지 않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질문을 했다고 한다.
아이쿠야... 지난 겨울 시민들의 지치지 않는 싸움이 아이에게 큰 인상을 주었나보다.
나의 경우엔,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엔 매주 시위에 나가지는 않았다.
내란 이후 첫 탄핵안 의결 때 여의도 국회의사당 바로 앞, 그 다음번 탄핵안 의결 때도 바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꼭 중요한 집회와 시위는 추워질 때쯤 시작한다는 이상한 우연의 일치를 지난 젊은 날 몸으로 익혀온 터라, 추위가 두려웠다. 나이가 드니 내복을 껴입고 핫팩을 붙여도 뼈가 시리고 허리가 아프다. 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나면 다음날엔 목소리를 내기도 힘들게 되었다. 따뜻한 날 다 보내고 왜 꼭 겨울에! 한스러웠다.
첫 집회에서 본 아래 피켓이 너무나 내 마음과 같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부터 이어진 집회와 시위는 매주 끊임없이 2016년 12월 탄핵까지 이어졌다. 언제든 짊어지고 나갈 수 있는 시위 배낭을 딱 챙겨두고 거의 2년을 주말마다 밖에서 보냈다. 추운 날엔 따뜻한 커피나 차, 가끔은 달달한 뱅쇼를 끓여 짊어지고 나갔다. 그 전의 쌍차 투쟁은 '죽음의 순번표를 받아든 노동자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며 거리 미사로 함께 했고, 세월호의 긴 투쟁 때는 '나라도' 가서 자리를 채워야지 하는 심정으로 나갔고, 탄핵 촉구 집회에는 힘을 얻으러 나갔다. 광장의 군중 속에 섞여 들어 있으면 내가 민주주의의 주체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뿌듯했고, 힘들지만 그 끝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고 나갔다.
작년 겨울 첫 집회에서 물결처럼 밀려드는 젊은이들을 보며, 나는 제일 먼저 생각했다. "아, 이제 매번 나오지 않아도 괜찮겠구나." 그만큼 20대~30대 청년들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늠름하게 자리를 지켜주었고, 그 추웠던 겨울에도 키세스가 되어 거리에서 버텨주었다. 그래서 나는 집회에 안심하고 가끔 갔다.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장강의 뒷물결들은 저들에게만 온 것이 아니었다. 적자 운영으로 버틴다는 본부에 가끔 지원금을 쾌척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지웠다.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4월까지 이어진 광장은 역시나 다시 역사를 바꾸었다.
탄핵선고에 온 국민이 행복해하던 4월 18일, 전장연 소속 활동가가 혜화동 성당 십자가 탑 위에 올랐다. 전장연이 장애인 권리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탈시설을 천주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협조하지 않는 점에 대한 항의였다. 아들 학교가 혜화동 성당 바로 옆이어서 아침마다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깃발, 텐트, 플래카드를 보자 맘이 착잡했다.
너무나 놀랍게도 바로 다음날부터 성당은 문을 굳게 닫았다. 길 앞에는 경찰버스와 승용차 한두대만 세워져 있고, 탑으로 가는 모든 접근 경로는 차단되어 있었다. 고공농성의 처절함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그들을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시민들의 연대의 몸짓, 작은 표현, 편지, 간식 하나임을 안다. 조선소 골리앗에서도, 재능교육 옥상에서도, 톨게이트 꼭대기에서도 그들이 손 흔드는 모습 정도는 지상에 모인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성당에 오른 그들 곁에는 아무도 접근조차 할 수 없어보였다.
성당의 처사가 어떤 이유에서였든, 공권력의 행사를 위해 타협한 것이었든, 활동가의 극단적 해동을 막기 위한 것이었든, 여러 장애인 수용시설을 운영하는 기관의 입장 때문이든, 아침마다 지나치는 나는 너무 속이 아팠다. 사람들이 모이면 같이 한번 가야지 하며, 농성 첫날 아들에게 친구들과 함께 보라며 관련 기사를 보내주었던 나는, 그래도 모태신앙으로 가톨릭에 소속된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양아치같다고 생각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명동성당 지하에 으리으리한 지하상가가 지어졌을 때, 바로 이 구절이 떠올랐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요한복음 14:06
함께 찍힌 복음 말씀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결국 고립된 그들은 15일만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며칠 전 학교 가는 길에는 뜨악한 플래카드를 보았다.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혐오를 저렇게나 직접적으로 표현한 국회의원의 플래카드라니(세상에. '전장연 방지법'이란다. 전장연은 해충인가?) 저것을 바라보는 전장연 사람들, 장애인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시민들이 거대한 악에 맞서 광장의 정치에 몰두한 사이, 유권자의 작은 권력에 아부하여 거대 권력을 얻어내려는 사람들은 이미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구분하여 혐오와 차별을 제도화하고 있었다.
광장의 민주주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매몰되는 내 곁의 사람들의 인권과 평화는 어떻게 지켜가고 확장시킬 수 있을까.
광장에 모였던 그 젊은이들은 저 플래카드를 보고, "출근길 편해져서 좋네" 해버릴까?
사람 사이를 가르고 구분하여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은 포퓰리즘으로 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광장에 나가 싸우지 않아도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
국가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감시하고, 수정하고, 내 곁의 사람들의 손을 잡고 곁에 서는 것이 깃발을 들고 광장에 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광장의 정치는 중요하다.
3.1운동부터 6.10만세운동,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2008년 촛불시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시위, 두 번의 탄핵..
광장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대한민국의 빛나는 민주화 역사는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그래서 언제나 학교교육이나 행사, 언론을 통해 계기교육의 소재로 활용되곤 한다. 청춘, 피, 조국, 민주주의, 순수... 관련된 모든 것이 낭만적이기까지 한 반독재 투쟁의 역사다.
그러나, 이제 광장의 역사에만 집중된 방점을 우리 곁의 민주주의, 나의 행동과 사유, 시민의 연대로 나누어 찍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좀더 부드럽게, 좀더 천천히, 좀더 가깝고도 세밀한 민주주의 교육이 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