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은 언제나 힘들겠지만. - 영화 <해피엔드>, 덕질의 시작
교사였던 사람이라 그런가, 잘 만든 성장 영화를 보고 나면 너무 행복하다.
전체주의, 자이니치 차별, 비국민, 감시사회, 지진, 안전이라는 명제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네오소라 감독의 첫 장편 극영화 <해피엔드>.
둘째 아들과 함께 이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처음 갔을 때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행복했고, 아들은 마음이 젖어있었다. 관객선물인 포스터를 못받아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가, 두번째 포스터가 떴다는 아들의 정보에 따라 지난주에 2회차 관람을 하고 포스터까지 받아왔다. (정식 포스터가 아니어서 속상.)
사회학적, 역사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무궁무진한 영화. 하지만 난 그저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감격했다. 분신같은 친구들과 일상의 기쁨을 나누는 다섯 명의 아이들.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주지만 또 분신임을 포기하고 홀로 우뚝 서기 위해 이별하는 슬픔까지 함께 겪는 모습.
영화의 첫 타이틀이 나올 때는 다섯 아이가 밤거리를 같은 방향을 향해 신나게 달렸고, 영화의 마지막 타이틀이 나올 때는 고가육교 위에서 하나씩 둘씩 각자의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어땠어?" "너무 좋다"
"해피엔드다. 그치?" "반어적인 건가? 난 좀 슬픈데"
"왜?" "나도 내 친구들과 헤어질 때가 온다는 게.."
"너희한테는 그게 해피엔드지. 각자가 서로 덕분에 스스로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거니까. 해피엔드야."
딱 고3. 영화 주인공들과 같은 나이. 학교에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과 행복하게 3년을 보내고 있는 아들의 불안감과 슬픔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 아니겠니, 아들아. 그 길이 계속 이어질 거고, 언제나 해피엔드이길 빌어.
그치만, 가는 길은 늘 힘들거야. 응원할게.
소라 네오 空音央 감독.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막내 아들. 아. 예술은 역시 재능이구나. 다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영화 오퍼스의 감독. 거장의 늙은 손끝과 거친 숨소리와 고집스러운 눈빛을 담아냈던 오퍼스도 너무 좋았고, 지금도 내 플레이리스트 1순위다.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덕질하게 되다니. 이런 천재집안 같으니라고. (신은 역시 불공평하다). 유명하고 독특하고 훌륭한 아버지를 둔 덕에 많이 외로웠을테지만.
소라네오 감독은 일본의 거장 감독의 계보를 잇는 신예감독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각본도 촬영도 자기만의 아우라를 가진 감독들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하마구치 류스케, 그리고 미야케 쇼. 그리고 이제 소라네오. 이 순서 그대로 나의 일본감독 덕질 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 항상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결국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좋아한다. 왓챠 구독을 끊지 못하는 이유다.
이 감독들의 비슷한 점은 또 있는데, 바로 워크숍 형식으로 배우들을 훈련시킨다는 점. 배우 경험이 없는 일반인도 함께 자주 만나고 놀고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서서히 작품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영화에는 위화감이 없다. 해피엔드의 주연 두 남자배우도 그렇다. 너무 멋있는 배우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 특히 쿠리하라 하야토에 푹 빠져버렸다. 그 라인과 눈빛이라니.
영화 내용으로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그것은 여기서는 생략. 온갖 인터뷰와 평론들이 나와있다.
일본어를 배우면서 더 폭넓게 일본 음악과 영화 등을 접하고 있다. 정말 놀랄 정도로 다양한 장르와 성격과 배우와 음악과 음악가들이 있다. 조금 뒤쳐진 일본교육의 빈틈, 굳이 잘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들의 교육태도, 학원보내는 것보다 도시락 싸주는 게 더 중요한 엄마들. 성인이 되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일본 사회, 자기의 삶에 대한 운명론적 또는 인과론적 태도가 이런 다양성을 가꿔낸다고 생각한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 <쇼군>을 보면서 느꼈던, '지진'이라는 삶의 조건이 주는 약간은 허무주의적이고 운명론적인 삶의 태도가 깔려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학원에서 단련시켜 세상에 나와야 돈벌이가 되는 한국사회에서는 꿈꾸기 어려울 거 같다. 다양성의 시대라면서, 그 다양성을 '다양한 학원'을 통해 실현시키려는 한국의 성장시스템은 한계에 다다른지 꽤 되었다. 천편일률적인 음색과 음악, 개성이라 부르는 몰개성, 사색하지 않는 예술가들,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지 않는 정부와 사회. 여러 면에서 별로 희망이 없는 사회다. 좀 냅둬야 예술이 살아날텐데.
비판은 여기까지.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이겠으니까.
그래도,
한국이든 일본이든, 서로 겹쳐지고 기대고 끌어안고 손잡을 줄 아는 아이들이, 자기 세대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서로를 사랑할 줄은 아는 너희들이 세상의 희망이다. 맘껏 살아보렴.
우리가 더 잘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