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새로 쓴 자기소개서

자서전을 이래서 쓰는 거구나

뻘짓을 좀 하느라고 6년만에 자기소개서를 새로 써봤다.

학교의 일이 그렇듯이, 모두 함께 한 일인데, 내가 한 일인것처럼 쓴 것이 좀 거시기하고 민망하지만

공동의 작업이었으니 나에게도 몫이 있다고 생각하고 과감히.

... 뻘짓은 뻘짓으로 끝났지만, 오랜만에 나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였다.

호치민학교에 가기 위해 썼던 자기소개서 이후 6년만이다.

장학사보다는 교감으로의 날들이 많이 담겼다.

이래서 자서전을 쓰는 거구나, 이후의 나를 상상해보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재밌었다.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학교경영계획서라는 것도 처음 써보았다.

제목은 "커먼즈COMMONS로서의 학교를 꿈꾸며."

나중에 발령받으면 참고해야지. 열심히 살았다. 잘했다.


... 뻘짓으로 민폐를 끼쳤지만, 옳은 결정이었다. 홀가분하다.


세월호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

교사로 살 때, 아침에 눈을 떠 학교로 가면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 앞에만 서면 그렇게 열악한 교실과 교육환경에서도 행복했고, 집에서 두 아들과 부대끼며 번아웃이 되었어도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참 좋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늘 최고의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고, 아이들과의 시간은 언제나 반짝였다.

그렇게도 행복했던 교사의 자리를 버린 것은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다. 교사로서의 전성기를 누리던 그 해,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에 참 착하게도 가만히 있다가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들. 앞으로 그 누구도 우리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를 내뱉지 못하게, 아이들 스스로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를 의심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게, 무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민주시민교육 장학사’라는 꿈같은 기회가 나에게 왔으니,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어 그 자리를 얻어냈다.

그 자리의 무게는 나를 한시도 편하게 두지 않았다. 무엇에 씌인 듯 열심히 일했고, 서울시교육청의 민주시민교육을 발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늘 ISFJ였던 내가 장학사 생활을 하는 동안은 내내 INTJ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40대에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사람을 모아 정책을 세우고, 토론하고, 수정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자료를 만들고 교육을 바꾸어가는 교사의 뒤를 받쳐주고, 교육을 망치려는 사람들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방패막이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인복이 많은 편이라 큰 무리 없이 하는 일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교육청에서 일했던 5년은 내 인생의 전성기, 세월호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 내가 운영했던 각종 연수와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교사들을 우연히 볼 때면, 당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갔던 충만한 시간들에 대해 서로에게 감사하곤 한다. 교사의 성장이 곧 교육의 성장이다.


교감, 볼수록 매력 있고 할수록 빠져드는

다양한 경험들에 늘 목말라 있는 나는 교감자격연수를 받은 그해 ~한국국제학교의 교감이 되었다.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기도 했지만,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한국국적의 청소년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는지 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사로 갔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했다.

교감이라는 학교 중간관리자 자리는 결코 쉽지 않았다. 권한이 그다지 크지도 않은데 교사는 물론 학생, 학부모, 거기다 교민사회까지 전체를 아울러 학교 조직운영의 실제를 맡아야 했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학교 조직의 원칙이 무너지고, 너무 멀면 학교공동체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너무 가까워도 뒷담화가 난무하고 너무 멀어도 비난이 쏟아진다. 사랑하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오래된 연애의 정석 같은 것이랄까.

첫해에는 그 거리감의 정도를 몰라 많이 힘들었지만, 관리자는 외로움을 두려워하면 안되는 사람이었고, 학교의 원칙을 세우면서도 교사들의 성장을 물심양면 돕는 기술을 터득해나가기 시작했다. 부당한 것은 정확한 원칙으로 교정하고,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발벗고 돕다보니 학교는 안전해지고 학생과 교사, 학부모, 교민사회의 안정된 중심 역할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너무 행복한 교감 생활을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고스란히 ***에 갇혀서 살았지만, 교사들의 교육적 열의와 공동체적 협력이 100% 발휘된 덕분에 한국에서보다 더 빨리 원격수업 시스템을 갖추었고, 오히려 한국의 원격수업에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되기도 했다.

쓸데없는 결재라인을 축소하고 업무를 간소화한 덕분에 교사들은 자기의 수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교육적 열정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사들 덕분에 학교의 교육활동은 유례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자신의 교육적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되니 교사들의 동료성 또한 날개를 달아 학교에 오는 것이 그야말로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교사들의 보람을 더욱 신장시켜 준 것은 학생자치의 활성화였다. 이벤트성 행사를 기획하고 정신없이 행사를 운영하는 학생회에서 벗어나, 실제 모든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화하여 실현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학교교육계획이나 학교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니 교사들까지 더욱 고무되는 효과가 있었다.


드디어 혁신학교의 구성원이 되다

개인적 희망과는 달리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고등학교의 교감이 되자 또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민주시민교육을 이끌어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처음이라 매우 긴장되었지만, 혁신학교가 가진 에너지를 기대하며 부임했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오랫동안 고수했던 원칙들은 이미 10여년이 지난 현실에서 이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전보 지원자가 거의 없는 서울 외곽의 학교에는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들만 가득해서, 열정과 헌신이 가장 중요한 요건인 (옛날 개념의) 혁신학교는 그 생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혁신의 주축 세력이었던 교사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왜 꼭 혁신학교여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진 젊은 교사들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당위성으로 운영되는 각종 혁신정책들은 바뀐 상황과 시대, 구성원에는 맞지 않게 겉돌고 있었고,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는 교사들 사이는 무언가 모르게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무너진 학교 체계와 원칙, 규정들은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 온존하고 있었고, 업무를 실행할 때 원칙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니 불필요한 회의를 거치며 오해와 경계심이 확장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교육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것은 아니어서 의욕과 열정은 넘쳤지만 그것들이 시스템과 원칙의 도움을 받지 못해 마땅한 길을 찾지 못했고, 학생에 대한 애정과 정성도 과분할 정도였으나 시대적 변화에 맞는 명확한 생활규정 개정과 적용이 미진해 적절한 생활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다. 학부모회는 팬데믹을 거치며 와해되어 학교교육에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들을 가볍게 여길 만큼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교사들이었다.

아이들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애정으로 다가가는 교사들, 동료들에게 기꺼이 손 내밀 줄 알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교사들, 이들은 수업에 대한 열정과 성장에 대한 욕구로 언제나 눈이 빛났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고 회의에 임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좋은 합의와 결론에 다다를 줄 알았다. 결국 시스템이다. 시스템만 잡히면 이들은 에너지를 허투루 쓰지 않고, 교육 효과를 백퍼센트 발휘할 사람들이었다.


6개월간 학교의 어려움들을 차분히 파악했다. 구성원들 간에 작용하는 역학도 파악했다. 예산의 흐름과 분배, 행정실과의 관계, 젊은 교사들이 어느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지도 보았고,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성장 욕구도 알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어 원칙을 마련하고, 원하는 수업을 지원하며, 학교업무 수행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줄여가고, 학생생활교육의 어려움을 조금씩 함께 헤쳐 나가면서 공동체적 관계가 형성되어 갔다. 일단은 관계가 만들어져야 변화도 가능하다.

부임한지 6개월쯤 되었을 때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나의 할 일’이라는 엑셀파일이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꾸준히 업데이트되었다. 그 내용은 3년간 조금씩 실현되었다. 주제별로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다.



“3년의 마법”

이란 말이 있다. 해외 학교혁신 프로그램들의 공통적인 결과를 보면 학교가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시스템을 갖추고 변화하는 데 최소 3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며칠 전 엑셀파일에 남아있던 몇가지 계획들을 마무리하고 파일 자체를 지워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나설 일이 없다. 이제는 교사들의 몫이다.

3년의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교장도 교감도 아니다. 그들은 약간의 넛지(Nudge)를 시행할 뿐, 실제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은 교사이고, 학생은 또한 그런 교사들의 모습에서 배운다. 학교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며 함께 성장해가는 것은 교사의 책무이자 권리이다. 이것이 발현될 수 있도록 분위기와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학교관리자의 일이다.


존중, 관계, 책임

역사에서의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와 현실에서의 ‘회복적 학교(Restorative School)’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세 가지다. 주체화와 이타적 개인주의자의 개념은 물론이고 ‘조직의 역동’을 위해 맞춤인 세가지 개념으로, 조직 운영의 실천 목표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다.

5년 6개월, 두 학교에서 교감직을 수행하며 나름대로 정리한 실천적 목표이다. 포괄적 개념인 ‘공동체로서의 학교’에 도달하기 위한 세가지 중간 목표로, 행동의 구체성을 띠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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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을 용기

“교육은 개인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집단으로 하는 일입니다.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시민적 성숙을 이룸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은 사회 전체입니다. 교육의 수혜를 받는 것이 아이들 개개인이 아니라 사회인 것입니다. 교육의 수혜자가 사회 전체라는 것은 교육에 대한 책임 또한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선생님들 역시 사회 전체의 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서 교육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 중 한명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자기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걸 교육현장에서 실천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머지 부분은 다른 교사들에게 맡깁시다.” - 우치다 다쓰루, <완벽하지 않을 용기> 중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책임 또한 함께 짊어질 것이라는 믿음, 거기에 미래를 향하는 힘이 있다.


학교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교육 여정의 새 장을 열어가고 싶다.

직급이 다른 동료로서, 서로의 빈틈을 메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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