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요? 제가요?

신장이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2010년대부터 건강검진을 매해 받아왔다.

2년전 쯤 건강검진에서 처음보는 징후(중성지방,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을 벗어난 수치)를 극복하기 위해 다이어트도 했다. 사랑하는 친구가 암진단을 받은 2024년부터는 친구들과 함께 잘 먹는 것과 운동에 관심을 갖고 각종 유튜브를 통해 건강하게 늙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주변에 유방암 환우들이 늘어나면서는 6개월마다 강남의 전문의원에 가서 사진과 초음파를 모두 해오고 있다. 마침 인기를 끈 정희원 교수를 멘토로 삼아 잡곡밥, 채소, 단백질을 건강하게 먹고 꾸준한 운동을 실행했다. 올해 건강검진은 그래서 은근 자신이 있었다. 집안 내력인 당뇨와 고혈압도 나는 겪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올해는 바야흐로 갱년기를 맞이하여 유전자검사, 뇌검사, 각종 초음파, 골밀도 검사 등등등 무려 30만원이나 더 주고 다양한 검사를 했다. 미리미리 준비하여 아프지 않으리라는 결심이었다. 처음으로 하루 공가를 쓰고 검사를 받았다. 늘 받던 검진센터가 더 대규모화하여 동화면세점 건물 4개 층을 쓰게 된거 같았다. 거의 4시간을 여기저기 띵동하는 소리와 함께 호출을 받고 다녔다. 다 끝났으니 인제 옷갈아입고 가야지 했는데, 문진했던 방으로 나를 다시 보내는 거다. ? 잘못 처리한 거 아닌가? 하며 들어갔다. "아까 여기 왔었는데요..."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말했다. "아... 오른쪽 신장에 3.98cm짜리 용종이 있습니다. 진료의뢰서 써드릴테니 병원으로 가보십시오. CT 찍으셔야 합니다."

신장? 신장이 어딨는 거지? 용종이면 혹 아니야? 자궁에 있는 물혹이 2센티였으니까 좀 큰 편인건가? 문진실을 나와 얼른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으로 검색해봤다. 연관검색어에 바로 '신장암'이 떴다. 엥?

수납대 옆에 CD를 복사해가는 기계가 있었다. 나날이 의료계의 자동화가 발전하는구나 감탄하며 CD를 구웠다. 어딘가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해서 광화문에서 종각까지 걸어가는 중 계속 검색을 했다. 기분이 나빴다. 이런 의외의 발견이라니.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장어덮밥 프랜차이즈에서 밥을 먹고, 친구가 생일선물로 줬던 할리스 쿠폰으로 따뜻한 라떼와 티라미수 한조각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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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를 마시며 이리저리 검색했다. 신장종양이 4센티이하면 1기, 7센티 이하면 2기, 그 이후면 3,4기. 1기면 절제술을 통해 제거, 완치율 90퍼센트 이상. 2기 기후부터는 완치율이 급격이 줄어듦. 신장종양이 초음파에서 보이면 70퍼센트 이상 암 진단. 뭐야. 이런 세밀하지 못한 구분이라니... 신장이 콩팥이구나. 아, 양쪽 옆구리 뒤편으로 있고, 혈관이 많이 엉켜있는 중요한 기관이군.


설마, 암이겠어? 초음파에 보인게 양성인지 악성인지 대강 알고 CT를 찍어야겠지? 이런 안이한 생각으로 개인병원 한군데를 예약했다. 그마저도 바쁜 일이 생겨서 잊어버렸다. 자매들이랑 친구들에게만 이야기했는데, 특히 **이 빨리 큰병원으로 가라며 성화였다. 아. 그런가? 집에서 가까운 병원은 고려대안암병원과 서울대병원. 고려대는 바로 예약이 되고 서울대는 외래만 8월초. 뭐, 그냥 초음파 진단만 받는 건데 뭐. 고려대병원을 예약했다. 계속 신장암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봤지만, 그리 심각하게 생각되지가 않았다. 학교에서 터지고 있는 학생들 생활문제들이 더 걱정일 뿐. 워낙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 습관도 있고.


6.19.(목) 조퇴하고 병원에 갔다. 종합병원 진료는 약 10년 전까지 서울대 안과를 해마다 다녔던 이후 가지 않았는데, 병원의 자동화시스템이 신기할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바코드 하나만 있으면 체계적으로 진료가 진행됐다. 가지고 간 CD를 스스로 기계에서 등록하는 것도 놀라웠다. 이야... 서울대병원 안과 다닐 때 천정에 레일을 달아놓고 거기로 차트기록 넣어서 기차처럼 왔다 갔다 했는데. 좋네.


초음파를 보던 의사는 크기와 모양으로 봤을 때(나중에 안 거지만, 세포의 '격벽'을 보고 판단한다고 한다.) 암일 가능성이 있다며 CT를 찍으라고 했다. 예약수납을 한 후 보니 다음 진료는 '암센터'로 가라고 쓰여있었다. 아 뭐야. 기분 별로다. 그렇게 또 일하다가 그 다음주에 CT를 찍는데, 몸에 조영물질을 주사했고, 10분 정도 촬영하는 거였다. CT기계에 처음 들어가봤다. 느낌이 묘했다. 주말엔 구락부와 여행계 모임을 차례로 했고, 상황을 말해줬다. 여행계 샘들과 7월1일 진료 끝나면 헌술방에서 와인과 샤퀴테리아를 먹기로 약속까지 했다.


7.1.(화) 시험기간이라 부담없이 조퇴하고 암센터로 갔다. "예상한 것처럼, 암으로 생각됩니다." "네? ... 그럼 뭐 상피내암..그런 건가요?" (전날 밤 들어둔 암보험 내용을 찾아보다가 새로 알게된 용어였다) "아니요, 그 단계는 지난 것 같고, 1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암세포가(생각보다 컸다) 신장 안쪽으로 이렇게 생겨 있는데, 간이랑 붙은 위치여서 좀 까다로울 거 같습니다.1기는 절제하면 완치율이 95%가 됩니다. "

... 내가 생각해도 매우매우 침착하게 설명을 들었다. 궁금한 것도 잘 물어봤다. 신장에는 혈관들이 매우 많아서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 CT를 통해 진단하고,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MRI를 찍는데, 바로 예약을 할 것이고, 수술 날짜는 9월에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뭔가 크게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전주 만난 사람들이 모두 다른 병원도 예약했냐고 물어서 뭘 그렇게까지? 하다가 혹시 몰라서 인터넷으로 아산병원을 예약해두었다. 다행히도 빈 자리가 있어 예약은 쉬웠다.

수술은 위험이 적고 회복이 빠른 로봇수술을 한다고 했다. 비용은 1000만원 조금 넘는다고. 뭐 그거야 암보험으로 어떻게 되겠지. 나와서 이런 저런 처리를 하며 구락부 톡방에 보고하고 아산병원을 갈까말까 망설이는데 또 애경이 전화했다. 수술은 아산병원에서 하고, MRI도 거기 가서 찍으라고. 응 알겠어. 매니저 말을 들어야지. 각종 검사 결과와 진료의뢰서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아들들에게도 보고했는데, 이들도 별 큰 반응은 없었다. 아마 나처럼 남의 일같이 느껴져서였으리라. 진단 내용을 듣고 가장 자기일처럼 느낀 것은 **이었다. 울다가 전화를 할 정도로. 고마운 녀석 같으니라고.


집에 와서 엄마는 없는 자매 톡방에 보고하고, 다시 암보험을 찾아보고, 실손보험 보장내역을 체크했다.

엄마는 부산 고모댁에 가신다니 다녀오고 나서 말해야지. 학교는 어떻게 하나.. 병가는 언제부터 쓰나. 휴직은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아들이 오는 11시까지 내내 신장암 관련 유튜브 영상을 봤더니 이제 설명의 내용 흐름이 스스로 머리에 그려질 정도였다.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9시에 교육청에 전화를 걸었다. 9월1일자 발령 예정자에 있다고, 인사위원회 전에 휴직계를 내야 제외된다고 했다. 교장님께 말씀드리고 휴직계를 내고 병가도 신청했다. 병휴직은 봉급의 70%가 나온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지금 학교에는 새 교감이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휴직은 정해졌으니, 당분간 진료받고 수술받으려면 병가를 쓰기로 했다. 원래 8월까지만 근무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일정이 조금 당겨졌다. 갑자기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그 다음날 터진 고사 관련 사안을 수습하느라 이틀을 정신없이 지내고나니 미련이 1도 남지 않았다. 둘째 육아휴직 이후 20년만의 휴직에 약간 설레기도 한다. 학교를 안가도 된다고? 방학 때도? ... 근데 암이라는데, 이런걸로 설레는 나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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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샘이 사준 용기와 담대함의 호랑이를 머리맡에 두었다. 병원가기 전 하늘에 구름이 멋졌다. 암센터에 오다니.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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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엄마도 친구도 아닌 나를 위해 꽃을 샀다. 진단 받고 처음으로 만난 두 친구와 행복하게 수다를 떨고. 친구가 선물해준 암환자의 바이블을 읽기 시작했다.

'암밍아웃'이 힘들다는 것은 친구의 진단 이후에 알았다. 그래서 구락부와 여행모임 사람들이 나 대신 여기저기 조금씩 말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나 자신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일찍 발견해서 너무 다행이잖아요~" 하면서 깔깔대며, 오랜만에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나는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인제 교육청 쪽 사람들과 교장연수팀, 그리고 대학동기들이 남았는데.... 뭐 차차 기회가 있겠지. 굳이 다 이야기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내일 아산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다. 빨리 끝내고 싶어 굳이 전화해서 시간을 아침 10시로 당겼다. 유찬이 데려다 주고 바로 가서 자료 등록하고 기다려야겠다. 아침에 아들에게 "아산병원이 원탑이래. 거기 가면 혹시 암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냐?"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더니, 침착한 아들이 "엄마. 그게 더 문제인거 아냐? 그럼 몇군데 더 가봐야지. 그런다고 안심하면 절대 안되지" ... 아. 현명한 아들.


심란하지만, 내일도 정신을 단디 차리고 잘 하고 와야겠다.

사고처리하느라 학교 짐정리를 하나도 못했다. 8일 저녁에 가서 정리를 좀 하고 와야겠다

9일엔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하고, 공모교장제 설명도 하고. 인사도 정식으로 해야지.

남보다 못한 가족이 있다. 기대하지 않는 게 상처받지 않는 걸 잘 안다. 지금껏 그렇게 나를 지켜왔다.

이 폭풍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게 될까, 어떤 관계가 정리되고 어떤 사람이 더 가깝게 될까. 궁금하다.


병이 주는 새로운 기회들을 잘 맞이해야겠다.

오랜만에 내방 책상 위를 정리했다. 앞으로 자주 앉게 될 곳이다. 어제 친구가, 계획 좀 그만 세우라고 했다. 피아노도 배우고, 일본어 학원도 다니고, 요가도 다시 가고...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잘 먹고, 잘 운동하고, 잘 쉬고, ... 하루를 단순화시키라는 거다. 나의 평생은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무언가를 매일 하는 것이 계획이란 것이었는데. 모르겠다. 일단은 수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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