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 서울시립사진미술관
개관 후 선풍적인 화제를 일으켰던 창동의 서울시립사진미술관에 가보았다. 내게 있어 서울에 사는 맛 중 많은 부분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분점들과 다양한 행사와 시도들이 차지한다. 성북구도 구 차원에서 그런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긴 하나 워낙 열악한 지역 여건 때문에 어려운 거 같다.
창동은 2022년에 잠깐 근무했던 곳이라 또 역시 추억이 서린 동네다. 창동역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많은 차이가 있는데, 이번에 시립미술관이 세워진 곳은 도봉구 중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고, 구청사업도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곳이다. 20대때 이 동네 포장마차촌에서 술을 퍼마시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는 격세지감이다.(아, 또 나의 나이를 절감)
박물관은 구성도 규모도 아주 좋았다. 개관 기념전들도 좋았고 무엇보다 꼭대기층의 아카이브가 좋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언제나 그 장소 전체를 아우르는 질문이 있어야 다 보고나서 뭔가 깊은 것을 얻은 느낌이 드는데, 사진박물관의 중심질문은 2층의 디지털 보존복원 관련 전시였다.
사진이라고 하면 실제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실제 사물의 하위에 놓여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사진가나 사진을 다루는 사람에 의해서 실제 현상과 장면이 새롭게 구성되어지는 것임을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었다. "재현하지 말고, 구성하라". 아,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역사에서도, 역사교육에서도, 이 언명은 매우 중요하다. 언제나 역사를 사실 재현으로만 국한할 것인가.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맥락과 요구에 맞춰 역사를 어떤 인간의 도구로 사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역사를 배울 필요가 무엇이랴. AI에게 물어 사실을 확인하면 될 것이지.
특히, 첫 전시실은 새로 취업한 '사진복원사'들의 고민과 작업과정을 담고 있어 더 좋았다. 사진은 사진가만의 것이라 생각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눈부신 현대사회에서 기술을 이용한 사진의 복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그 작업을 담당한 사람들의 고민과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과 고민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것이기도 했다. 또한 AI를 이용할 때 인간이 해야 할 역할 - 기계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질문 던지기 - 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들이 멋지다 느껴졌다.
픽셀단위 분석과 연결, 논리적 구성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 복원된 그럴듯한 사진에 대해 '실패'라고 판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텐데, 그들은 그 사진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너무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여공들의 얼굴이 편안하기 때문에 '실패한 작업'이라고 결론 내린다. 실제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찾아준 자료를 앵무새처럼 따라 읽거나 필사하듯 따라 쓰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학생들), 그것을 또 개인적 맥락 없이 AI를 이용해 평가하여 점수를 부여하는 사람들(교사들)을 생각하며, 복원사들의 질문처럼 AI를 교육에 사용할 때의 질문들이 논의되고 정리되어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리얼리즘을 추구했다는 사진가 이형록을 알게 되었다.
아카이브에 있는 이형록의 사진집들을 죄다 보고 왔다. 사진이라는 예술분야의 매력. 노순택 씨도 생각나고.
임종진 씨도 생각나고.
창고 창자를 쓰를 창동의 이름에 착안한 스토리지 스토리 특별전도 흥미로웠다. 세월에 따라 바뀌어가는 마을의 역사와 땅에 깃들여진 이야기들을 복원하는 작품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초안산 산책길에 있었다던(지금은 다 허물어져 흔적만 남은) 내시묘들의 옛 모습을 조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나와서 근처를 걸으며, 예산과 인력과 컨셉이 추가되면 도시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창동역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격차가 이로써 더 커졌구나. 성북구는 북악산의 고도를 따라 빈부격차가 나뉘는데. 싹 갈아엎는 것만큼 도시경관 조성에 좋은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부' 아니라 '빈'에 속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있는 것을 조금씩 보완해가는 개발도 좋지 않을까 싶다. '빈'촌에 하수도를 정비한다거나 30년된 집들의 안전조치를 확충한다든가. 여튼, 도봉구와 성북구, 강북구의 구청장들은 참 일해먹기 힘들겠다 싶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