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윤보선길

길 이름 좀 바꾸면 좋겠지만.


4층 개방형 보존과학실. 요즘은 박물관 미술관들이 노동의 얼굴을 감추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이 일하던 시절부터 서울의 모습과 속살이 많이 좋아졌다. 환경과 인간에 친화적인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 곳이 많았다. 교사로 일하면서 박원순과 참여연대는 든든한 시민사회의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존경했는데. 호치민에서 일하던 어느날,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었다. 잘못한 일이 보도되었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잘못에 대해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자살이라니.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안잡혀서 말이 통하는 선생님들이 저녁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지난 세월 우리 삶에 스며든 박원순과 이렇게 부끄럽고 초라한 마지막길을 선택한 박원순을 이야기하며 착잡해 했던 생각이 난다.


북촌이 뜬 것도 아마 비슷한 시기였던 거 같다. 골목골목 카페와 음식점과 걷는 길이 유명해졌고, 어느날부터는 주말 삼청동은 줄서서 걷는 길이 되었다. 인사동 맞은편 풍문여고 교문앞부터 이어져 정독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과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밀조밀하게 외국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골목길로 다시 태어났다. 오래된 맛집과 새로 들어선 공예품점들이 오래된 한옥 지붕을 맞대고 줄지어 있던 곳. 본청에 근무하며 자주 왔다갔다 했던 길이다. 약속장소로 이만한 길이 없었고, 골목골목 작은 화랑들은 혼자 거닐기에 좋은 이유가 되었다. 풍문여고에서 정독도서관길까지 이어지는 길이 감고당길이라고, 숙종이 인현왕후에게 선물한 작은 집, 명성왕후가 태어난 집이기도 한 감고당이 있던 길이다. (덕성여고 자리) 풍문여고는 2017년인가 마지막 졸업식을 하고 이전하여 풍문고가 되었고, 서울시에서 인수한 이 자리에는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예박물관이 만들어졌다. 무시무시한 철문과 높은 담장으로 막혀 있던 미대사관 부지(숙소였던가 뭐였던가)도 반환된 뒤 멋진 녹지공간으로 개방되었으니, 탁 트인 분위기가 참 좋다.

풍문여고에 근무하던 친구가, 학교가 너무 낡아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때가 많다더니, 기어이 이전을 했고, 거기에 뭐가 들어설까 궁금했는데 귀국하고 보니, 공예박물관이라는 너무나 멋진 컨셉의 박물관이 만들어져있었다. 오래된 은행나무도 그대로고 넓은 운동장도 그대로고.. 들어가봐야지 하고 인제서 가봤다.

보고 온 느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싶은 마음. 19세기 이후 기증품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은데 전시물의 연대와 설명, 또 그 자료가 되는 문헌들의 연대와 설명들이 부실했다. 복원연구를 담당하는 작업실을 개방형으로 꾸며놓은 것은 매우 좋았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 연구를 해야 하는 연구원들이 안타까웠다. '공예'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주로 자수와 수예품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는 지금 전시 준비 중인 1관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9세기 작품들이 의외로 매우 모던해서 흥미로웠다. 그 세밀한 기술이야 말해 뭣하랴.

약간의 충격을 받을 정도로 멋졌던 것은 사군자화를 자수로 표현한 병풍이었다. 먹의 농담을 실로 표현하고 붓의 필치까지 살려낸 감성이 진짜 매우 멋지다고 생각했다. 처음 봤다. 수묵화와 자수를 바로 옆에서 비교해볼 수 있도록 전시해설 화면을 가까이 배치해 둔 것도 흥미롭고 재밌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공예의 역사를 현실로 잇는 1층 뮤지엄샵의 물건들이었다. 우리나라 공예의 아름다움을 반영하고, 새롭게 창조한 작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드리퍼와 와인잔은 정말 갖고 싶었다..(만 너무 비싸서, 눈호강만 했다.) 주물 세공으로 만든 거 같은 예쁜 버터나이프나 유약의 섞임이 자연스러운 머그잔 쯤은 언제 한번 구입해봐야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완성되지 못한 공예박물관을 나와 정문쪽 감고당길 말고 후문쪽 윤보선 길로 들어섰다. 이쪽길이 고즈넉해서 더 선호한다. 2019년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대식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서 옛 정취는 많이 사라졌지만, 새 건물들도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아서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 못보던 갤러리가 있어서 보니, 전북도립미술관 분관이었다. 우와, 전북미술관 대단히 칭찬하고 싶었다. 작지만 무게감 있는 갤러리였고, 현재는 화가 이응노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엽서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100점이 넘는 엽서들을 오랜기간 번역하고, 발신자와 수신자를 찾고, 그 맥락까지 반영하기 위해 기울였을 학예연구사들의 노고가 물씬 풍겨오는 전시였다. 태블릿 앞에 앉아 엽서를 읽으면서 당시 사람들의 언어와 관습, 예의, 애정, 질투, 미움 같은 것이 풍겨져 혼자 킬킬댔다.

2층에는 이응노의 작품들이 몇개 걸려 있었는데, 잘 모르긴 해도 무게감 있는 작품들인듯. 작은 방에 홀로 걸린 묵죽도는 정말 멋있었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요즘 자꾸 수묵과, 그 중에서도 사군자를 그린 작품들에 마음이 끌린다. 서예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성북문화원 가을학기에 한문서예반을 등록하고 말았다.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에서 바라본 맞은 편 건물. 아름답다.
플라스틱, 폐어망 등에서 만들어낸 실로 짠 가방을 파는 한옥 쇼륨. 브랜드 이름을 까먹었긴 한데, 색이 너무 이뻤고, 디자인도 좋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사기업이라고 했다.
길가다 찾아낸 맛집, 도라보울

공예박물관과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을 거쳐 감고당길로 접어들었다. 찌그려져가던 집들이 헐리고 번듯한 가게들이 깔끔하고 이쁘게 줄지어 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군. 먹쉬돈나는 사라진 거 같았다. 그 만두집이랑 설렁탕집도. 국현미에 갈까 하다가 배가 고파 '도라보울'이라는 카레집에 들어갔다. 서글서글한 주인장이 매장 전체를 지휘하고, 그 어머니가 접시를 닦아 내오고, 주방을 지키는 요리사들이 그림같은 카레 요리를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식당이든 카페든 분위기에 맞는 BGM을 중시하는 내게 이집 음악도 귀에 꽂혔다. 삿포로식 수프카레라는데, 무엇보다 다양한 채소를 미니어쳐처럼 담아 내주는 게 너무 맘에 들었다. 맛도 좋았고, 밥을 담아 내어주는 빈티지풍 접시도 맘에 너무 들었다. (감히, 어? 이거 집에서 한번 해볼까? 생각했다.)

국현미까지 다녀가려면 다리도 아플 거 같고, 저녁에 운동도 가야 해서 커피나 한잔 하고 집에 가기로 했다.

몇백년 된 향나무만 봐도 맘이 든든해지는 카페 이드라

나이 지긋한 바리스타가 내려주시는 드립커피를 마시며 더위를 피해 실내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날 좋을 땐 나무 아래서 마셔도 좋을 거 같았다. 서울은 참 다닐 곳이 많다. 다행이다. 서울 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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