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 여운형, 장면, 무엇보다 백기완
상계동에 살던 '국민학생'인 나에게 지하철 4호선의 개통은 일대 혁명이었다. 불편하고 불친절한 (당시 버스에는 에어컨도 없었고, 기사님은 담배를 피우며 운전을 했다) 버스를 타지 않고도 굉장히 먼 곳까지(상계~사당) 나의 이동 범위를 넓혀준 사건이었다. (이렇게 쓰고보니, 진짜 나도 많이 늙었구나.)
당시 상계동은 '상계동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빈민층과 재개발의 상징같은 곳이었고, 상계시장 언저리 판잣집(은 아니었고, 여튼 요즘 베트남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주거형태) 친구집에 놀러가서 대접에 얼린 얼음을 깨서 가루쥬스를 타먹으며 만화책을 보던 추억이 있다. 우리집도 뭔가 사건을 겪은 후 흘러흘러 들어온 동네였고, 논밭 한가운데 지어진 양옥집 단지에 살았다. 그러나 누구나 서로 잘 어울렸고, 쉽게 친구가 되었고, 봄에는 밭에서 냉이를 캐고 여름에는 집 울타리 안쪽 작은 마당에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물을 받아 더위를 식히고, 겨울에는 양어장이나 논을 얼린 스케이트장에서 신나게 얼음을 지치며 놀았다. (우와. 진짜.. 드라마같다)
4호선이 개통되었지만 선뜻 외출을 결심하긴 아직 어렸던 국민학교 6학년 시절,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하던 아빠가 어느날 웬일로 나와 동생을 직접 데리고 전철을 타고 혜화동에 갔다. 혜화동은 대학로라고 불렸고, 그 큰 대로가 주말이면 길을 막고 보행자 전용이 되었다. 당시엔 낯설게도 거리 곳곳에 본질을 알 수 없는 조각품들도 있고, 뭔가 해외에 있을 거 같은 마로니에공원도 있었다. 당시 짧은 머리에 언니 원피스를 빌려입고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그후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대학교 때 모임 장소로, 더 커서는 연극과 미술전시회를 보러, 교사가 되고나서는 학생들 체험학습 장소로, 아이 낳고 나서는 나들이 장소로 나다녔다. 사실, 새로운 외국음식이나 프랜차이즈도 시내가 아니면 없던 시절이어서, 임신했을 때는 던킨도넛의 샌드위치를 먹으러 종종 갔고, 베트남 한번 가보지 않고 쌀국수에 빠지게 했던 '파리, 하노이'라는 쌀국수집은 나의 최애점이었다. 사장님이 프랑스에서 르꼬르동블뤼에 유학하며 꽂힌 쌀국수를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교사로 활동하면서는 전국역사교사모임 사무실이 혜화동 소나무길 (이 길도 원래 없던 길인데, 언젠가 고즈넉하게 잘 조성되었다) 언덕 빌라에 자리잡아 정말 자주 다녔다.
인제 버스로 세 정거장이면 혜화에 갈 수 있는 정도로 가까이 살고 있지만, 오히려 갈 일이 별로 없다. 아들 학교 데려다주고 스카에서 귀가시킬 때 말고는 시내로 나갈 때 버스로 거쳐가는 정도의 동네가 되었다. 베트남에서 귀국한 후 오랜만에 가본 혜화동은 정말 많이 바뀌어 있었다. 골목골목 추억이 스며 있다는 게 이런건가 하며 다녀봐도 지금의 혜화동은 너무 번잡했고, 이후 일이 아니면 안가게 되었다. 교사모임 사무실이 제기동으로 옮긴 것도 오래 되었고.
이 염천더위에 혜화동에 나들이한 것은 4월에 사람들과 들렀던 학림다방에서 준 무료쿠폰 한장 덕분이었다. 병가를 내고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로 결심한 터에 그 쿠폰 하나를 사용하겠다는 일념으로 혜화동으로 왔다. 요즘 뜨고 있는 성북동길(혜화문 근처)로 갈까 하다가, 심심할 거 같아서 혜화로 갔다.
점심은 아남아파트 상가에 있다는 건강밥상에서 병아리콩카레를 먹으려 했는데, 예약석으로 이미 만석이라 발길을 돌려 걷다가, 8년 전쯤 자주 갔던 인도요리집 깔리에 가서 점심메뉴(9,000원. 세상에)로 커리하나, 갓 구운 난, 라씨까지 배터지게 먹고 학림으로 향했다.
학림도 서울대병원 정문 옆에 있는 그 전통적 학림은 별로 안좋아한다. 대학시절인가 졸업 후였나 선배가 데리고 들어갔었는데 그 낡은 나무계단부터 끈적끈적한 테이블, 음침한 조명이 맘에 안들어서 그 후론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1층에 레코드점이 있었던 '슈만과 클라라'를 좋아했고, 30대에 찾아낸 카페 릴리마를렌이 나의 최애다. 2022년 귀국후 찾은 릴리마를렌도 겉은 그대로인데 주인님이 아드님으로 바뀌었고, 인스타카페로 유명해져서 사람이 정말 많았다.
학림 분점이 릴리마를렌 옆 먹자골목에 있었다.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어서 놀랐고, 바로 옆에서 로스팅도 직접하고 있어 점수를 높이 줬다. 또 저 커피잔이 너무 맘에 들었다. 뭐, 오늘은 공짜 커피를 먹으러 온 것. 자리가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행복한 한잔을 마셨다. 내 자리에서 내다보이는 곳에 백기완 마당집(이전 통일문제연구소)이 있다. 백기완 선생님 살아계실 때 한번인가 행사로 찾아갔던 곳. 돌아가시고나서 전시관으로 만들어진 후 가본 적이 없었다.
성신여대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쪽으로 가다보면 조소앙 활동터(한성대 입구) - 여운형 활동터(혜화동로터리)라는 정류장을 거치게 된다. 집으로 가다보면 장면 총리 가옥 정류장(동성고등학교)도 있다. 대학가를 엄청 거치는 노선이라 '낭만버스'라고도 불리는 모양이지만, 나에게는 역사버스랄까. 베를린에 갔을 때 지하철 정류장 이름이 '로자 룩셈부르크 플라츠'인 곳에 굳이 찾아가 돌아다녔던 나에게 이런식의 정류장 이름은 너무 좋다. 하지만 대학시절 이후 혜화동은 백기완 선생님이다.
백기완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다만, 대학교 입학하자 내게는 머리에 피도 안벗겨진 어린애로 보이던 92학번들이 늘상 무용담처럼 백기완 선본 활동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선거포스터에서나 보던 그 분이 궁금해지곤 했다. 이후 다양한 이슈와 사건, 행사와 집회 현장에서 늘 제일 앞자리를 맡아 앉아 계시던 백기완 선생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영웅담이었다. 제주 강정, 미국산 소고기 반대, 쌍차투쟁, 세월호, 박근혜 탄핵 등 정말 늘, 곁에 있던 든든한 어른이었다.
여튼, 좁은 방 하나에 남겨진 선생님의 흔적과 목소리가 절로 내 고개를 숙여지게 했다.
경외심이란 것이 오랜만에 우러나와 방을 나올 때 90도 배꼽인사를 드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걷는 서울 곳곳에 이런 공간들이 호통처럼 구석구석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싶다.
어딜 갈까 하다가 마로니에 공원의 아르코 미술관으로. 여기야말로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는 미술관이지.
소리와 체험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인류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전시가 참 재미있고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2층 자료관 로비에 마련된 넓은 소파. 한 10년만에 온 거 같다. 시원하고 편안하고 조용한 곳에서 다리를 쭉 뻗고 우치다 센세의 새 책을 신나게 읽다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