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진역 리움미술관
십여년만에(이젠, 대부분이 십여년 전이다.) 리움미술관에 갔다. 커다란 엄마거미가 버티고 있던 정원이 비어 있어 의아했는데, 특별전을 준비하러 출장갔었나보다. 특별전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걸 보니.
8월중순이 지났음에도 뜨거운 태양이 내려쪼이던 오전, 오랜만에 한강진역에 내렸다. 6호선이 없었던 십여년 전에는 어떻게 왔었지?
(삼성카드 무료입장권이 있음을 또 깜빡하고) 12000원짜리 입장권을 사 현대미술관부터 들어갔다. 오로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볼 목적으로. 파리의 로댕미술관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로댕의 진짜 작품이 한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바나나 사건 이후, 현대미술관에 키퍼가 많아진 거 같다. 한 공간에 두세명이라니. 오히려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라고, 별로였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도 십여년전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서 너무 소략했다. 음. 세월이 갈 동안 용인에 집중하셨나.
리움이 생겼을 때, 일대 혁신이었다. 공간에 유리장만 만들어 유물과 작품들을 몰아넣어두고 '미술관' 또는 '박물관'이라고 부르던 시절, 가끔 열리는 서울역 앞 호암미술관 특별전은 정말 특별했다. 당시 수준에서 최대의 조명과 공간을 확보하여 유물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만들려는 노력이 느껴지던 전시였다. 호암미술관이 용인과 리움으로 나뉘어 만들어지고, 리움은 이름처럼 찬란하게도 '뮤지엄'이라는 호칭이 정말 잘 어울리던 곳이었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전시기법들과 공간구성이 너무 멋있었다.
리움은 역시 전근대유물관이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청자 찻잔 전시! 역시나.
익숙하게 휙 둘러보았다. 십여년 전과 큰 차이는 없어보였다. 이건희 씨가 돌아가신 후 많은 작품들이 국가에 기증되었고 국현미나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더 쉽게 자주 좋은 작품들을 보게 되어 참 좋다. 예전에 아이들과 함께 리움에 와서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 찾기 하는 게 활동이었는데. 그만큼 원형그대로 보존된 뛰어난 작품들이 재벌가의 손에 의해 보존되었으니,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게다가 당대 최고이 큐레이션에도 아낌없이 투자했고, 더 후에는 그 수많은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공기관에 기증도 하고. 문어발식 재별의 성장과 아직도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재벌의 능력과 소양에도 감사하게 되는 양면적 인간인 나.
숨쉴 틈없이 아름다운 청자보다는 뭔가 한쪽이 빈 듯한 융통성있는 백자가 더 좋다. 나는. 언제나 칼같은 판단보다는 다양한 조건과 사정에 의해 기울어지곤 하는 성향의 반영일 수도. 한쪽이 한쪽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세상이 유지되는 원리겠지.
리움의 샵에서도 청자와 백자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이제 삶의 여유도 좀 생겼으니, 집에 있는 유리잔들과 도자기 그릇들을 자주 꺼내 써야겠다. 깨져야 새로 사지. 내 삶도 얼마 안남았는데.
청자 찻잔들은 정말 예쁘다. 필요를 만들어내어 사고야 말겠다.
이십여전 전 개관할 때부터 혁신이었고, 오랜 세월 다른 미술관과 박물관에 큰 영향을 주고, 이젠 그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갖는 리움미술관. 나도 많이 빚지고 있었다. 서로 빚지고 살아간다. 모든 관계들이 그렇다. 함부로 할 관계는 없다. (그래서, 함부로 대강 유지하지 말고 단호하게 대해야 하는 관계도 있는 법이다.)
리움에 굳이 오게 된 것은, 한남동에서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CEO 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정갈한 한 상을 빠르크라는 멋진 식당에서 받아 먹고, 선물까지 한아름 들고 돌아왔다.
나는 해주는 게 1도 없는데도, 만난지 1년을 조금 넘은 사람에게 이런 귀한 사람 대접을 받다니, 복도 많지.
나도 내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야지. 생각했다.
전시물 중 사방에 글귀가 적힌 유골함이 있었다. 돌아가며 글을 찍어보았다.
어떤 글인가 찾아보니 <장엄염불>이라고, 죽은 사람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염불이라고 한다.
원아임욕명종시(願我臨欲命終時) 원하오니 제가 명이 다 할 적에
진제일체제장애(盡除一切諸障碍) 모든 장애가 모두 사라지고
면견피불아미타(面見彼佛阿彌陀) 면전(面前)에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즉득왕생안락찰(卽得往生安樂刹)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합니다.
죽어서 갈 길을 귀하게 여겨주는 마음이 곱다고 생각되었다.
병을 얻고 나서, 죽음을 더 가까이 생각하게 되었다.
메멘토모리라든지, 그 날이 올 것을 늘 준비하라든지, 죽음을 생각해야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든지 뭐 그런 말들과 글들을 수없이 읽었어도, 그런 순간을 맞이해보지는 못했었다.
이제 자주, 그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모든 순간,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
그래서 어디에 머물지, 누굴 만날지,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선택하는 순간이 더욱 귀중하다. 내가 제일 소중하니까 말이다. 흘러가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살지 말 일이다. 적극적으로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조차도 그렇다.
신장이라는 중요한 기관에 병이 생겼다. 암종이야 절제로 떼어낸다지만, 죽는 날까지 귀하게 여기고 살아야 할 중요한 장기다. 가장 뒷날에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 나의 흔적을 지우게 될지 모르겠다.
충분히 마음을 다해 세상을 사랑했음을, 내 사람들을 귀하게 여겼음을, 나 자신을 소중히 했음을 뿌듯해하며 사라질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
9월에 용인의 호암미술관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