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예술. 이상원미술관 뮤지엄스테이
2022년에 알게된 춘천의 이상원미술관 뮤지엄 스테이.
주말엔 요금이 비싸고 차가 막히니 갈 수가 없어 내내 틈만 보다가, 올 여름 성수기가 끝나자마자 공방체험 패키지를 8만원에 예약했다. 우리집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가평 산골짝을 지나 춘천 경계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정말 인적이라고는 없는 곳이었다. 뮤지엄 스테이라니.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곳.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부러 일찍 집을 나서서 12시쯤 도착했다. 근처에 몇몇 식당이 있지만 굳이 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라서 점심과 저녁을 예약했고, 10% 할인을 받았다.
수술 전 9월에는 매주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씩 하기로 했는데, 이건 두번째였다.
(첫주는 경복궁 야간개장 티켓을 구해놓고, 그날 컨디션이 심상치 않아 스킵했다. )
이상원이란 분은 전혀 몰랐다. 안중근 국가 영정을 그린 분이라고 한다. 일제 말기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가난을 짊어지고도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올라와 극장간판이나 미8군에서 초상화 등을 그렸다고 한다. 안중근 국가 영정을 그리고 나서 이름이 알려져 점차 안정적으로 정통미술에 천착했고, 수묵과 유화를 섞은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분이었다.
의외로 이상원 화백의 그림은 전시된 것이 별로 없었고, 대부분의 전시관은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커다란 캔버스에 줄을 그은 단순한 추상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이었는데... 솔직히 뭐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품 설명을 읽어보고 작가에 관해 찾아본 후 조금 더 이해가 갔다. 작가 천성명. 2015년까지 섬뜩할만큼 문제적 작품들을 줄곧 전시했던 분이었다. 예리한 문제의식으로 사회비판을 가차없이 가했던 작품들로 기대를 한몸에 받던 작가였던 듯한데.
인터넷에서 찾아본 작품들과는 전혀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그림들.
"그리고 또 그리고.
하루에도 수만가지 이미지가 넘쳐나고, AI가 문자로 짧은 시간에 완성된 그림을 그려내는 시대에 작가가 형상을 묘사하고 그것에 의미를 더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십년 가까이 되면서, 이제 작품과 전시가 개별적 표현의 수단으로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실현되는 '일상에 대한 태도'로 접근하고 접근되기를 모색한다."
라는 글에서 작가의 문제의식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2015년 이후 한적한 곳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고 주변 사람들, 마을사람들을 모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간과 인간을 잇는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박정권을 겪으며 우리는 역사의 몰락을 온몸으로 경험했고, 또 2015년 말과 2016년 초에 걸친 겨울을 함께 보내며 역사를 회복하는 데 모두 힘을 합쳤다. 그리고 잠시 돌아온 소강상태, 희망이 꿈틀대던 그 짧은 시기 동안, 많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일상의 회복에 집중했던 그때. 이분도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계기를 만들어낸 듯하다. 같은 시기 강요배가 자신의 인생과 삶의 터전으로 눈길을 돌렸듯이.
나도 그런 거 같다. 그 뜨거웠던 시기를 지나면서 스스로 도취되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열정과 무분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양편을 일도양단으로 나누어 비난하거나 편을 들며, 그것이 발전으로 가는 길이라 착각했던 시기. 다행히 2019년 잠시 현장에서 떨어지며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진 것도 좋은 영향을 미친 거 같기도 하고. 여튼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난 시기였다.
개울가 뮤지엄스테이는 정말로 고요했다. 공간은 넓고 정갈했다. 한동안 잠을 잘 못이뤘었는데, 이날 2시간의 운전과 미술관 관람, 금속공예(라고 하기엔 좀 너무 날림이었던,,확실이 난 손재주가 없다)체험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두시간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평일이라 사람도 없어 적막하리만치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려고 온 거니까 만족. 산꼭대기 우리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차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 반려요거트로 아침을 먹고 다시 미술관으로 갔다. 관리하시는 분이 1층 카페의 창을 활짝 젖혀주었는데, 천국같은 바람이 불어와 떠날 수가 없었다. 2시간 동안 그 바람을 충분히 즐겼다. 어디선가 날아 들어온 메뚜기의 날개 빛이 아주 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