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수님이 싫습니다

브런치는 나의 대나무숲

by 스물리에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세상을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과는 잘 지내면 되는 것이고, 별로 끌리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면서 지낸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순조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회에선 결코 내가 원하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굳이 직접 겪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내린 결정으로 인해 부딪히기 싫어도 하루에 꼭 눈을 마주쳐야 하는 관계가 있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인식조차 못했다. 그리고 그런 책임져야 하는 관계 속에서 오가는 억지와 가식들에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모두와 잘 지내는 것, 갈등 없이 원만하게 지내는 것. 그것이 나의 능력인 줄 알고서 우물 안에 갇혀 어깨를 잔뜩 펴고서 당당했다.


아직 살아야 하는 세상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인식했고, 동시에 원치 않는 사람사이의 관계를 견뎌야 하는 순간이 수없이 많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마주치고서야 나는 아직 어리석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늘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예전 같으면 '싫어'한다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들먹이며 사람관계를 논하는 것 자체를 부정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멀어지면 그만이라는 말과 함께 마음씨 넓은 흥부의 아내 역할을 자처했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어설프게 아량 넓은 사람인 척하는 나 자신이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정적인 말소리 그대로 '싫다'라는 감정을 그대로 내뱉고 싶었다.




대학원 2년의 시간을 보냈던 모든 날에 교수님을 존경할 수가 없었다.


연구실에 처음 들어오던 날, 교수님과 짧은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기억에 남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


"나는 뒤에서 말 도는 것 딱 싫어해. 그러니까 너도 할 말 있으면 직접 말하고 그렇게 쿨하게 행동하자."


디테일한 내용이 모두 다 같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 당시 나는 위와 같이 받아들였다.


나 역시 뒤에서 자잘하게 말을 굴리는 것보다는 관계자들끼리 불만이건 만족이건 논리적으로 안건을 해결해 내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2년간의 생활 속에서 교수님은 자신이 이런 일을 멀리하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상식으로 둔갑시키고자 초장에 기선제압을 하신 거라는 사실을 졸업해서야 알았다.


학부연구생을 했던 동기들보다 1년 늦게 연구실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2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주어진 연구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했다.


그래서 밤을 새우거나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일수가 많아졌다.


초반 데이터 확보가 잘 되지 않아 여러 번 반복 실험을 했을 때 힘들다는 생각 없이 데이터만 잘 나오기를 바랐다.


사람이 조금 지쳐올 때쯤 데이터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연구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반복되는 실험과 이론공부, 데이터 해석은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일이 힘겹게 다가왔다.


연구 초반, 교수님께서는 1년 반동안 데이터를 확보하면 바로 논문 작업 시작해서 졸업하기 전에 논문 투고하자고 말씀하셨다.

졸업 전, 논문 하나는 꼭 괜찮은 저널에 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서 열심히 연구했다.


그렇게 1년 반동안 계획되어 있던 실험과정을 1년으로 단축시켜 원하는 데이터를 완성시켰을 때는 너무나 뿌듯했다.


교수님과의 미팅에서 너무 들떠있는 나를 억누르고 최대한 덤덤하게 잘 나온 데이터를 설명드렸다.


이후의 플랜을 함께 논의하고 싶었지만, 고생했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고, 멍한 상태로 오피스를 나왔다.


요즘 많이 바쁘신가 보다 생각하며 다음 미팅 때까지 할 일을 정리하며 기다렸다.


일주일이 지니도 몇 달이 지나도 말씀이 없으셨다.


그제야 나는 교수님께 살짝씩 어필을 했고 교수님은 마지못해 전체적인 피겨나 스크립트를 가져와보라고 하셨다.


이미 설명했던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설명드렸고 임의로 구성한 피겨들과 논문 구성에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미팅 중 피곤하다며 다음에 하자고 중간에 중단해 버리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고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에게는 반년이 채 남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조금은 조급해졌고 반년동안 취업 준비, 해외학회 발표, 논문 스크립트 정리, 인수인계 등 안팎으로 신경 써야 할 것들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무진장 바쁘게 할 일들을 쳐내고 있는 와중에 교수님께서 내 동기 중 한 명을 전력을 다해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허탈했고 무기력했다.


그래서 논문도 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왠지 모를 박탈감이 들었다.


외부 학회에서 내가 확보했던 데이터를 가지고 발표를 구성하신 걸 보면 연구 결과의 부족함은 아니라 생각했다.


연구 성과가 나 자신과 동일시되지 않고 오히려 작아지는 현실에 자신감을 많이 잃어갔다.


그리고 예쁘게 실험 데이터를 모았던 내가 멍청해 보이기도 했다. 연구만 성공시키면 모든 게 잘 풀려나갈 줄 알았던 시야가 좁은 나를 탓했다.

잘 나온 데이터는 연구실에 남을 것이고 나는 졸업을 해서 떠날 것이니, 어쩌면 교수님에게 나는 토사구팽의 한 마리의 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정적인 건


"제대로 데이터 정리하지 않거나 스크립트 완성 안 해놓으면 제1 저자에서 빼버릴 거니까 제대로 해놓고 졸업해라"


으악. 정말 그 말을 듣고 있을 때 내 마음은 뜨악이었다.


그동안 나는 성실하게 살았고 나름 믿음직한 석사생이라고 생각했고 교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해 오셨는데,


그게 그저 말뿐인 허울이었다는 걸 저 말을 듣고 느꼈다.


제1저자를 무기로 협박하는 교수님에게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나는 객관적인 상황 설명이면 조금 속상하긴 해도 끄덕거리면서 이해했을 텐데.


그냥 욕 한 번에 모든 걸 날려버렸을 텐데.


앞 뒤 다른 상황에 질질 끌려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속에서 열불이 나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던 내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이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트레스가 꽉꽉 눌려 담겼고 참지 못한 나는


아니 교수님께서는 앞에서 말하고 쿨한 거 좋아하신다면서요!!!

어쩜 그렇게 찌질하세요!!?


라고 마지막 출근일에 말씀드리며 오피스를 박차고 나왔다.



고 하고 싶었는데..

을의 입장에서, 그리고 내 성격상 못하겠다 싶어서 마지막 출근일에는 그동안신경 써주셔서 감사했다는 말과 함께 떡 선물을 드리며 마무리했다.




어렸을 적, 마음을 참아내는 게 현명함이라 판단했고 그게 어른스러움의 표본이자 참된 도덕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때는 스스로 마음의 부정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내가 단단하다 믿었다.


지금은 어린 나를 보살필 그릇이 너무 작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으면 언제든 잘게 부서질 것 같아서 되는대로 감정 그 자체를 이해해주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덩이만 겨우 걸친 이 좁은 그릇마저 내동댕이 치며 땡깡 부릴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이 당연한 명제를 왜 피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인정해도 내 가치가 깎여나가는 게 아닌데. 받아들여도 뒤끝 있는 찌질한 인간이 되는 게 아닐 텐데.


아니다. 뭐. 인간이면 다 찌질한 구석 두어 개쯤은 가지고 있는 거지. 그 공실마저 내어주지 않으려고 단단히 동여매려 했는지 참.


뭐 하러 내 마음까지 부정하면서, 싫다는 것도 제대로 말 못 하는 사람으로 자라왔을까 괜한 고집을 탓해본다.


나는 그 사람에게 했던 나의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 되는 것이 속상했다.

마음이 허용하는 한계치를 넘어서 적응하려 노력했고 그럴 필요 없었다는 말과 행동에 허탈해졌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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