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후회하기는 싫다
사실 나는 조급함이 크고 '정상성'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정상적인 평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규칙을 잘 준수하려 했다.
이 삶의 태도 안에서 칼취업은 꼭 해내야 하는 부분이었고 대학교를 막 입학한 1학년 때에도 취업이라는 것을 먼저 걱정했었다.
과학 고등학교를 선택한 순간부터 인생에 주어진 숙제는 화학이었고, 대학교에선 성적을 잘 받아야 했고 장학금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나만의 전문성을 기르고 싶었다. 지금 몸 담고 있는 분야가 실제로 좋아하는 분야인지에 대한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발을 들이고 있고 지금 하고 있고 그 길로 시간과 함께 쌓여가는 경험이 기존에 존재했기에 새로이 다른 것을 시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취업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할 때가 왔을 때, 있는 힘껏 뛰지 못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주저앉아있을수록 커지는 산에 모든 시야가 가로막힌 듯 답답했다.
그렇게 잘 걸어왔던 9년의 끝은 가로막혀있었다.
이제 샛길을 가야 할 차례일지 이 가로막힌 길을 뚫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두려운 마음이 커졌다.
나에게 남은 거라곤 전공책 하나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어른뿐이다.
나는 뭘 하고 싶니. 꿈은 없더라도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지금껏 그게 그저 하고 싶은 것으로만 남아있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막막한 현실이 묵묵히 걸어가는 것조차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러다 나를 가로막는 하나의 숏츠를 봤다. 월 200이라도 벌어야 하는 나이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 나서겠다며 부모님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게 지금 20대 후반의 현실이라는 그 말이 나를 말하는 건지 의심됐다. 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현실을 도피하는 건지 지금 내 행보에 어떤 피드백이 어울리는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주변에서는 나의 결과를 기다리는 몇 어른들과 친구들이 아니, 내가 그렇게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일 뿐일 텐데 그 마음 때문에 더욱 초조해진다. 더욱 조급해진다.
왜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과 발이 꽁꽁 묶여서 풀어내지 못하는지 내가 처음으로 내가 답답했다.
내가 어떠한 삶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보다는 빠르게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나도 모르게 갇혀 대학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어제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인 인생의 선배와 통화를 했었다. 20대 후반의 우리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도 마지막은 꼭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주제로 되돌아온다.
지금 현재 하고 싶은 걸 도전해서 공부하고 있고 그 속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가고 있는 인생의 선배가 내게 '너도 그냥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해봐'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로 달려왔으니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에 시간을 사용해 보라 말했다.
당장의 짧은 여행도 좋으니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라고도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막혀 있는 혈이 풀리듯 마음에 혈색이 돌았다.
과거의 나는 이런 부류의 말을 들으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스트레이트로 달려갔고 취직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참고 해내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나 역시도 참고 달려 나가야 한다고 말을 했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난을 이겨내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불평불만하지 말고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생각을 잠시 놓아두고 무작정 해보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지금 이 시간이 핑계라도 좋으니, 그냥 나도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생각에 힘을 얻었다.
이번 기회에 시간 낭비할까 봐 겁내고 미뤄오던 일을 시도해야겠다 생각했다.
지금까지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말 아차 싶었던 점은 내가 나 자신을 거짓된 열정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는 점이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들었다.
특히 면접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묻는 질문 중 하나인, 단점에 관한 에피소드는 객관적으로 별거 아닌 상황일 수 있지만 그 별거 아닌 일이 겨우 균형 잡고 서 있는 나를 넘어지게 만든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면접관은 단점을 극복해 냈거나 혹은 장점 같은 단점 말고 진짜로 자신의 단점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울 수도 있는 질문에 면접 준비 과정에서도 쉽나리 답을 내지 못했다. 기업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치명적이지 않은 단점을 찾으려고 어렵게 느껴졌다기보다는 내가 나를 잘 몰라서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가 없어서 어려웠다.
면접은 상대를 설득해야만 하는 자리이다. 나는 나를 잘 몰라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었다.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남에게 쓴소리를 잘하지 못한다.'라는 내용이 내가 미리 준비했던 답변이었고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현실적인 방법을 시행했는지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 등 연이어져 오는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을 하던 중 '나에게 그럼 쓴소리 한번 해보세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그 질문에 얼어붙었다. 결국 설득해내지 못했다.
애초에 나 자신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지고 들어갔다.
이렇게 내가 나를 잘 모르는 이유는 진심으로 도전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실패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여러 난관들이 있었지만 이는 모두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목에서 겪었던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어진 해야 할 일에 몰두하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을 외면한 채 꾹 참고 해내었던 일들이라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포함시키기가 싫었다. 본능적으로 거북했다.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에 앞뒤상관하지 않고 도전해 보는 것. 그리고 실패해 보는 것. 그리고 다시 도전해 보는 것.
이게 지금 나에게 필요한 처방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짜 나의 단점을 느끼는 것.
1년 뒤의 나는 나의 단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될 것. 이게 나의 첫 번째 목표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의욕이 꽤나 쉽게 생기는 아이였다. 작은 집안일에서부터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실험을 하는 일,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모든 일을 시작하면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려고 했다. 일단 시작하면 승부욕이 생기고 끝까지 해낼 테다 하는 욕심도 생겼다.
그렇지만, 취업 준비 과정에 있어서만큼은 의욕이 유지되는 게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초반 칼취업에 성공할 거라고 다짐했던 내가 무색하게도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 현실에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취업을 한다고 해도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그저 고정 돈벌이 용으로 취업을 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점점 길어지는 취업준비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계속 미룰 수밖에 없었는데 무기한 연장되는 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바엔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후회를 덜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취업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나를 탐색하는 시간을 덜 가졌던 것. 이 것이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내가 가장 후회하는 삶의 태도였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나서도 이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후회는 더 이상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 처음부터 배워야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의욕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앞으로의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나가고 싶다.
세상에 쉬운 것 하나 없으니 많이 힘들 거란 생각도 들지만, 지루하지 않으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