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란 놓음으로써 정리되는 것 같다

깨끗하지 않은 인간관계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한다

by 스물리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6개월의 취준기간을 거쳐 회사에 입사한지 3개월이 지났다.


대학원을 다닐 당시에 교수님이 싫었고 졸업과 동시에 연락을 끊었다.

석사라는게 끝이 있어 버틸 수 있었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는 버거웠던 모든 관계를 끊어냈다. 연구실 동기들, 선배들 그리고 교수님까지.


속이 후련했다.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숨이 안쉬어지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하고.. 나의 모든 기분은 우울했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게 끝이 나면, 그 때에는 절대 이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한편으로 내가지금 이렇게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기억과 감각이 흐릿해지는 시기가 오면 그. 사람들을 용서하고 잘 지내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건 지금의 나를 배신하는 일인데.. 절대 그러지말자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래의 내 우유부단함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다.


그때의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잘 알아서, 결국 힘들었던 감정에 대한 독기는 서서히 사라지고 그 사람들을 향해 미소짓고 있을 나를 자연스레 상상했나보다.


그러기가 싫어서 매순간 다짐했던 거고.


그 다짐의 연장선으로 나는 취업을 했지만, 연구실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의 온전한 노력으로 일궈낸 성취를 연구실과 나눠가지고 싶지 않았다.


관계 단절의 실천이었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학교 건물에 들어갈 때, 혹시라도 교수님을 만나게 될까 주변을 살폈다.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도 모를 뿐더러 상대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이 남아있는 나에게는 눈을 마주친 이후의 모든 상황이 불편하게 다가올 것 같았다.


내 모교에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억울했다.


또 다시 시간이 흘러 학교를 방문했다. 늦은밤 들려서 교수님을 만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가능성이 0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연구실 후배를 마주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 동기의 취업 소식을 접했다. 그 동기가 교수님께도 말을 전했는데, 그 때 이후로 후배에게 나의 소식을 흘리듯 물어보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애써 무시했던 불편한 감정들이 수면으로 올라와 고민의 불씨를 지폈다.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지혜로운 대처일까. 그리고 내 마음이 편할까.


고민했다.


이틀 뒤 결국 교수님께 취업 소식을 전했다.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관계를 애써 끊어내려 했던 그 마음이 오히려 단단히 붙잡아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메세지를 보내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교수님의 답장을 받고서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선택이었음에 확신이 들었다.


예의를 갖추면서도 이제 더이상 그 사람들과의 관계끊기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내 주변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려는 특성이 있었다.


인스타 팔로우라든지 연락처라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부합한 사람과 나를 연결하려 했다.


좋은 사람들만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좀 더 나이가 들어보니 관계는 넓고 얕게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인생을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알록달록한 즐거움을 겪어보는게 더 매력적이라 느껴졌다.


내 주변이들을 정리하려 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나를 너무 남과 깊게 연결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인데, 내가 그때는 아직 나로 온전히 살아가는 법에 미숙해서 주변을 신경쓰고 정리하려 했던 것 같다.


관계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더 크기에 그것에 매달려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주변을 더욱 열어놓고 관계를 내려놓고, 흐르는대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더 편안함을 줄 것 같다.


지금은 이 깨달음을 기반으로 살아가려 한다. 이렇게 살다보면 어떤 깨달음이 올지, 그리고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리리 다짐할지 궁금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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