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제 그만할 때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의 아픈 마음은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람이 들어줘야 한다. 수백 번이고 들어줘야 한다. 마음이 가지고 있는 상처는 죽을 때까지 잘 아물지가 않아서 요령이란 게 없이 그저 아플 때마다 신음을 내면 들어주어야 한다. 역시 다시 한번 인생에는 그저 인내와 반복 만이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어릴 적 받았던 억압과 상처, 의식하지 못한 채 남겨진 후회. 인생에서의 모든 괴로움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으며 살아간다.
이 모든 아픔을 들어줄 이가 있기를 바라면서도, 상대방에게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갈까 싶어 함구하며 또 함구하곤 한다.
그러면서 해소되지 않는 마음을 이고 삶을 살아간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마음속 깊이 자리한 이 뜻 모를 감정은 여유가 없을 적에 슬슬 피어나 괴롭히곤 한다.
그래. 내 감정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면 나도 내부의 그 무언가 깊은 곳의 핵심을 건드리며 뿌리 끝까지 집어채 말로써 끄집어낼 때까지 들어줄 이가 없을지 갈망하곤 한다.
그러면서 간신히 이성을 잡아가며 여기서 멈춰야지 혹은 말은 늘 삼가는 거라면서 그 뿌리를 찾지도 못한 채 안 그래도 좁은 구석에 빠듯하게 남겨둔다.
그러니까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상처는 뿌리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고서야 간신히 찾을 수가 있는 거다.
그전까지는 많이 고통스럽고 반복적으로 슬며시 신경통처럼 두근거리게 할 거다.
참 신기한 게 생각해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중 중요하고 귀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만큼 쉽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를 오늘 발견했다.
사람이 아픔과 상처를 말로써 표현할 때, 언제든 다시금 몇 번이고 토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주변이는 그저 하염없이 공감하며 귀 기울여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참 귀한 존재들 그리고 관계들.
예전에 사람의 아픔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그 정신적 깨달음을 이은 솔루션적인 깨달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제 인생을 살아가며 실제 실천을 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앞으로의 퀘스트가 될 것이다.
물론 사람은 자신 스스로 내면의 아픔과 고통의 원인을 찾아나가야 한다. 마냥 들어주는 이가 나타나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수동적인 태도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소중한 이의 아픔의 유통기한을 내 멋대로 판단하고서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며 단정 지었던 과거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사람은 몇 마디로 그 속에 어린 한을 풀어내진 못한다.
그러니 몇 번 반복했다고 이제 그만하기를 바라는 것은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다.
판단하지 않고 몇 번이고 들어주는 것. 본질적인 행위가 아닐 수 있지만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느낄 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끄적여보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