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외면한 채 살아온 나날들
하기 싫은 것을 꾹 참아내고 끝까지 마침표를 찍어내는 능력. 그것을 버티는 능력이라 부른다. 나와 맞지 않아도 마음이 편치 않아도 이미 발을 들였다면 설정한 목표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결과를 만들어 나가는 것. 지금까지의 인생 가치관이었나 싶을 정도로 참아내는 방식에 익숙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미덕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사회와는 단절된, 살짝쿵 멈춰있는 이 순간에 그것은 그저 나의 진실된 욕구를 외면하도록 만든 맹목적인 어쩌면 무책임한 삶의 태도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중학교 시절, 아주 그냥 모범생이었던 그 시절에 어른들말이라면 껌뻑 죽을 듯이 잘 듣는 아이가 바로 나다. 선생님 말이라면 칼같이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나를 친구들이나 선생님, 가족들은 좋아했다. 소위 착하고 바른 아이의 대명사였다.
대학생 때, 수학학원 알바를 하면서 깨달았다. 나 같은 애를 선생님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조용하고 말 잘 듣고 그래서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애들은 나를 아주 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애정이 갔다.
초등학교 때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이 하지 않았을까 하는 학습지부터, 한자에 웅변에 온갖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해야만 하니까 해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놀러 가고 싶어도 걱정하시는 부모님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며 스탠드에 불을 켜고 앉아 공부하는 '척'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노는 친구, 조용한 친구 할 거 없이 다 같이 어울렸던 나는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레 줄어들면서 그렇게 졸업식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이는 내가 가장 정말 많이 아주 제법 후회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들에 대한 꿈을 정말 많이 꿨다. 그만큼 친구와 놀고 싶고 같이 감정을 나누고 싶던 욕구를 참아가며 어른들에게 잘 보이려 했던 나를 정말 많이 후회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과학고등학교를 알게 되었고 선생님과 가족의 권유로, 그리고 삶을 더욱 능동적으로 사는 친구들을 만나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진학을 결심하였다. 원서를 넣었고 운 좋게 합격하였다. 과연 운이 좋았던 걸까..? 이때 중요한 점은 이공계라는 뜻을 모르던 한 학생이 그저 주변의 환경을 바꾸고자 과학 중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다는 점이다. 과학을 잘 모른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고등학생으로서의 고생은 최대치를 찍었던 것 같다. 성적이 다였던 고등학교에서 은근한 무시도 당해보고 대놓고 눈치를 주기도 하고, 최하점을 받아보기도 했다. 인생의 첫 실패를 이곳에서 경험했다. 그래도 무던한 성격으로 콩벌레가 동그랗게 등을 말아 버티듯, 나도 단단한 등껍데기 하나 머리에 이고 졸업만을 바라보며 버텼다.
그렇게 자연스레 과학에 발을 들였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자연계열의 석사학위까지 마친 백수가 되었다.
원래 심리, 철학, 작문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문과형 사람이었는데 사람도 좋아해서 뭔가 이런 분야로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싶었는데.. 현실에 주어진 퀘스트 들만 달성해 내느라 정작 내가 원하는 길로 나아갈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새가 없었다. 뒤늦게 알아차렸다. 무의식 중엔 나와 맞지 않는 상황과 현실을 알아차렸을지 몰라도 의식으로 끌어올려 변화시키지 못했다.
시작을 하고 끝을 내고 다시 시작하는 삶이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다양한 순간에서 나는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았다는 핑계로 어영부영 잘못 끼워진 구멍에 맞춰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욕구는 기존의 관성대로 우선순위에서 배재되었다. 그리고 한번 시작했던 길로 취업이라는 끝을 봐야 그간의 노력이 의미를 가진다는 누군가의 조언도 일리는 있었다.
누구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던 내가 지금 그 기대에 벗어나 한도 없이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대로 만족하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내가 그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칭찬으로 스스로를 지탱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가식적이었음을 느낀다.
강인하다 믿어왔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속이 텅 빈 강정마냥 느끼하게 절여진 사람 한 덩이가 눈에 보여 참...
그게 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