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어른이 되어 가는 겁니까

참으로 신기한 세상이로구나

by 스물리에

요즘 나는 내가 낯설다.

인내심 많고 화 한번 내지 않았던 내가 요즘에는 화가 가득한 나날들의 연속이다.


분명 나를 칭하는 여러 수식어는 대부분

속 깊은, 너그러운, 여유로운, 긍정적인, 밝은, 따뜻한, 활기찬 등의 명확하게 좋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들 뿐이었다. 그런 나 자신에 언제나 자부심이 가득했다.


희디 흰 우유에 검붉은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듯 요즘 내 마음속엔 악의 기운이 가득하다. 세상 탓, 남탓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억울한 마음과 생채기 난 부분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를 감싸고돈다.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

가장 먼저 틀어지는 관계는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참 신기하다. 뭔가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인 관계가 가족이다. 거리 조절이 중요하다고 여기저기서 말을 해대는 통에 내 마음이 힘들 때면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그 거리를 어떻게 나 혼자서만 조절할 수가 있겠나. 멀어지면 가까워지려는 통에 마음이 약해지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가까워지면 이미 한번 찔렸던 구석을 다시 한번 찌르는데. 그게 너무 괴로워서 한번 더 멀어지려고 하면 그 마저도 상대에겐 상처가 되어버린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면 무뎌지는 척한다.

물론 덕지덕지 굳어있는 피딱지를 여러 번 열고 닫으면서 나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너 덕분에 이런 상처가 생겼는데 어떻게 인정하고 사과해 줄 수 있겠어? 물으며 적절한 소독을 원했을 때가 왜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어떻게 나의 상처에게만 당당하게 치료를 요구할 수 있을까. 상대편도 똑같은, 어찌 보면 더한 상처가 군데군데 수놓아져 있어 얇디얇아 보이는 다른 이의 상처에 마음이 동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러다 보면 인생사 힘들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하는 마음으로 덮어둔다. 고름이 붙어 진득진득하게 들러붙어도 그저 덮어만 둔다. 아직은 열어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 그 어떤 적절한 조치도 해줄 용기가 나질 않아서 고이 덧나지 않게 덮어만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덮어놓는다.


그리고선 덮어둔 곳에서 언제 어떻게 시큰거릴지 모르기에 늘 경계태세를 갖는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각자의 상처는 개개인의 원하지 않는 순간에 울렁거리게 만든다. 언젠가 내가 너에게 받아낼 사과의 말들이 있는데 너는 아직 그걸 모르고 있겠지. 그러면서 내가 너에게 받은 상처는 도대체 누구로부터 기인한 건지 그 기원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나는 너에게 아직 받아야 할 사과가 있는데, 그걸 뒤로한 채, 멀어지려 했던 내 행동들에 상처를 받는 너에게는 내 잘못이 크게 다가오겠지. 그러면서 잘못의 크기는 동일해지겠지.


이제 실들은 꼬이고 꼬여 거둬드리려 해 봤자 단단히 묶여 그 상태로 묻어 지내야 하는 시기가 온 거다. 눈에 보이지 않도록 꼭꼭 모래밭에 묻어두고 서로의 실이 팽팽해져 모래알 사이사이로 그 실이 빛나려고 할 때는 더 큰 모래 언덕으로 파묻어 토닥여 줄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말, 못다 한 말, 꾹 눌러 담은 말. 그런 말들이 참 많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리며 적절히 그런 말들을 재배치해본다.

더 나아질 결과와 그랬으면 더 아프지 않았을 우리를 떠올리며.

그렇지만 지나간 순간에 대한 미련은 간절한 만큼 강해지고.

이미 떠나온 순간은 다시 잡아낼 수가 없다.

그때의 사람, 그 마음. 어느 것 하나 멈춰있지 않고 흘러갔다. 흘러간다.

그러니까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각자 주머니 하나씩 달고 살아야 한다고.

입 밖으로 적절히 빼내지 못한 말들을 내 가슴속에 묻지 않고 넣어둘 주머니 말이다.

언젠가 꺼내어 들고 싶은, 그렇지만 꺼내지 않아도 상관없을.

가슴에, 마음에 묻어두며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그 많은 말들에 숨 쉬듯 체할 바엔.

그냥 주머니 하나 크게 달고서.

거기에 넣어두려고.




어쨌든 스스로의 상처만을 바라볼 수는 없는 세상이다. 어쩔 때는 그 사실마저 괴롭지만 또 그럭저럭 마음이 괜찮을 때는 그게 위안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여기저기 아픈 사람 투성이라 괜스레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고 이 어려운 세상이 참 신기해지기도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속 빈 강정, 그게 바로 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