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라도 이어가야 했던 시간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시간에도,
연주는 멈출 수 없었다.
예전처럼 모여 연주하기는 힘든 상황이었고,
나는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송바이올린 원장인 재화와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연주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
학생들에게 무대를 완전히 잃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모였다.
결국,
바이올린 학생 한 분과
우리 학원 학생 몇 분만 참여하는
소규모 앙상블 연주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클라리넷 세 명, 바이올린 한 명.
네 명이 함께 무대에 서기로 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다.
방역 수칙을 지키며 연습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연습 전에는 발열 체크를 했고,
혹시라도 컨디션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서로를 먼저 살피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럼에도 학생분들은 묵묵히 따라와 주셨다.
조심스럽지만 성실하게,
그렇게 연습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연주 일정은 7월 4일로 잡았지만,
홀 대관이라는 또 하나의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그때 재화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서초동 쪽에 브라움홀이라고 있는데
가격도 괜찮고 규모도 우리한테 딱 맞을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집합 제한이 다시 걸리면
연주회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 기사를 확인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렇게 피를 말리던 시간들이 지나고,
드디어 7월 4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그동안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은 유난히 무겁고 어지러웠지만,
연주회를 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연주홀로 향했다.
연주홀에 도착하니
이미 연주자들은 도착해 있었고,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리허설을 시작했다.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밝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예전 연주회에서는
‘실수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먼저였다면,
이번 연주회는
‘이렇게라도 연주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안도감과 감사함이 더 컸다.
본 연주회에서도
모든 분들이 훌륭하게 연주해 주셨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다음 연주회에서 또 만나자”는 약속을 나누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쓸쓸했다.
안도감 뒤에 찾아온 허탈함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계획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번 달부터는
우리 학생분들 정기연주회를
두세 분씩 나눠서 매주 진행해 보자.’
성인 학생분들의 반응은
그때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사태가 하루빨리 진정돼서
다시 다 함께 무대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기도와는 다르게,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