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에 들렀다. 국대접 크기의 검은색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장칼국수 1개, 작은 납작 접시에 담긴 나물 반찬 3개, 손바닥만 한 단호박 부침개 1개. 그렇게 해서 총 3,700원이 나왔다.
메인 디시(main dish)인 장칼수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더니 딱 세 번 집으면 없어질 양이었다. 국수 그릇을 들고 배식구로 다가가 국수 면발을 좀 더 줄 수 없는지 물었다. 젊은 영양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해도 될 것을 그녀는 양팔을 자신의 가슴팍에 가지런히 모으더니 절제된 동작으로 ‘X’자를 만들어 보였다.
“면을 더 드릴 수 없습니다.”
이만한 거절이면 나는 알아들어야 했다. 인지의 뜻으로 그녀에게 고개를 약간 숙여 끄덕이곤 자리로 돌아와 국수와 부침개, 그리고 나물을 먹었다. 다 먹었는데도 포만감은 전혀 없었다. 건강관리 차원에서 탄수화물을 줄이겠다고 나섰더니 요즘에는 밥을 먹어도 도통 배가 부르지 않다.
‘이게 무슨 사는 거람!’
빈 그릇을 돌려주고 나오는 길에 여전히 배가 고픈 나는 매점에 들러 바나나를 샀다. 구내식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따뜻한 햇볕이 한가득 내 얼굴로 내려앉았다. 부드럽게 쓰담쓰담하는 볕의 촉수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감질나게 맛보기 하던 그런 따사로움이 아니었다.
바나나가 든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푸근한 날씨 속에서 느릿느릿 좀비처럼 오래 걸었다. 길 한가운데서나 건물 코너에서, 심지어 골목에서도 햇볕은 한결같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볕이 어디 나만 따라다녔으랴. 거리에 나온 저 많은 사람 하나하나에 다 따라붙고 있으니, 이 정도로 쏟아져 나올 양이면 이제 곧 봄이 오리라.
오랜만의 산책으로 고질이던 왼쪽 무릎이 시큰해져 사무실로 다시 돌아올 즈음에는 걸음을 살짝 절었다. 무리했나 싶어 자책하는 마음이 들려다가 이내 고쳐먹었다. 봄이 온다는데 이쯤이야, 그래 진짜 이쯤이야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