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싶었던 날, 730일째 되던 아침

by leederi

아침 7시 20분.

지하철 9호선 급행, 익숙한 그 자리에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입사한 지 정확히 730일째.


오늘로 ‘기간제 2년’이 딱 끝나는 날이었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설렜다.

“내일이면 정규직이겠지?”

그런 기대를 품고, 퇴근길에 좋아하는 카페라떼도 한 잔 샀다.


집에 와서 계약서들을 꺼내놓고 날짜를 꼼꼼히 세어봤다.

2023년 1월 16일부터 2025년 1월 15일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고, 휴가도 5일밖에 안 썼다.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내가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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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침에 온 메시지 한 통.

“오늘 10시, 인사팀으로 와 주세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좋은 소식이라면 왜 굳이 따로 부를까.

불안한 마음으로 도착한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 한 장.

“근로계약 종료 통보”

웃음이 나왔다.

진짜로, 웃음이 터졌다.


2년 동안 새벽 6시반에 일어나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야근이 끝나면 집에 와서도 자료를 정리하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다음엔 정규직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 믿고 버텼는데.

결국 ‘업무분리’라는 말 한마디로 끝이었다.

회의실을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그고 한참을 울었다.

울다가 거울을 보니 눈이 퉁퉁 부었고,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아껴야 했던 회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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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혼자 건물 뒤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겨울이라 바람이 차가웠지만, 마음은 더 시렸다.

그때 옆자리에 아저씨 한 분이 앉으셨다.

청소복을 입고 계셨는데, 내 얼굴을 보시더니 조용히 물으셨다.

“많이 속상한가 봐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힘이 없었다.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 주셨다.

“나도 여기서 15년째 청소하는데,

정규직 된 지 3년 됐어.

나도 10년 넘게 기간제였거든.”

눈물이 다시 핑 돌았다.

아저씨는 담담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법은 2년 넘으면 무기계약이라고 하지만,

사람 마음은 법대로 안 움직이잖아요.

그래도 알아줘요.

우리가 버틴 날들은 헛되지 않아요.

그 시간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잖아요.”

그날,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통보서에 도장 찍고, 사물함 비우고,

동료들에게 조용히 인사하고 나왔다.

회사 문을 나서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났다.

오히려 가벼웠다.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다시 시작했다.

입사할 때 대표님이 하신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회사는 기간제 안 써요.

사람을 기간으로 재단하지 않으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730일 동안 쌓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녹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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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 공원 벤치를 지나가면

초코파이 아저씨를 찾아요.

그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웃으며 청소하시고,

나도 이제 그분에게 초코파이 한 개를 건네요.


우리의 2년은

누군가에게는 그냥 숫자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용기였으니까.


여러분의 730일은

어떤 온도로 남아 있나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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