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살: 내 삶에 간섭 좀 해주세요!
한동안 심리적으로 굉장히 취약해 있었다. 끊임없는 공모전 탈락과 학업에 대한 부담감과 회의감, 조직 내에 정치적 관계에 대한 피로감 등 여러 고민과 걱정 때문에 멍한 그런 시기가 늘 있는 것 같다.
동화도 잘 안 써지고, 공부도 잘 안되고, 이상하게 "나"라는 사람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문득 나에게 조언을 해준 아는 선배 언니가 생각났다.
자기 주관이 확고한 그 언니는 친절인지, 오지랖인지, 나에 대한 관심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도움 될 수 있는 조언"을 해주곤 하였다. 돌이켜 보면 언니의 말들 중 반정도는 실제로 나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고, 듣지 않고 흘려보낸 말들 중 어쩌다 아- 언니 말대로 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은 순간도 있었기에 나는 문득 그 언니와 만나고 싶었다.
오랜만에 건넨 안부 인사와 약속 요청에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약속 당일-
밥을 먹고 카페로 가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안부인사부터 근황까지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내가 요즘 겪는 고민들이 주제로 나왔다.
"돈을 벌어야 해, 뭐든 힘든 일을 해야 지금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상태인지 알게 된다니까."
"자기 합리화야, 회피하면 문제가 더 커져"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해, 좀 웃기지 않아? 내가 겪은 건 더 최악이었어"
"내가 봤을 땐, 네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해, 왜 그런 관계에 힘을 쏟아?"
"그런 사람들 만나지 마, 바보들이야"
"너 지금 되게 이상한 거 알지? 스스로?"
이야기를 나누며 언니가 내게 한 말들은 그 순간
'아. 내가 지금 굉장히 잘못된 상태구나, 나의 문제였구나, 이런 감정과 마음이 나의 합리화와 나약함에서 오는구나,,,'
언니의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집에 와, 침대에 누우니 눈물이 났다.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나름은 순간을 즐기고, 부딪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진짜 별로구나, 작은 것에 만족하는 것 또한 내가 인생을 즐기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의 성장을 막는 거구나
한참을 울었다. 난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무를까
그때, 전화 한 통이 왔다.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친구는 무슨 일인지 물었고 그렇게 한참을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혜원아, 나는 어떤 조언을 해줄 입장은 아닌데, 그냥 내 생각을 말하면 너의 인생과 그 사람의 인생은 다르잖아. 사람마다 환경과 조건, 성향이 다 다른데, 그 사람 인생에선 그게 맞을 수도 있어 근데 그게 너의 인생에서도 옳은 판단일까?"
친구의 말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동시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함께 떠올랐다.
내 인생의 사공은 '나'이다. 나는 아직 망망대해에 떠있다. 어디로 갈지 몰라서 갈피를 못 잡아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하다 보니 조금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힘을 너무 많이 썼다는 것이다.
"여기로 가면 섬이 나와"
"저쪽으로 가면 비바람이 분다더라"
"돛은 이때 펴야 해"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의욕과 욕심 때문에 긴 호흡을 가지고 가야 하는 길에 페이스 조절을 잘못해서 잠깐 지친 것 같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지만,
조금 부족한 사공이어도 내가 이 배의 "사공"임을 잊지 않고 책임감을 가진다면, 결코 배가 산으로 가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또한 합리화와 회피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배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산으로 가는 것보다는 넓은 바다를 안전하게 잘 떠다니는 것 또한 목적지로 향해 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이자 어려운 일이 아닐까?
너무 힘들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감정의 동굴에 사 나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의 고민을 자신의 도파민과 우월감을 위해 조언이라는 방패를 무기 삼아 나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목적지를 향해 갈 때,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조언'은 미쳐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목적지로 갈 것인가는 나만이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방법과 시도에 대한 조언은 필요할 수 있다. 나침반은 어떻게 보는지, 방향키는 이렇게 잡아도 되는 건지 혼자서 겪는 항해 과정은 때로는 어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려고 하는 삶의 도착지에 대해 누군가 '조언'을 한다면 한 번은 더 곱씹어 봐도 좋을 것 같다.
깊은 조언을 가장한 얕은 방해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 진정한 조언은
"여기로 가는 게 제일 좋아"
가 아닌
"이런 방법도 있어, 어때?"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