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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근수근 Jun 26. 2024

철도부설, 식민도시 평택이 건설되다

평택역 중심으로 일본인 마을 형성되다

 평택을 지나는 경부선이 부설되기 전까지는 평택의 중심은 진위, 그것도 봉남리였다. 당시 봉남리는 진위군청 소재지였다. 그러나 경부선이 부설되면서 지역사회의 중심은 철도역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에 따라 진위 일대는 점차 쇠퇴할 수밖에 없었고, 대신 평택역 일대가 새로운 신도시로서 주목 받기 시작하였다.

 경부선은 원래 사람들의 유동인구가 많고 장시가 활발했던 안성을 거쳐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철로가 지나가면 지역이 낙후될 것이라는 안성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평택 쪽으로 밀려 지금의 노선과 평택역이 생겨났다.

 평택은 철도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예전 이름 없던 땅이 갑자기 경제상의 ‘요지’로 변해 경기도 남부지역의 유통 중심지로 떠올랐다. 1905년 개통해 영업을 개시한 평택역은 일제 때의 병남면 통복리로 철도역 설치 당시 마을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전답지(田沓地)였다. 철도 역사(驛舍) 주변은 물론 군청 청사가 들어선 곳도 대부분 전답이었고, 변두리에 민가(民家) 몇 호가 있었을 뿐이었다.  

 평택역이 설치되자 역을 중심으로 일본인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평택은 우선 역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조성되었다. 역을 중심으로 동편의 서북쪽으로는 1등 도로인 1번 국도가 지나갔고, 남서쪽으로도 새로운 도로 즉 신작로가 개통되었다. 평택역 일대에 사통팔달 도로망이 형성되면서 도시가 급격하게 발전하였다. 평택역 남쪽에는 ‘혼마치’라고 불리는 본정통(本町通)이 새로 형성되었다. 당시 평택에도 일본인이 적지 않게 살고 있었고 1932년 평택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각종 기관과 단체이 설립되었다.    

 이처럼 평택역 일대는 일본인의 활동무대였다. 바로 철도역이 설치되면서 비록 일본인들에 의해서였지만 평택역을 중심으로 신도시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평택역을 소개하다

 철도가 부설되면서 철도국에서는 각 역을 소개하였다. 역의 위치, 주변 상황 등을 때로는 소상하게, 때로는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조선철도여행안내’에는 평택역을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다.

 평택역의 위치는 진위군 병남면 통봉리(通峯里), 부산으로부터 227리 4분 떨어져 있다. 진위군청 소재지로서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점이 만나는 곳으로서 광막한 평야를 이루어 농산물이 풍부하고, 아산만과 가장 가까워 배로 운송하기에 편리하였다. 안성까지는 4리 17정, 둔포까지는 2리 7정 정도이고 평탄한 대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군청, 경찰서, 우편소, 학교조합, 조선상업은행지점, 소학교 등이 있다. 그리고 평택역과 관련된 유람지로는 안성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관공서로는 관아, 한성공동창고주식회사 출장소, 한국흥업주식회사, 우편취급소, 순사주재소 등이 있었으며, 일본식 여관인 가납옥(加納屋)이 있었다.     


물동량 늘어나다

 평택역은 경부철도의 역 가운데 서해안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철도역으로 평택은 단지 철도수송에 의존하는 중간 상품유통지로서 뿐만 아니라 서해안의 수운에 기초한 전통적인 유통망 기능도 동시에 갖고 형성됐다. 전통적인 소비시장을 배후지로 하는 대시장이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동서를 잇는 도로망과 남북을 잇는 철도망의 편리한 이점을 안고 평택은 경기남부지역에 상품을 공급하는 중계상업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평택역은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더 많았으며, 화물 또한 보내는 것보다 받는 것이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평택역의 승하차 여객수는 1910년은 전국적으로 24위, 1920년에는 23위, 1930년에는 44위, 1937년에는 39위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평택역을 이용하는 승객수는 전체 철도역 가운데 상위권에 속하였다.      


1905년 설립된 시간 중심 평택역

 평택역은 107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만큼 지역의 다양한 사건사고도 간직하고 있다. 1919년 3월 11일 평택역 앞 사거리에서는 수천 명이 만세를 부르는 3·1만세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또한 1950년에는 6·25 한국전쟁 중 미군의 오인폭격으로 인해 평택역이 폐허로 변하기도 했는데 이 오폭 폭격으로 인해 군인과 피란민 등 1백여 명이 숨져 일대를 피로 물들이기도 했다. 1967년에는 위험에 처한 승객을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은 역무원 이근호씨에게 정부 녹조근정훈장이 수여된 일도 있었다. 특히 역과 인접해 발달한 일명 ‘삼리’ 집창촌은 규모가 매우 커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전국 1일 생활권으로 삶의 질 향상

 현재의 민자 역사 이전 마지막 공공역사는 1987년에 신축 준공했다. 2004년에는 새마을호 정차가 개시되었고 2009년에는 민자 역사로 지어져 2층은 평택역사, 나머지는 AK플라자가 영업 중이다. 송탄역은 1952년 경부선 복선공사로 인해 설립, 병점~천안간 전철 개통에 따라 2005년 1월 20일 평택·서정리·송탄역에 전철역이 개통돼 운행되기 시작했다. 또 진위역과 지제역은 병점~천안간 전철역 추가 개통으로 2006년 6월 30일 신설됐다. 그리고 지제동에 KTX 평택지제역 준공을 앞두고 있어 이 역이 준공되게 되면 평택도 전국을 1시간 30분대에 연결하는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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