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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근수근 Sep 09. 2024

국립익산박물관을 가다-1

유적과 박물관의 조화,박물관을 품은 익산 미륵사지

국립익산박물관 전경사진

■ 유물전시관에서 국립익산박물관으로

국립익산박물관에 가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박물관 건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박물관’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박물관 형식으로 미륵사지와 석탑의 모습을 가리지 않는 것이 설계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이는 삼국시대 최대 불교사원 미륵사지의 남서쪽에 자리한 유적 밀착형 박물관으로 유적지가 돋보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익산 미륵사지가 지정됐고, 1997년 개관한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국립박물관으로 전환됐다. 이후 전시관 남서쪽에 새로운 박물관이 건립돼 2020년 1월 10일 국립익산박물관이 정식으로 개관했다.

국립익산박물관은 2만여 점의 미륵사지 출토 유물과 익산 등 전라북도 서북부지역 문화재를 보존, 전시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은 세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제1전시실 ‘익산 백제’에서는 유물과 영상, 디오라마를 통해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쌍릉 등 백제 사비기의 완숙하고 우아한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는 익산을 조명했다. ‘석불의 미소 되찾기’에서는 머리 부분이 훼손된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원래 모습을 찾기 위해 영상을 석불조형에 비치게 해 본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도록 했다. 제2전시실 ‘미륵사지’에서는 백제 최대 가람 미륵사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 입구에는 미륵사지 동원 승방에서 출토된 것으로 지붕 중앙의 수평으로 이루어진 용마루 양끝에 자리한 장식기와인 ‘치미’를 보여주며 미륵사의 웅장함과 우아함을 추측하게 한다. 전시에서는 미륵사의 역사와 설화, 토목과 건축, 사원의 생산과 경제, 예불과 불경강독 등 미륵사지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제3전시실 ‘역사문화’에서는 고대국가 형성의 밑거름이자 마한과 백제 문화의 완충지로 익산을 중심으로 한 전라북도 서북부 익산문화권을 부각했다. 문물교류의 증거품인 토기와 자기, 익산 입점리 고분군을 비롯한 한성~웅진기 백제 유적, 준왕의 남천지이자 마한의 중심지로서의 익산 등을 다루었다.

이외에도 기획전시실에서는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카페테리아와 문화상품점, 휴게공간이 조성됐다. 그리고 구. 유물전시관은 사회교육관으로 변경해 어린이박물관과 보존처리동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미륵사지 석탑(1970년대)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과 재현된 동탑

■ 문화재 수리의 결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7세기에 세워진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의 흥망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재 수리의 역사와 방향성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미륵사지 석탑은 창건 당시 미륵사에 있었던 세 개의 탑인 중앙 목탑, 동·서 석탑 중 서쪽에 위치한 석탑으로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시기적으로도 빠른 석탑이다. 낮은 기단과 함께 1층 탑신부에 출입이 가능한 문이 마련돼 있다. 그 양옆으로 목조 건축물의 기둥처럼 중간이 살짝 부푼 기둥들이 늘어서 있다. 이외에도 미륵사지석탑은 목조 건축의 구조를 석재로 사용하여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외형을 갖추었다. 실제 목탑처럼 내부로 들어가면 십자형으로 좁은 통로가 마련돼 있고 중앙에는 심초석이 십자의 정중앙에 있다. 십자형 통로는 거대한 석탑의 무게를 떠받치는 탑신부에 마련된 최소한의 공간으로 이렇게 까지 통로를 만든 것은 당시로서는 탑 안으로의 출입이 필수적이었음을 말해준다.

미륵사지 석탑은 1300여년이라는 긴 세월의 무게로 석탑의 절반은 사라지고 석재들은 대부분 풍화, 절단 등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17세기 전후에 석탑이 더 이상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1층 둘레에 석축이 보강되었고 1915년에는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 약 185톤을 덧씌우는 등 여러 차례 변화가 있었다.

1999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 노후화와 구조적 불안정이 우려됨에 따라 해체수리가 결정됐다. 6층 옥개석을 시작으로 해체가 실시됐으며, 기존 실측방법과 함께 3차원 스캐닝을 해체 전·후로 실시해서 정확한 구조를 파악했다. 2009년에는 석탑 1층 내부 중앙의 심주석에서 창건 당시 봉안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기초 보강공사와 가공·조립이 진행됐으며, 2019년 복원을 완료해 일반에 개방했다. 전체높이는 14.5m, 폭 12.5m, 사용된 부재는 1627개, 무게는 약 1830톤에 이른다.

복원은 석탑이 남아있던 6층까지 수리하되 2층까지는 없어진 부분을 보강했다. 복원은 정확한 원형을 알 수 없다면 추론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춰하는 것이 문화재 보존의 보편적인 시각이기 때문에 9층까지 무리하게 복원하지 않았다. 체계적인 수리 방법과 기술들은 최근 국·내외의 석조문화재 보존사업에도 도입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현재 미륵사지에는 9층으로 완전하게 복원된 동탑과 남아있던 6층까지 수리된 서탑이 마주보며 공존하고 있다. 20여년의 간격을 두고 다시 세워진 두 석탑은 우리나라 석조문화재 수리의 역사와 방향성을 대표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긴 세월동안 수리로 인해 볼 수 없었던 석탑을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한다고 해도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금제사리내호 금제사리외호

■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목탑의 구조를 석재로 구현한 미륵사지 석탑은 1층 탑신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내부 십자가 형태 통로 한가운데는 심주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 조금씩 들어 올려 수리하던 중 사리공이 발견됐다. 상자 형태의 사리공 바닥에는 초록빛 유리타일이 깔려있었고 그 위로는 오색의 유리 구슬과 직물, 장신구 등 다양한 공양품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가운데 위치한 금동병을 열자 다시 금으로 만든 작은 병이 들어있었고, 그 안에 사리가 안치돼 있었다. 사리는 원래 더 작은 유리병 안에 들어있었으나 지금은 파손됐다.

사리공 가장 위에는 9자 11행의 명문이 앞뒤로 적힌 금판이 놓여있어 사리를 봉안한 인물과 날짜를 알 수 있었다. 639년 백제의 고위 관등 중 하나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었던 무왕의 왕비는 익산에 새로 터를 잡고 백제 중흥을 꿈꾸는 남편을 위해 미륵사지 석탑 안에 사리를 모시고, 그 경위를 기록한 사리봉영기를 함께 안치했다. 왕비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사리인 만큼,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모여 만들 사리호에 담겨, 각종 유리와 공양품과 함께 귀하게 안치됐다.

미륵사지 석탑 속에서 나온 사리장엄은 지금껏 우리가 몰랐던 백제인을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시켜, 연구자들에게 미륵사의 창건과 선화공주 이야기의 해석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안겨줬다. 또한 정교한 세공이 돋보이는 사리장엄은 백제의 첨단기술을 세상에 드러내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1370년간 탑 속에 잠들어 있던 한 뼘 남짓한 사리장엄은 우리를 또 하나의 백제와 마주하게 했다. 

2018년 보물 제1991호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2020년 1월 국립익산박물관의 첫 특별전 ‘사리장엄, 탑 속 또 하나의 세계’로 선보였고, 특별전 이후 제2전시실에서는 사리장엄구의 출토 당시의 모습을 복제품을 통해 재현해 놓았으며, 출토유물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 보물전’에 전시되고 있다.

미륵사진 동원 승방 출토 '치미'

■ 국립익산박물관의 현재와 미래

국립익산박물관은 고도 익산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의 중심기관으로 ‘미륵사지와 사리장엄구’, ‘고대 불교사원’ 그리고 ‘익산의 백제문화’를 브랜드 삼고 있다. 익산문화권 자료의 수집과 보존, 조사와 연구, 전시와 교육 등을 바탕으로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 아직 개관 초기이기 때문에 어린이박물관이나 교육시설 등은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점차 시설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주로 유적지 공간을 활용한 문화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박물관 주변으로는 미륵사지 관광지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유산과 백제왕도 핵심 유적을 한 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탐방 거점센터가 조성되며, 백제유적종합안내관과 문화재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교육하고 체험할 수 있는 역사관, 전망대, 교육장, 주민참여 공간, 가상체험관과 함께 방문객 편익 증진을 위해 유적 간 연계 환승시설 등이 들어선다.

이처럼 박물관과 유적지가 관광의 중심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하지만 박물관 건축에서도 나타나듯이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물관을 품은 미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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