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효일, 효둘, 효삼.
효일은 아부다비에서 새벽 3시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로 넘어왔다. 수화물 연착으로 예상보다 늦게 공항을 빠져나왔는데 그래도 오전 9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숙소까지는 45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체크인은 오후 3시였다. 도착해서도 6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고민하던 효일은 얼리체크인의 희망을 갖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길치인 효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몇 번의 환승을 거쳐 열심히 숙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숙소 근처에 다다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캐리어 깊숙이 있어서 잠깐 내리다 그치길 빌었으나 소용없었다. 비는 저녁까지 계속 내렸다.
길거리에서 커다란 캐리어를 열어 우산을 꺼낼 생각을 하니 아찔했던 효일은 그냥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가기로 했다. 커다란 캐리어를 질질 끌고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을 한참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비를 맞고 찝찝해져 얼리체크인이 되길 간절히 바랐지만 어쩐지 잘 안 풀리는 날이었다. 방이 꽉 차서 안 된다는 대답을 받았다.
체크인까지 6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막막했지만, 다행히 로비가 넓어서 쉬면서 기다릴 수 있었다. 카운터에 부활절을 위한 작은 알 모양의 초콜릿이 있길래 효둘, 효삼이랑 먹으려고 세 개를 챙기고 짐을 카운터에 맡긴 후 커피를 내려 먹었다. 효일은 평소에 커피를 즐기지 않을뿐더러, 마셔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시는데 유럽이기 때문일까? 생전 먹지도 않던 카푸치노가 땡겼다. 심지어 생각보다 맛이 좋아 두 잔을 내려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효일은 구글맵에서 평점 좋은 케밥집을 찾았다. 인기 있는 곳이라 사람이 많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덩치 좋은 남자 손님만 가득했다. 키도 크고, 머리통만 한 팔뚝에 타투를 한 남정네들 사이에서 160cm가 채 되지 않는 효일은 겁을 먹었다. 잘못하다 시비라도 붙으면 생존 확률이 거의 없어 보였다. 원래 밥을 빨리 먹는 편인데 긴장해서 그런지 더 빨리 먹을 수 있었다. 10분 만에 흡입하고 나왔다.
(맛집이라 그런지 회전율도 빠르고 고기와 야채, 소스도 풍족하게 넣어줘서 배부르게 먹었다.)
가게 정보 : MiS Kebab / Davidgasse 92-94, 1100 Wien
식사를 끝내고 산책할 겸 숙소 주변을 돌아보았는데 마트가 진짜 많았다. 큰 마트, 작은 마트, 새로 지어진 것 같은 깔끔한 마트, 오래된 마트 등등... 마트 너머 마트였다. 그중에서 한 곳에 들어가 동생들과 함께 먹을 딸기를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동생들과 함께 갈 곳들을 남겨두기 위해 적당히 했다.)
다행히 한 시간 일찍 체크인 할 수 있었다. 숙소는 생각 이상이었다. 넓고 쾌적한 데다 뷰도 좋아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바로 짐을 풀고 씻었다. 효둘이 분명 뭘 가지고 왔냐며 캐리어 검사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깜짝 파티를 위해 사 온 것들은 침대 밑에 꽁꽁 잘 숨겨두었다.
몇 시간 뒤, 효둘과 효삼이 도착했다. 효둘과 효삼은 기차를 타고 오느라 배가 고프다고 했다. 효일은 효삼의 부탁으로 사 온 신라면을 끓였다. 그날따라 유난히 라면이 잘 끓여진 탓인지, 외국에서 먹어서 그런 건지 너무 맛있었다. 순식간에 라면이 사라졌다. 배를 채운 우리는 산책 겸 장을 보러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밖에 나가니 비바람이 치고 있었다. 우산이 뒤집히고 난리가 났다. 우리는 비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서로의 몰골을 보며 낄낄거렸다. 설상가상으로 마트는 문을 다 닫은 상황이라 근처 ATM기에서 돈만 뽑고 나왔다. 혹시나 소매치기를 당할까 한 사람이 돈을 뽑을 동안 두 사람이 우산을 들고 보초를 섰다.
숙소에 들어와선 로비를 다시 한 번 들렸다. 부활절 초콜릿 때문이었다. 색깔마다 맛이 조금씩 달랐는데 너무 맛있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초콜릿을 처음 먹어본 애들처럼 틈만 나면 가져다 먹었다.)
숙소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효삼은 출출해졌다며 라면을 또 끓여 먹겠다고 했다. (효삼이의 소화 능력은 대단했다.) 효일과 효둘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효삼이는 혼자라도 라면을 끓여 먹겠다고 했지만 효일과 효둘은 장염으로 고생하는 효삼이 걱정돼 채소가 들어가는 케밥 같은 음식을 먹는 게 낫지 않겠냐며, 차라리 가게에 가서 포장을 해오라고 했다. 효삼이는 라면을 먹지 못하게 하는 언니들에게 서운해했다. 결국은 효삼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냥 침대에 누웠다.
만난 첫날부터 약간의 삐걱임이 있었지만 침대에 누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등 수다를 떨다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렸다.
그렇게 효자매 완전체 여행이 시작되었다.
숙소 정보 : Citadines Apart’hotel South Vienna / Triester Str. 27, 1100 Wien (1박에 10만 원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