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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택시 바가지 수법
(feat. 효삼의 사자후)

효일이가 뽑은 유럽여행의 최고의 순간.

by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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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티켓 사고 불가리아행 버스 타러!


아빠가 여행에 보태 쓰라며 보내준 100만 원 덕분에 우리는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되찾았다. 최악의 순간에 받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 더 특별하고 감사했다. 덕분에 우리는 역사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빵과 음료를 먹으며 다시 여행 일정을 논의했다.

결국, 세르비아에서 숙소를 잡지 않고 바로 불가리아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일정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기대와 설렘을 안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택시 어플이 작동되지 않아 역 앞에 있는 택시 기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우리 불가리아 가야 해서 버스터미널에 가야 하는데 얼마야?"


세르비아 택시 바가지가 만연하다는 글을 본 적 있었다. 가격을 미리 정하고 가야겠다 싶어 타기 전에 물어보았다. 택시기사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항상 미터기를 켜고 다녀. 약속할게. 걱정 마."

어떻게 할까? 우리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잠깐 의논했다. 세르비아 택시 바가지가 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택시 어플이 실행이 안 되는 데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 셋 모두 미터기를 켜고 간다는 말에 어느 정도 안심했다.

우리는 결국 그 택시를 타기로 했고, 택시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의 고장 난 무거운 캐리어를 번쩍 들어 트렁크에 싣었다. 100% 마음을 놓은 건 아니었다. 혹시나 뺑뺑 돌아갈까 효일이가 조수석에서 구글맵을 보며 이동했다. 택시기사는 구글맵을 확인하는 효일이를 보곤 웃으며 말했다.


"봐, 그 맵이랑 똑같이 가지? 미터기도 켰고?"


구글 맵 추천 경로와 똑같이 움직이고 있긴 했다. 괜한 의심을 한 건가 싶어 미안해진 효일은 구글 맵을 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택시 기사가 얼마나 뻔뻔하고 기가 막힌 지 황당할 따름이다.


버스터미널까지 15-20분 만에 도착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는 말도 안 되게 높은 요금을 불러왔다. 5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기본요금이 270디나르(약 3,464원)고 km당 96디나르(약 1,232원/평일), 125디나르(약 1,604원/주말)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세르비아의 한 달 생활비가 50만 원이라고 한다.) 우리가 말도 안 된다며 항의했지만 남자는 애석하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터기 켜고 온 거 너희도 알잖아. 이 금액 맞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효일과 효둘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심지어 디나르만 받는다고 해서 효둘은 환전거래소를 찾으러 갔다. 그 사이 택시 기사와 실랑이하던 효삼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써얼!!! 잇츠 투 익스펜시브!!! (아저씨, 너무 비싸잖아요!!!)"


효삼의 사자후가 세르비아에 울려 퍼졌다. 효일이는 효삼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기도 웃기기도 했다. 효삼이는 항상 누군가를 이해하고 감싸는 성격이라 대체로 '그럴 수도 있지'하며 크게 화를 내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효삼이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택시기사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이것도 나의 돈이 아니야. 다 택시 회사가 가져가는 거라고. 그리고 나는 미터기를 켜고, 제대로 된 길로 왔어. 진짜로!"


다시 생각해도 가증스럽다. 효일이는 효삼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효둘이 돈을 가지고 돌아왔고 결국 우리는 그 택시 기사가 부른 요금을 다 지불했다. 효삼이는 끝까지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We know it's expensive!!! Don't do that. ok? (우리 이거 비싼 거 알고 있거든? 그러지 마라, 진짜. 알겠냐?)"


효삼의 살기가 넘실거렸다. 돈을 받은 택시 기사는 미안하다며 빠르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효삼이는 우리가 돈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저 양아치 같은 놈한테 눈 뜨고 코 베여 5만 원이나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솟았다고 했다. 효둘이 환전소를 찾겠다고 뛰어가는 것을 보고 분노가 폭발했다고. 효일이는 여행 내내 효삼이의 사자후가 이번 유럽 여행에 하이라이트 넘버원 장면이라며, 효둘이 못 본 것이 너무 아쉽다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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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택시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하고 불가리아행 버스에 올라탔다. 불가리아에 도착하니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숙소에 도착한 후, 효일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왜 그때 효삼의 편에 서서 같이 싸우지 않았을까. 효삼이를 달래고 말리려고만 했을까? 나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더라면 어땠을까?'


효일이는 스무 살 유럽에 처음 왔던 그때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때는 뜨거운 마음으로 부당함에 맞섰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려는 자신에게 약간의 실망과 서글픔을 느꼈다고 했다. (물론 동생들을 케어해야 하는 첫째의 입장도 있긴 하겠지만.)


이 날의 경험으로 인해 효일은 효삼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우리가 자매지만 서로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다고 한다. 여행 중 맞닥뜨리는 고난은 성장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효삼이의 용기와 효일이의 망설임, 그리고 그 사이의 후회가 효일에게는 어쩌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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