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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Sep 05. 2022

아들과 포켓몬스터 영화 보기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아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위해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관심 가져보기로 했다. 

사랑하면 상대를 위해서도 취미를 같이 해볼 텐데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고압적인 자세로 거부했었다. 

게임이 그랬었고, 포켓몬스터가 그랬다. 이 외에도 아들이 좋아하는 코딩, 바둑 역시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라서 함께 하기 어려웠다. 

아들이 뭐라 뭐라 설명하면 "아, 그래?" 정도의 리액션만 해줄 수 있었고, 핑퐁 주고받듯 대화 나눌만한 정보도 여력도 없었다. 우린 너무나 세대차이가 나서 한 가정에 살고 있지만 소통되기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책은 아들이 관심 갖지 않았기에 각자도생처럼 각자 취미생활을 해 나갔다. 


멘토 선생님이 (아들을 이해하고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아들과 취미를 같이 해보라 권면하셔서 지난주에는 아들이 원하는 로블록스 게임을 함께 했었다. 게임하면 게임중독이 바로 떠오르는 40대의 여자가 게임을 한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포기한 것과 같았다. 정말 내가 못하는 분야이자 가장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게임 속에서 아들을 뒤따라 뛰어다녔었다. 

'요즘 얼마나 기술이 발전했는데, 그래픽이 요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가 아들을 따라 뛰는 게임 속 캐릭터를 보면서 왠지 모를 정감이 있었다. 저기 뛰어다니는 캐릭터가 정말 아들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어서 잠시나마 아들과 낯선 공간에 다녀온 느낌이 들기는 했다.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해볼 텐데, 이번에는 아들들이 대부분 좋아하는 포켓몬스터에 대해 알아가기로 했다. 


나는 픽사와 디즈니 스타일을 좋아하기에 포켓몬스터 캐릭터들이 조악하고, 색감이 너무 원색이라서 촌스럽다 생각했었다. 그런 연유로 안 봤었고, 배틀하는 것이 마치 게임하듯 유치하다 생각했었기에 아들이 포켓몬스터 영화 보고 있을 때마다 나는 다른 일을 했고, 관심도 생기지 않았었다. 


우리가 보기로 한 영화는 17년작 극장판 <너로 정했다>였다. 9살, 7살 두 녀석과 보았는데,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두 녀석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갑자기 일어나서 화면을 가로막고 포켓몬 캐릭터를 나에게 설명하거나 뒤에 이어질 스토리를 설명해댔다. 너무 좋아하는 영화 볼 때 나도 그런 적 있었던 게 생각났다. 같이 보던 남편은 잠들어 버렸고, 나도 피곤했어서 잠시 눈 좀 붙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설명하면서 내 얼굴을 쳐다봐서 잠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얻어낸 것들이 많다. 

 

첫 번째, 포켓몬스터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포켓몬스터는 96년에 처음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어졌었다. 말하자면, 나의 세대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나는 게임기가 없었고, 게임을 좋아하지도 접하지도 않아서 빠지지 않았을 뿐. 96년도에 나는 아이돌 그룹이나 뉴키즈 온 더 블록에 빠졌었지. 앞서간 남자들이나 부잣집에서나 게임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학창 시절 게임기 가진 사람 못 봤었다. 포켓몬스터가 보여주는 세계가 아이들에게 유해할 거라 생각했지만(몬스터와 사람이 친구)(몬스터는 계속 진화함), 그렇지 않았다. 성장 스토리로 인해 아이들은 도전하고 꿈꾸고 친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우리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정석/교과서적이고 도덕적인 대사와 캐릭터로 오히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니언즈 2에서 주인공은 악당이 되고 싶어 한다. 몇몇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대사들은 선을 넘는 듯한 아슬아슬한 것도 많다) 

두 번째, 스토리 속 세계관은 오래도록 아이들과 세대를 거쳐서 팬덤과 영향력을 준다. 

포켓몬스터는 전 세계 미디어 믹스 총매출 1위의 전 세계적 문화적 현상이라고 불릴 만큼의 글로벌 콘텐츠(나무 위키 발췌)라고 한다. 마블과 스타워즈 합한 것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정말 어머어마하다. 

난 포켓몬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자녀들은 포켓몬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터미네이터를 처음 봤을 때, 아이언맨을 처음 봤을 때, 트랜스포머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포켓몬스터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그에 비하면 약하지만, 감동은 비견할만하였다. 


포켓몬스터는 내 아들의 마음을 뺏듯이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포켓몬 빵은 몇 년마다 주기가 도는 것인지 생각될 정도로 유행처럼 돌아와 돌풍을 불었고, 엄마들의 마음도 경제도 힘들게 했었다. 

포켓몬 카드를 모으거나, 닌텐도 스위치에서 포켓몬 게임을 하거나, 캐릭터 스티커를 모으거나 도감을 갖고 있거나 캐릭터 인형, 피큐어, 블록(레고, 나노 블록) 이밖에 얼마나 더 확장해서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뻗어 나가고 있어서 집집마다 여러 종류를 갖고 있다.  


정말 나만 빼고 다 좋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포켓몬 <너로 정했다> 편을 보면서 나도 달라진 부분이 생기긴 했다. 

우리 아들들이 왜 그 영화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보는지를 알았고, 지우의 순수함에 반하고, 꿈을 향한 도전과 성장 스토리가 전 세계 아이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힘을 주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피카츄와 지우의 우정은 눈물이 날만큼 찡했고(사람과 우정도 찡하게 나오길), 포켓몬들이 배틀 중 진화하는 모습에서 우리 인생들도 고난을 통해 성숙해지고, 변화되는 것이라 이미지화해볼 수 있었다. 


아들에게 질문했다. 

"너는 포켓몬 중에서 어떤 캐릭터가 제일 좋아?"

"파이리"

파이리라는 말에 그냥 코끝이 찡해졌다. 아들의 마음속에 있는 긍휼과 사랑의 정신을 볼 수 있었다. 

파이리는 배틀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주인으로부터 버려졌었다. 그러나 파이리는 비를 맞으며 쇠약해진 채로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우는 파이리를 발견해서 돕고 싶어 하지만, 파이리는 지우가 아닌 자신의 주인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주인이 오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파이리가 주인에게 다가가는데, 되려 걷어차임을 당한다. 

"약한 녀석을 쓸모없어"라는 말과 함께 상처와 버림받은 녀석을 지우는 밤새 품에 끌어안고, 간호하면서 보살핀다. 파이리가 회복되었을 때, 지우는 조심스레 "나와 함께 가자"라고 얘기를 건네고, 파이리는 망설이다 지우와 함께하기로 선택하며 둘은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지우 트레이너의 훈련을 받으며 몇 번의 배틀에 나가서 싸우면서 파이리는 진화해 나가는데, 한 번의 패배 이후 두 번째 배틀에서 '리자드' (더 세진 포켓몬)으로 진화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배틀 중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리자몽'으로 더 진화하여 공룡처럼 커지고 강해진다. 

나중에 자신을 버린 주인을 구해주기까지 한다. 이런 남자들이 끌릴만한 스토리와 감성으로 인해 아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진화하여 센 '리자몽'이 아닌 약한 '파이리'가 좋은 것은 그때의 파이리에게서 동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파이리에게는 순수한 사랑. 충성, 헌신이 있었다. 이런 가치들을 아들도 느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들! 네가 어떤 아이인지 조금 알겠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지 말이야. 지우를 보면 네 모습 같아 보여, 지우가 세계 최고의 포켓몬 마스터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났듯이 너 역시 꿈을 위해 떠나게 될 거야. 그때가 언제일지 알지 못하지만,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벌써부터 엄마는 좀 슬퍼. 하지만 그런 너의 모습이 자랑스러울 거야. 너를 끝까지 응원할 거야! (지우 엄마는 엄청난 잔소리꾼이고 지우는 엄마를 귀찮아하는 것처럼 나오던데, 그건 정말 현실 같기도 해서 슬펐다. 나의 미래는 그러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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