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날 Sep 27. 2022

결핍은 문제로 드러난다.

9살 첫째와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학원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4시였고, 나는 그 시간이면 둘째를 데리러 가야 했다. 꼬부기를 놀이터에서 놀리게 한 뒤 집으로 돌아가면 6시가량되었고, 그때부터 저녁식사와 씻기를 마치고 9시면 아이는 잠자러 들어가야 했다. 


우리 꼬부기 둘째 녀석은 7살로 시립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등 하원을 내가 직접 시켜야 한다. 모든 시립어린이집은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이 사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인지 가늠도 못한 채 선택했다. 그 대가를 치르듯 매일 등 하원하는 데에만 최소 4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하원 후에 꼬부기 사회성을 위하여 어린이집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놀리는 놀이터 치료를 하는데, 그 시각 첫둥이는 집에 도착한다. 

그래서 핸드폰을 쥐어주고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혼자 집에 있는 아이가 바른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지.. 첫둥이에게 "숙제하고 나서 할 일하고 있어"라고 말을 해두지만, 아이는 늘 딴짓을 하고 있었다. 숙제를 하긴 했지만, 딴짓을 하다가 숙제를 하고, 그리고 다시 딴짓을 했다. 

나중엔 몰래 게임하거나 유튜브로 게임 TV를 보는 게 더 안 좋겠다 싶어서 숙제 다한 뒤에 게임을 하라고 허락해주었다. 엄마도 없는 빈 집에서 숙제하며 게임을 하면서 즐거웠을까? 아닐 거야. 


아이는 게임을 하고 나면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야? 언제 와?", "동생이 안 가겠대, 더 놀고 싶대."

그렇게 혼자서 몇 시간을 보낸 뒤에 만나곤 했었다. 그런 시간이 어느새 2년 차에 들어가니 문제가 생길 만도 했다. 


그날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게임시간을 얻을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해서 나도 아이도 모두 잘못될 게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첫둥이의 2학년 2학기 상담 결과 선생님은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과 함께 전화를 끊기 전 게임 얘길 하시며, "첫둥이가 학교에서도 게임 이야기만 많이 하니 엄마가 아이와 함께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하시며 상담을 마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걱정 끼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잘 해내던 아들에게 문제가 있으니 엄마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마침 그날 <애착은 어떻게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가>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계시처럼 깨달아졌었다. 


책 안에는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은 아이는 성장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어릴 때 문제가 나타나면 감사한 것이고, 나중에 커서 나타나곤 하는데, 늦게 나타나기에 이유를 찾지 못해 엄마들이 상담소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아이와 엄마의 관계에서 결핍되어 있던 것들이 근본 문제로 나온다고 한단다. 

나는 꼬부기에게 신경을 쏟느라 첫째에게는 애정을 부어주지 못했다. 아이가 만족할 만큼 부어주지 않아서 결핍이 있었기에 아이는 게임에 빠지게 된 것이리라. 


어릴 적부터 아프고, 약해서 엄마가 끼고 지낸 녀석은 나중에 잘 자라고, 되려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스스로 잘하던 녀석은 느닷없이 큰 문제를 일으키며 갈등을 만들기도 한단다. 

우리 첫둥이가 지금 문제가 나타난 게 감사한 것이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사랑을 부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냥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며칠 뒤 친구를 만나 들은 얘기로 내가 첫째에게 신경 써야 하는 시기라는 것에 쐐기를 박는 듯했다. A는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A의 딸은 미국에서 모든 것을 잘 해내며 학교도 잘 다니고 있었는데, 4학년에 갑자기 등교거부를 하며 집에만 있기 시작해서 상담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 문제로 나왔고, 애정결핍 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왔고, 심지어 엄마를 잘 도와주던 딸이었는데,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 문제로 등교거부까지 갔다는 게 아연실색할 일이었다. 그 집도 둘째가 태어나면서 엄마는 자연스레 약한 아기를 보호하고 돌보게 되니 첫째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했고, 첫째는 엄마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라도 더 열심히 해냈던 것이다. 


문득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있지만, 엄마와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멀어지고 싶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에게도 엄마의 사랑에 결핍이 있었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남동생에게 엄마는 온 마음이 빼앗겼고, 나는 모든 것을 잘 해내고, 동생을 예뻐하며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엄마의 칭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착한 아이콤플렉스에 걸린 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였던 게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으니 엄마와 이제 와서 함께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너무나 어색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툴툴대며 대화를 빠르게 끝내려 한다. "아, 알았어." 그러면 엄마는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만나면 얼른 헤어지고 싶어서 도울 일을 찾아 청소와 허드렛일을 한 뒤에 "나중에 또 올게요" 하며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이면 할 도리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은 편하면서 한편으로 죄송한 마음에 마음이 미어진다. 왜 이렇게 엄마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못할까.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시간도 함께 보내고, 사랑도 표현하고 그래야지 머리로는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앞에만 가면 감정과 이성이 오작동에 걸려서 버벅대다가 결국에 툴툴거리는 것으로 표현이 나오고 만다. 

내가 나의 결핍을 알지만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관계가 멀어지는 것뿐이다. 이제 와서 내가 엄마에게 가서 껴안거나, 그런 나의 감정과 이야기들을 꺼낼 수 없다.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실지 오디오로 들려오기 때문에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지금 내 안에서 들려오는 오디오가 "니 아빠가 니를 왜 그렇게 이뻐했는지 모르겠다. 니가 5학년 때 주산학원 다니고 싶다고 애걸하는 데도 니 아빠가 밤에 여자 아이 혼자 돌아다니면 안된다며 끝끝내 안보내줬었다", "니 아빠가 니 대학 가고 나서 빈 책상을 보며 혼자 눈물 흘렸었다고 그러더라" 

이런 식의 오디오인데, 늘 아빠의 이야기로 '네가 사랑받았었다. 네가 모르지만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라고 엄마가 그랬다는 얘길 아빠로 주어를 바꾸어 이야기하곤 하셨다. 

직접 표현하는 걸 그리 어려워하시니 그냥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오디오로 만족하며 엄마 아빠의 사랑을 추억해야겠다. 인사이드 아웃처럼 나의 핵심 기억에 엄마, 아빠가 나를 어떻게 사랑했었는지를 저장해 놓고 힘들 때마다 생각하며 중심을 잡아봐야지.




작가의 이전글 아들과 포켓몬스터 영화 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