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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Oct 13. 2022

비참함을 배우다.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매일 글쓰기를 숙제처럼 하고 있던 나에게 

그리고, 글쓰기가 제일 쉬워요 했던 나에게 

뜻밖의 상황이어서 

하루 이틀 사흘 쌓여가자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마저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도 하기 싫은데, 

하물며 내가 하기 싫은 일들을 어떻게 해내겠는가..


그래서 내가 왜 갑자기 쓰기 힘들어졌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일단 내가 쓰기 힘들어 한 이유는 

첫째, 회의감 때문이었다. 

원래 늘 과거를 반추해 보고 지난날 나의 언행들이 늘 떠오르기에 

회의감이 많이 찾아온다. 우리의 기억들은 대부분 우리를 후회로 데려가기 때문에. 

과거부터 지금까지를 주욱 연대기처럼 이어놓고 생각하곤 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시간을 공간으로 표현해 놓고, 분절된 시간과 공간이 나열돼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느 좌표로 가면 그곳에서는 그 당시의 상황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나의 기억 속에서도 가끔 어느 장면이 무한 반복된다.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연결된 하나의 통로처럼 연결된 그림을 상상해본다. 지금의 나와 미래가 동시에 보이는데 어떤 날은 그 미래가 신통치 않고, 현재 역시 미래를 바꿀만한 힘과 에너지가 없어 보인다.

나는 나의 10년 뒤를 위한 투자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루틴을 만들고 그저 습관대로 행동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망상가처럼 느껴져 버린다. 그러면 허무하고 회의감에 무너져 내린다. 

이런 저항들을 날마다 이겨내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만이 나의 이 허무감과 회의감을 이겨내고 실제 미래를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아주 긴 마라톤 같은 이 상황을 이겨내기 어렵다.  

매일매일 울며 씨를 뿌리듯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아직 싹을 틔울 조짐도 보이지 않으니..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나는 10년을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주저앉은 듯하다. 10년이나 이렇게 외롭고 긴 싸움을 할 자신이 없고 나는 그럴 위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에 결과와 승리를 얻고 싶고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다.

둘째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있어야 하지만, 현재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다행히도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을 감당해주고 있지만, 점점 나에게도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압박이 커져갔었다. 

나는 현재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여러 가지 잡일들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제한적이어서 자유롭게 일을 선택할 수 없다. 게다가 갑상선이 사라진 후로 하루 중 한낮에 쏟아지는 잠을 이길 방법이 없어 꼭 낮잠을 자고 있다. 그렇게 중간 한 번 더 충전해줘야 오후를 살 수 있는 저질체력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냥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로 내가 한계를 만들고 그곳에 안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또 회의감이 생기고, 남편의 압박과 스트레스도 점점 커지니 이것은 갈등을 만들어 내게 되기 때문에 먼저 꺼야 하는 급한 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은 하지 못한 채 내가 좋아하지도 않으며 열정도 생겨나지 않는 게다가 경제적인 부분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잡일을 하느라 시간을 사용해야 하니 나도 모르게 화딱지가 났던 것도 있다. 

가계 경제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했던 잡일이었지만 그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문득 반대의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경제를 배우고 돈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고 비참함을 배우고 있다. 지난날들을 어떻게 내가 보내왔는지가 오늘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날에 뿌린 씨앗이 없으니 지금 거둘 열매도 없다. 그러니 수확할 것이 없는 오늘을 보내면서 좀 비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연유에서 글을 쓰고 싶지 않았었다. 그래도 쓰는 이유는 이렇게 나의 생각을 글로 옮겨 적으려 노력할 때에 비로소 알게 되는 부분이 있는 까닭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았을 게다. 분명 뭉뚱그려서 몇 가지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나의 생각을 추적해 나가다 보니 결국 나의 비겁함을 보고 나의 나약함을 보게 된다. 


'나는 어른이 언제쯤 될까?' 늘 생각하는데, 감사하게도 자녀들 덕분에 어른이 되고 있고, 

또, 나에게 공격을 가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어른이 되고 있다. 그들 덕분에 나는 전투력이 강해지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이다. 

평온한 세상에서 약한 어른으로 살기보다 거친 파도도 넘어서는 강한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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