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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Nov 22. 2022

아들의 여자친구

9살 첫둥이와 숨기는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나름대로 감정코칭을 배워서 아이에게 감정을 읽어주고 다양한 육아서와 금쪽이를 보면서 배운 것들을 적용해서 살아왔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주는 부모에 해당할 거라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한 참 뒤에 알았을 때 아들이 나에게 중요한 것을 숨겼다는 배신감과 함께 내가 아들에게 그런 존재였구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리고, 아들의 미래를 미리보기로 약간 맛보는 듯한 허무함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웠는데, 내 맘 갖지 않구나 하면서 말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성교제를 할 때 엄마에게도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놨었다. 

아들이 1학년 때 좋아했던 여학생도 알고 있었고, 아들이 받아온 쪽지들도 다 봤었다. 

그냥 가방에 넣어서 가져오기 때문에 자연스레 보게 된다. 


학기 초 첫둥이가 토요일에 학교 운동장에서 한 여학생과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알려왔었다. 

토요일에? 토요일은 가족들과 보내는 날로 친구들을 만나 놀지 않는 게 국 룰이다. 

모든 집마다 그날은 자기 가족들끼리 보낸다. 그날 놀러 가는 것은 약간 민폐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토요일 여학생과 운동장에서 만난다니..!

결국 가족들끼리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약속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첫둥이도 마음에 무언가가 걸렸던지 현재 시간을 묻더니 "친구랑 약속했었는데.."라고 다시 얘기를 꺼낸다. 핸드폰마저 놓고 나갔어서 연락조차 할 수 없었지만, 첫둥이가 약간 무심한 듯 보였기에 

어린이집 다닐 때처럼 아이들끼리 약속을 정하곤 만나지 않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그래도 9살이나 되었는데, 약속을 했다가 못 가면 사과를 해야지' 하는 생각에 

친구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니, 

첫둥이는 "못 가는데 말 못 해서 미안해"라고 문자를 보냈고, "괜찮아" 라는 답장이 왔다. 그 여자친구는 운동장에 나가서 잠시 기다리고, 전화도 한 통 걸었었다. 연결이 안되니 그러려니 하며 돌아간 것 같다. 아들 보다는 성숙한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며칠 뒤, 갑자기

그 학생으로부터 "사랑해"라는 문자가 왔다. 마침 내가 아이 핸드폰을 들고 있던 터라 내가 먼저 보았다. 

문자가 왔다고 알리자 아들은 "응" 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왜 그런 문자를 보냈지?" 물었지만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수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각자 바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기에 그런 것에 대해 관심 갖거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모가 첫둥이에게 갑자기 물어본다. "너 여자 친구 있어?"

"네" 

뭐라 뭐라 얘기도 한다. 그 얘기를 듣고도 나는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냥 여자인 친구들이 있다는 얘기인 거겠지.

그렇게 며칠 뒤에 그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한 번 물어보았다. 

"너희 반에도 그냥 친구 말고, 사귀자 해서 사귀는 그런 애들 있어?"

"응, 나지"

너무 놀랐지만, 여기서 큰 소리를 냈다가는 아들의 입이 닫힐 수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응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요동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여자 친구 사귈 때는 엄마도 알아야 하니 말해달라고 했었는데 왜 말 안 해줬어?"

"비밀로 사귀기로 해서"


요즘에 아이들이 사귀기로 하면 놀림 대상이 되기 때문에 비밀로 사귀자고 했단다. 여학생이 먼저 사귀자고 했고 우리 첫둥이는 그러기로 했단다. 

어쩐지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아들의 행동이 이해 되었다. 학부모 참관수업을 온라인으로 할 때였다. 그때 우리 첫둥이가 한 여학생을 알뜰살뜰 챙기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 짝꿍도 아니고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여학생이었는데, 우리 첫둥이가 자꾸 뒤돌아 보며 챙기고 있었다. 

"선생님, 00이 사인펜이 없어요"

"선생님, 00이 빨간색이 없어요"

그리고, 골든벨을 하고 있어서 각자 보드판을 들고 퀴즈대회를 하는 중에 "선생님이 이건 무엇일까요?"라고 하면 그 여학생을 보며 답을 말하듯 알려주는 것도 여러 차례 보였다. 

그날 집에 왔을 때 왜 자꾸 뒤돌아 보며 그 친구를 챙겨줬냐고 물었는데, 첫둥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말해주지 않아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게 눈치가 없는 엄마였다. 


 첫둥이가 나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에 약간의 상처가 되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앞으로 더 큰 비밀들이 많아질 생각에 아찔해졌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비밀도 말해주어야 한다며 엄마가 알고 있어야 안전하게 연애할 수 있다고 얘기해줬다.    이성교제가 없을 수 없는데,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좋은 이성친구를 만나서 각자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교제를 하면 좋겠다는 바람마저 생겼다. 

"아들아, 너의 첫 연애를 축하해, 네가 여자 친구에게 헌신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남자 친구라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하면 여자 친구가 좋아할 거 같다. 건전하게 교제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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