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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Nov 12. 2021

갑상선 없는 여자

얼떨결에 갑상샘이 전부 없어진 채 3개월을 살아냈다. 호르몬 약이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호르몬 약 먹으면서 살아봐야 비로소 갑상샘이 얼마나 소중한 기관인지 알게 된다고 답하고 싶다. 있을 때는 미처 그 소중함을 몰랐다. 있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그동안 갑상샘이 있었던 게 큰 은혜였다는 걸 깨닫는다. 갑상샘뿐이랴. 다른 모든 게 다 그렇다. 지금 소화시켜주는 위가 있어서 감사하고, 키보드 두드릴 손가락이 있어서 감사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갑상샘 없는 생활이 힘든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닐까? 먼저, 나의 증상은 며칠은 저하 증상에 시달리고, 며칠은 항진 초입에 들어간 듯한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늘 갑상샘 저하 증상을 갖고 있어서 저하증이 '나'이고 내가 저하증인데, 가끔 호르몬이 항진 증상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자다가 새벽 중간에 깨서 몇 시간 뜬 눈으로 보내야 한다. 수술 후 몇 개월이 지나자 이런 패턴이 롤러코스터처럼 며칠 간격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나타났다. 


저하 증상이 심할 때는 운동 후 어지러움 증까지 느껴서 운동조차 쉬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항진 증상처럼 새벽 중간에 깨기도 했다. 물론, 새벽에 깨는 이유를 여러 가지 면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다른 이유일 수 있으니까. 카페인 등의 요인들. 

그런데, 나는 8년 가까이 저하증 약을 먹으며 피검사를 해왔어서 대략 느낌이 온다. 지금은 약간 올라간 듯하네? 하면 피검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수치가 좀 항진에 나왔으니 약을 줄이자고 하고 좀 많이 피곤해진 것 같다 싶으면 수치가 더 떨어져 있곤 했다. 마시거나 먹는 양으로 보아도 인풋이 일정한 데에 비해서 아웃풋이 들쑥날쑥했다. 


 3~4일 간격으로 반복되는 듯한 이 컨디션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 보았다. 호르몬 약에 적응이 안 되어서라고(예전에 먹던 신지로이드와 달리 현재는 신지록신을 먹고, 양도 달랐기에)생각해서 얼른 약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며 살아가길 기다려야 하나 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이 현상은 자율조절장치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상샘은 우리 몸의 보일러 같은 기관이다. 집이 추우면 보일러 온도를 올려야 하고, 더우면 온도를 낮추어서 적절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뇌는 필요에 따라서 신호를 보내고 뇌가 보내주는 TSH신호에 따라서 갑상샘은 T4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내 몸에는 이 적절한 조절을 할 장치가 없는 것이다. 내 뇌에서 호르몬을 만들라고 갑상선에 신호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갑상샘이 없으니.. 뇌의 명령과 상관없이 계속 일정한 양이 투입되고 있어서 어떤 날은 남고 어떤 날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뇌, 갑상선 없어진 것도 모르고 TSH 호르몬 만들어 내고 있는 거겠지.. 문제는 이것이다. 내 피 속의 수치는 일정하게 맞추어 두었는데, 이 호르몬이 남아 돌 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추워서 보일러를 올렸는데, 더워져서 내리고 싶다. 그런데, 내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계속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날까 생각해보자. 어떤 날은 일이 많아서 에너지를 많이 쓰고, 어떤 날은 적게 사용하여 에너지가 남아돌곤 하는데, 이게 바로 핵심인 듯하다. 나의 일상이 매일 똑같은 패턴에 의해 움직이며 에너지 사용량이 일정한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은 과도하게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매우 적게 쓰기도 한다. 


우리도 전날 늦게까지 일했으면 다음날은 가능한 한 약속을 안 잡고 일을 최소로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나의 갑상샘도 가끔은 쉬기도 했을 텐데, 지금은 갑상샘이 없으니 조절 스위치가 없어진 셈이다. 온도를 낮춰야 하는 날에도 매일 같은 양의 호르몬을 넣어주니 내가 느끼는 증상이 널뛰기하듯 나타난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내 몸이 이 호르몬 수치에 맞춰서 매일 비슷한 루틴으로 생활한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증상들을 완화해 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내 몸에 다양한 실험들을 해 보았었다. 식이요법들을. 그런데, 이제는 이런 실험들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몸에 인풋을 일정하게 넣어주고, 아웃풋도 일정하게 나오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계획표처럼 같은 에너지계획표가 만들어질 수 있을 듯하다. 앞으로 남은 인생 약 50년은 일상 루틴을 만들어서 약과 함께 협력할 수밖에 없겠다. 갑상샘 없는 여자의 노력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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