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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Dec 13. 2021

시간 이야기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시간을 빼앗겨 버려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변할까. 

자신의 남은 시간을 아껴서 사용하고, 가능하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시간을 사려하지 않을까. 

문득 영화처럼 스토리가 떠오른다. 

주인공(바로 나다)은 시간이 많아서 태만하게 지내고(운동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대로 살다 보니(자신의 혀의 욕구에 충족했다)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갑상선암 수술을 하는 바람에 피로도 상승으로 9시에 잠들어야 한다). 사전에 경고가 있었지만 실제 자신에게 일어날 꺼라 생각지 않았기에 태만하게 보낸 탓이다. 

남들은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에겐 시간을 낭비한 대가로 하루에 20시간밖에 주지 않는다. 

그래도 20시간이라도 있으니 어찌어찌 지내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국에서는 시간을 도둑맞은 것만으로도 이미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뒤처지게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왜냐면 빨리빨리를 외치고, 다들 스펙을 쌓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고 있으니. )

주인공은 자신의 빼앗긴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자신을 도와줄 금수저의 아버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특출 난 재능이나 모아놓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니 20시간을 사용하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투자도 하면서 지내야 한다.

오늘만을 위해서 살 때는 20시간도 여유롭다. 그냥 오늘 하루 행복하고 편안하고 즐거우면 되니까. 

그러나 내일을 생각할 때는 생각이 바뀐다. 나의 내일과 10년 후를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전화통화가 길어진다. 마음이 초조하다. '나는 너의 시간 양과 달라. 너는 오늘 6시간이 남았지만, 나에겐 2시간뿐이라고.' 

작은 일에도 시간을 어떻게 쓸지 애태우며 고민하며 살아간다. 정작 고민하며 시간을 더 낭비하고 있었다. 

-끝-


아무리 쉬지 않고 달리기를 해보아도 다른 사람들의 보조를 맞추기 버겁다. 점점 지쳐간다. 

나의 인생은 이렇게 달리기만 하다 끝날 것인가. 나도 시간을 좀 낭비하듯이 써보고 싶다. 시간으로 사치 부리던 옛날이 그립기까지 하다. 

어렸을 때는 멍 때리며 공상하는 시간이 몇 시간이고 이어졌는데, 그러다 엄마의 밥 먹어라 이야기에 식탁 앞에 앉아서 밥 먹으면서도 다시 공상을 이어갔었는데. 

그때의 바람은 얼른 어른이 되는 거였는데,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얼른 40이 되고 싶었는데. 

어리석게도 40대가 되면 안정되어 있고,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어린 생각이었다. 풋내기 같은 나의 바람들이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많이 소비되었고, 남은 시간이 그대로 여도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남들보다 매일 4시간씩 줄여버리니 초조하기까지 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할 때 매우 신중해진다. 누군가가 만나자고 연락이 오면 예전과 달리 머뭇거린다. 

나의 내일을 위한 투자와 같은 시간을 사용하고, 어제의 짐과 일들을 처리하고 오늘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 된다 남들이 물을 것이다 '그러면 잠을 줄여야지! 잠을 줄여서라도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것이 한국인의 정신이다'라고.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러면 나이가 더 들기를 기다려야 하나. 나의 자녀들이 좀 더 성장해서 모든 시간을 나만을 위해서 쓸 수 있길 기다려야 하나. 


나이가 많아지면 더욱 시간에 대해 조급함과 함께 허무함이 밀려올 거 같다. 나의 10대 20대 때는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꼈던 것은 시험을 앞두고 공부할 때와 과제를 하고 있을 때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했던 유일한 긴장되는 경험들은 시험과 숙제였던 것이다. 마감시간을 정해두고 그 기한 내에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게 마음에 부담감과 긴장감을 준다. 

지금은 이런 부담감과 긴장감이 없어져서 좋다고 했었는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동안 행복감만큼이나 분노가 올라간다. 


내 나이 30대에는 얼른 아이가 생겼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랬다. 아이를 돌보며 보내고 싶었다. 나의 하루가 너무나 무료하고 의미가 없게 느껴졌고, 심심했었다.. 

지금 40대의 시간은 시간의 의미가 너무나 다르다. 앞으로 맞이할 50대와 60대는 어떠할까. 

미리 알고 준비해놔야 할 거 같다. 그래서 지금 먼저 50대와 60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금 나의 시간이 줄어든 데다가 남은 시간을 나의 일을 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하고, 또 자녀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나의 시간을 남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이들이 태어나고서부터 쭉 이어졌다. 

그 전에도 남을 위한 봉사의 시간을 의미 있게 여겼고, 나의 사랑의 언어가 봉사였기에(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봉사, 선물, 칭찬, 스킨십,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 봉사를 많이 했었다. 

지금은 나의 사랑의 언어가 바뀌어 버린 것일까. 

아무튼 나의 40대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건강의 위협까지 생겨서 나의 시간은 줄어들고 말았다. 체력이 안되고, 일찍 잠을 자야만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만 하기에 더 조급증이 생겨났다. 


나의 시간을 계획적이고, 알차게 소비하자고 혼자 한풀이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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