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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Dec 23. 2021

6개월 아기는 대두증 의심으로 검사받기 시작했다.


둘째가 신경외과에 다니면서부터 나의 관심은 아이의 머리둘레에 가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쁘기만 하다. 두상이 서구적인 두상이다. 옆은 갸름하고 앞 뒤로 짱구다. 특히 뒤 짱구가 심한데, 바가지 엎어놓은 것처럼 볼록하다. 뒤통수 없는 나에게는 아이의 두상이 부럽기만 했고 사랑스럽고,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시아버님이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와서 심각하게 "둘째 얼굴이 안 이쁘게 변했어. 머리가 너무 커졌어. 얼른 병원에 가봐라" 그러셨다. 그리곤 옛날 자신의 동네에 그런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 안 좋았다는 얘기로 마무리하셨다. 

"너희는 매일 봐서 모르는 거야"라고 하셨다. 

그래서 동네 소아과에 가서 물어보니 “누가 그런 얘기를 했냐"며 호통을 치신다. 시아버님과 증조할머니가 그러셨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안 하신다. 진료의뢰서를 써주시긴 했으나 병원 갈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하셨다. 


그래도 시아버님과 100살 되시는 증조할머니의 안목과 연륜을 믿어보자 하는 마음에 갔다. 

 A교수님은 그 병원의 신경외과 분야에서 유명한 분이셨다. 그런데, 그게 너무 열정적이고, 도전적이고 그런 분이셔서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그분 왈, “뇌에 대한 연구 데이터가 아직 많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이럴 때 내 경험으로 가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갈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사례를 많이 보았기에 말할 수 있어요."


만약에 대두증이라면 커가면서 점점 퇴행할 수 있는데, 지능, 신체 활동, 모든 부분에서 퇴행할 수 있다고 한다. 뇌는 모든 부분을 관할하고 있으니까. 예를 들어 갑자기 걷다가 못 걷게 되고, 대소변을 가리던 아이가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되고. “


모든 사람의 뇌 중앙에는 물이 들어 있는데, 압력이 상승하면 뇌에 압박을 주기 때문에 뇌 발달에 문제를 주고, 뇌 기능에도 문제를 주게 된다고 했다. 계속 이 속도로 커지다가는 큰 일 난다 했다. 그나마 지금은 대천문이 열렸으니 뇌가 커지는 것에 따라서 머리뼈도 커지지만, 대천문이 닫힌 상태에서도 뇌가 계속 커진다면 뇌압 상승으로 심각하게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약을 먹여야 해요” 

“무슨 약이요”

“간질약”

“….”

내가 더 이상 대답이 없자, 엄마가 시간을 끌수록 아이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대하셨다. 

“약을 먹으면 얼마 동안 먹나요?"

“일단 먹으면 오랫동안 먹어야 한다. 최소 6개월이고 몇 년 동안 먹을 수도 있다”

“몇 달 만 더 지켜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그럽시다”


그렇게 간신히 시간을 벌고, 의사 선생님에게서 도망치듯 나왔다. 선생님은 당장 아이에게 약을 먹여야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내 아이를 놓고 임상실험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간질약을 먹는다는 말에 겁이 나서 내가 좀 더 알아보고 공부해봐야겠고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면 약을 먹이는 수밖에 라며 서글프게 생각했다. 



그렇게 돌아서 나오는데,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돼버린 거 같았다. 

언제 뇌압 상승으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시한폭탄 얘기를 듣고, 정신이 나가버린 거 같았다. 아무도 없는 섬으로 도망가서 아이와 둘이 살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매일 밤마다 그리고 새벽마다 아이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아이를 생각하 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잠을 안 자고 있었나? 하는 이상한 착각을 계속했다.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다 보면 결국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두려운 상황을 보고서야 인터넷을 껐다. 

신경외과 진료실 앞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아이는 소두증이었다. 뉴스에서 한참 임산부가 모기에 물리면 태아가 소두증으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로 둘째 임신 중 긴장에 떨었었는데, 실제로 보니 참담했다. 아이는 산만하고 걷는 것도 불안정해 보였다. 아이의 엄마는 세상을 초월한 표정이었고, 너무나 슬프고 지쳐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아이는 행복하게 뛰어다니며 넘어지고를 반복했다. 


또 다른 아이는 대두증 아이였다. 그 어린이는 우리 아이 뇌 mri 찍으러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옆에 있던 아이였다. 당시 그 아이는 뇌압 검사를 하였는데, 뇌압 검사 후 마취에서 깨어나서 말을 하지 못하고 신음하던 게 기억난다. 엄마도 아이도 힘들어하며 한숨과 푸념의 소리들이 커튼 너머로 고스란히 들려왔었다. 


그 아이는 7살에서 8살 또는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아이의 머리가 커져서 외모도 변형되어 있었다.' 저 아이도 처음부터 저런 모습은 아니었겠지? 점점 커져서 그렇게 된 거겠지?' 막연한 추측을 하며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었다. 

한 번은 꿈에 둘째의 얼굴과 머리가 아주 기형적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너무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다. 깨어나서도 공포가 가시지 않아서 다시 잠들기 힘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 간격으로 있는 정기검진을 기다리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매일 기도했다. 

병원 정기검진을 하면 할수록 의사 선생님의 권유가 강해졌다. 

처음에는 애매모호, 검사 후 보자라고 하셨고, 검사 결과 이상이 없자, 다음 정기검진까지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정기검진을 가면 머리 둘레가 얼마나 커져 있고, 몸무게는 얼마나 변했나를 늘 체크하셨는데, 몸무게에 비해 머리둘레가 많이 커져 있었다. 

한 번은 응급이라며 바로 뇌 초음파를 하셨다. 대천문이 늦게까지 열려 있어서 열린 대천문 사이로 초음파를 통해 뇌를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뇌 초음파 결과도 이상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뇌압 검사를 해야만 정확하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뇌압 검사를 하자고 했다.

뇌압 검사는 뇌 척수액을 뽑아서 검사한다. 뇌 척수액을 뽑는 과정에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전신마취 후 깨어난 뒤에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 몇 시간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 

그걸 어린아이가 견뎌 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본다. 바로 일어나려 들 텐데..

돌 전후 아이에게 뇌압 검사는 불가능한 거 같았다.  


그렇게 검색으로 매일 알아보다 보니 그 교수님은 뇌압 검사와 약을 먹이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라는 정보를 찾게 되었다. 아무튼 그런 얘기를 보니 더 먹이고 싶지 않았고, 뇌압 검사도 안 하고 싶었다. 

선생님은 뇌압 검사를 안 하겠다면 다시 한번 뇌파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뇌파검사로 확인할 수 있는 확률이 50프로도 안된다고 했던 것 같다. 몇 퍼센트였는지 정확한 숫자들은 이제 기억도 잘 안 난다. 

뇌파 검사를 하려면 아이가 깊이 잠들어야 한다.  검사시간에 재우기 위해 졸린 아이를 재우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검사하러 오자마자 잠들 수 있도록 준비해서 와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렵다. 새벽부터 일찍 깨워서 졸린 아이를 사탕에 껌에 과자를 잔뜩 주며 계속 시끄럽게 떠들며 이름을 불러가며 잠이 들지 않게 해야 한다.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고 싶어 했지만, 차 안에서 잠들지 않게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렇게 졸린 아이를 검사실에 들어가서 눕히면 곧장 곤히 잠들었다. 

검사하는 몇 십분 동안 뇌파를 측정하기 위한 전선 같은 도구들을 머리에 잔뜩 붙이는데, 붙일 때 쓰는 접착제 같은 성분이 머리에 엉겨서 검사 후에 반드시 머리를 감고 나와야 한다. 

검사를 마치고 머리를 감기고 아이 손을 잡고 걸어서 나오면서 검사실 문 앞의 표시들이 무시무시하게 보여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저 검사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심각한 문제나 질병이 있는 걸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선이 신경 쓰이며 잠시 1~2초 정도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한 사람을 쳐다보게 되었다. 반대편에서 오고 있는 한 여성이었는데, 그다지 예쁘지도 멋진 옷을 입은 것도 아닌데 내 눈이 자석처럼 그 여성에게 끌려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을 보면서 '내가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쳐다보는데, 그 여성도 나를 쳐다보며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성이 먼저 나를 보고 인사하였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나에게 왜 검사실에서 나오냐고 물었고, 자신은 병리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이 대두증 의심으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있다고 몇 초만에 상황을 설명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친구는 둘째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곤 헤어졌다. 


며칠 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놀라운 얘기를 해주었다. " 네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내가 그날 머리를 만졌고, 눈을 맞추었다. 뇌압이 높으면 머리를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느껴서 힘들어해"

" 내가 의사 선생님들과 늘 같이 일하고 있어서 의사들의 성향을 좀 아는데, 좀 더 긍정적으로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그래. 의사 선생님 말을 다 믿을 필요는 없어"라고 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을 얘기해주었다. 

자신의 조카가 긴장하면 쓰러지는 병 아닌 병이 생겨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고, 정신과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안가 조카는 아무 때고 쓰러져서 정신을 잃기 일쑤였다. 회사에 출근을 안 해서 집으로 찾아가 보면 현관 앞에 쓰러져 있기도 했고, 사람들과 있다가도 쓰러지곤 했다. 

어느 날은 쓰러진 후 깨어났는데 기억력이 상실돼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도 처음 보는 듯 왜 자신을 보며 울고 있는지 몰라 낯설어하였단다. 

그렇게 사회생활은 하지 못하게 되었고, 현재 집에서 요양하며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제야 이모는 아이가 먹었던 약의 성분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 약들은 뇌의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들이었고, 부작용도 많은 위험한 약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약을 모두 끊었으니 정신과 약을 주는 것은 위험하니 특히 조심하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날, 받은 이 전화는 '아이를 위해 약을 먹여야 하나요?'라고 질문하며 기도했던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렇게 '약을 먹이지 말고, 좀 더 지켜보고, 다른 병원을 가보자'라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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