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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Oct 06. 2021

겁보가 된 이유

예민 겁보

하워드 가드너는 사람의 지능을 IQ로만 측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큐는 지능의 일부분일 뿐이라 하며, 지능을 자기 성찰 지능, 음악지능, 신체운동 지능, 논리수학 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 지능, 자연친화 지능, 실존지능으로 나누었다. 아이큐는 언어지능과 논리수학 지능만을 측정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자기 성찰 지능이 높은 것 같다. 하루 중에 인 풋이 많으면 그 많은 인풋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그날 나의 언행을 리플레이한다. 혹시 잘못 말하거나, 실수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거나 무시했거나 잘못한 것들은 없나 찾아낸다. 이것은 하루의 일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과거의 일들에도 적용한다. '내가 그때도 이랬구나. 그때 그 사람이 오해했을 수 있겠다. 내가 실수했구나.' 그러곤 과거의 일을 사과할 수 있는 적절한 자리가 마련되면 사과하기도 한다. ‘아.. 정말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도 이런 성격, 기질, 성향으로 인해 겁보가 된 것이고 암이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때가 되려 용감했다. 


  갑상샘 암 진단 후에는 나의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리플레이 하기 시작했다. 나의 잘못들을 찾아내며, 무엇이 문제였는지 찾아서 고치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내다 한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갑상샘에 결절이 있는 것은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계기가 지인을 통해 따라간 교회 기도모임에서 목사님이 기도 중 나의 목에 새까만 것이 보인다 며 병원에 한번 가보라 하셨기 때문이다. 목에 까만게 보인다는 얘기에 떠오른게 친언니의 갑상샘 암이었다. 그래서 친언니에게 갑상샘 암이 있다고 얘기하자 병원에 가서 검사 한번 해보라 권하신거다. 그때가 12년도였다. 그분은 나를 잘 아는 분도 아니고, 몇 번 안 본 사이인데, 그런 얘기를 하셨다. 그래서인지 그 얘기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은사가 있었던 분 인 건 확실하다. 나는 23살 때부터 교회에 다녀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며칠 후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해보았다. 결절이 많다고 했다. 하나는 큰 결절이었는데 0.7센티였다. 나는 속으로 ‘결절이 있는걸 까맣게 보셨나 보지?’ 하고 쉽게 생각했고, 매년 초음파 검사를 하며 크기가 커지는지 봐야 한다는 병원의 얘기도 귓등으로 흘려 들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일단 그 목사님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었고(까만 게 보인다는 것이 암을 의미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의사의 얘기도 신뢰하지 않았다. 당시 갑상선 과잉진료 문제에 대해 언론에서 많이 나오던 시기였기에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될 것이다 생각했다. 게다가 친언니도 갑상샘 암이 있는데 추적 관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 자신이 참 어리석고 교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크기는 0.7센티.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그때도 암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때는 모양이 나쁘다는 얘긴 못 들었다. 검사해주신 선생님에게 결절이 왜 생기냐고 물으니 우리 몸에 점이 생기듯이 쉽게 생길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두 번 반복하며 갑상샘이 혹사당했으니, 7년 동안 1.2센티로 커진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달라질 것은 없지만, 궁금하다. 알면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


  비행기를 처음 탔던 날 옆에 친구의 손을 꽉 붙잡고 눈을 감은 채 비명을 질렀던 게 기억난다. 당시 너무 무서웠다.  너무나 빠른 속도감과 큰 소리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를 느꼈었다.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다음엔 작은 비행기를 다시 타게 되었다. 비행기 꼬리 부분에 앉았는데,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면서 비행기가 구겨질 것처럼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바람이 실내까지 느껴질 정도로 비행기가 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비행기는 좀체 안 탔는데, 가족 여행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동남아에 가게 되어 다시 오르게 되었다. 벌써 수년 전 일이고, 아이들도 낳고 했으니 내가 달라졌다 생각했다. 게다가 4시간 정도 비행이기에 괜찮을 꺼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훨씬 더 세게 무서웠다. 당시 6살 4살 아이들을 데리고 탔고, 저가항공이었고, 4살 둘째를 안고 있어야만 했는데 공포감에 잠시도 눈꺼풀을 붙일 수 없었다. 밤 비행기여서 다들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는데, 나는 도저히 눈이 안 감겼다. 


  내가 수천 미터 상공에 떠 있다는 생각을 하기만 하면 무서워서 눈이 번쩍 떠졌고,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너무나 불안하여서 계속 내가 알고 있는 성경구절들을 모두 외우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알게 되었다. 나는 겁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졌다. 감각이 예민해졌다. 생각이 많아졌다. 

시작은 아이들이 생기고 난 뒤부터 인듯하다. 애니메이션 <마이펫의 이중생활 2>의 주인공 강아지 맥스처럼 말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탔기 때문에 더 무서웠던 것이다. 혹시 아이들을 잃게 될까 봐. 갑상샘암이 겁났던 것도 아이들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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