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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an 25. 2022

식탐의 정체를 파악하다.


그동안 나에겐 문제가 있었다. 식탐이 고개를 들고 앞장서서 나를 이끌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식탐을 잠재울 방법을 찾았다. 


나는 갑상선암 수술을 하기 전까지 약 2년여 시간 동안 식이제한을 했었다. 

갑상선암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자가면역질환인 하시모토 갑상선염도 있었다. 이 두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위한 대책은 다음과 같았다. 가공식품 먹지 않기.(외식하지 않기). 현미밥 먹기 (온리 현미), 밀가루 끊기(빵, 과자류), 유제품 줄이기, 당 섭취 줄이기(과일도 해당)

일이 다 끝난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다 할만한 거였는데, 

두 가지로 요약하면, 

밀가루류 줄이기(목표는 밀가루 끊기)

당 섭취 줄이기 (당 섭취 끊기)이다. 


그렇게 당 섭취를 줄이자 현미밥에서도 당분이 느껴졌고, 자연 그대로의 식사가 맛있게 느껴졌다. 그냥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다 맛있었다. 그래도 가끔씩은 행복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떡볶이, 피자, 크림 파스타, 과자, 케이크, 크림빵, 각종 빵과 파이들을 언젠가는 먹을 거라는 기대였다.  

'언젠간 나도 먹을 거야. 암이 줄어들면, 건강을 되찾으면..'

이런 조건을 붙여 놓았지만, 노력하는 나에게 주는 상처럼 가끔씩 먹었다. 

그렇게 2년여 긴 시간 동안 나는 해냈다. 비건 식사를 하면서 현미와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매일 먹던 올리브유를 듬뿍 뿌린 양배추 당근 볶음이 너무 맛있다며 수술 이후에도 이건 만들어 먹어야지 생각했었다. 그 정도로 나의 입맛은 변화된 듯 보였다. 


그런데, 수술을 하고 나니 내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 암도 없겠다 그동안 절제했던 당과 빵을 먹어주었다. 그리고 외식도 종종 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의 식탐이 고개를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기운 없이 쓰러져 있었으나 기운을 차리고 나니 나를 이끌고 가려고 했다. 아니 오히려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느껴졌다. 

식탐이 인도하는 대로 먹어보곤 했지만, 나의 갈증과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왜 그러지?

내 입맛이 변한 것인가? 습관은 무섭다고 마트에 가서 사는 것도 일정했고, 가끔 뷔페를 가서 다양한 디저트와 요리를 맛보면서도 정말 맛만 볼 정도로 조금씩 먹었다. 

그래, 습관의 힘이 무섭구나라고 나름 위안 삼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계속 갈급해했다. 먹방 유튜버들이 청소기처럼 음식을 빨아들이는 것을 보는 게 좋았다. 씹지도 않고 삼키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난 현미밥이라 오래 씹어야 해서 비건식 할 때는 턱이 몹시 아팠었는데..

'나도 저 나이 때는 저렇게 먹었었지. 나이가 들면 저들도 나처럼 될 거야.' 그런 생각을 반복하면서도 그런 먹방 프로그램을 보았다. 세상에 저렇게 다양하고 많은 식재료와 요리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먹어본 음식은 1/100 정도밖에 안될 거 같다. 전 세계에서


그런 중 최근에 나의 식탐의 정체를 찾아냈다. 나는 그저 그동안 억압되었던 식탐이 풀리면서 고피 풀린 망아지가 된 거 같았으니 내가 안쓰럽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내 앞에 음식을 놔두었는데, 

지금 보니 나의 식탐은 자기애와 헛된 우상을 쫓는 행위와 유사했다. 내가 암환자였었다는 것만으로도 자기 연민이 생겼었다. 아들 둘을 키우며 받는 스트레스를 풀려면 달콤한 것을 먹어줘야 해, 갑상선 호르몬 없이 살아가려면 중간중간 당분으로 뇌를 깨워줘야 해라는 나의 연약함에 대한 나만의 극복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나 자신을 끌어안고 있으면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기보다는 평생 주저앉게 하는 연약한 마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신앙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나의 허전한 마음을 음식으로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나만의 우상을 만드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욕망을 따라 걸어가고 욕망이 시키는  것에 순종하였다. 

그러니 나의 욕망은 점점 거세졌고, 더 큰 욕망을 갖도록 풍선처럼 커져갔다. 점점 채워지지 않자 불만이 생겼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싶었다. 


모든 욕망이 그런 식으로 우리를 길들이고 우리를 조종하고 우리를 파멸시킨다. 

나도 하마터면 식탐에 파멸될 뻔했다. 바보같이 들리지만 실제다. 세상은 음식들로 넘쳐나고, 다양한 음식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세상에 성적인 유혹이  넘쳐난다고 느꼈었는데, 음식의 유혹이 더 강렬하고 이게 나쁘다고 말하기 애매하기 때문에 너무 허용해준 탓인지 더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맛에 대한 궁금증과 신비감도 생겨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의학이 발달했으나 아직 정복하지 못한 산이 많이 있다. 그리고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들이 훨씬 많아지고 거세졌다. 내 주위에도 하나둘 문제가 생겨 쓰러지기도 하고, 아직 쓰러지진 않았지만, 한두 가지 질병이 시작되어 두려워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절반은 건강상 조심해야 하고, 문제가 있는 상태임에도 세상은 음식에 대한 유혹으로 넘쳐난다. 우리가 과식하고, 음식을 먹고 싶은 것들로 먹으면서 살아가는 게 단지 나의 건강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좋아하는 돼지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가난한 누군가의 먹거리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 

고기를 먹기 위해 돼지를 키우면, 돼지는 풀만 먹는 게 아니라 사람이 먹는 것들을 먹기에 돼지 한 마리가 먹어들이는 음식양으로 인해 가난하고 힘없는 어떤 사람은 음식을 빼앗기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가 수도사들처럼 경건을 위해 피해야 할 것에 음식도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옛날 식탐을 보여주는 미술작품 속 메뉴는 정말 빈약하기 짝이 없는 메뉴들과 적은 양 놓여 있었다. 

옛날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도 풍요로운 먹거리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이 풍요로움 속에서도 오히려 빈곤을 느끼고, 채워지지 않는 식탐을 채우기 위해 욕심을 부리게 된다. 


이번 주간은 나의 식탐을 반성하면서 회초리를 맞는 시간처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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