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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pr 26. 2022

이제는 코로나도 상관없어

요즘 아이의 사회성이 부쩍 더 나아졌다. 꼬부기를 위해서 어린이집 엄마 중 한 명에게 연락해서 우리 꼬부기와 놀 수 있는 날짜를 받아냈다. 

그쪽 엄마들이야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정말 간절하지..

우리 집에 한 번 놀러 와 달라 부탁했다. 예전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 초대하는 걸 잘 못했다. 지금은 코로나 3년 차에 우리 집도 코로나가 지나갔고 어린이집 친구들도 모두 코로나에 걸려 지나갔다. 

코로나로 마스크 쓰고 3년 차.


아이들은 마스크 덕분에 코로나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지만, 마스크로 인해 잃은 것도 있다. 입 모양을 보지 못하고 말을 이해해야 하니 답답하고 더운 여름에는 얼마나 답답했나. 

마스크 탓, 코로나 탓해서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지금의 3학년 코로나 시작된 20년에 1학년을 맞이한 아이들이 학업 수행능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코로나 시작이어서 1학년 때 학교를 거의 가지 못했고, 1학년 말이 되어서야 반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단다. 첫 1학년을 온라인으로 해야 했으니 부모며 아이며 얼마나 고충이 심했을까. 워킹맘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나는 21년도에 첫째가 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도 코로나가 델타 변이로 센 편이었음에도 매일 등교여서 아이는 학교에 가서 친구도 만나고 선생님과 학급에서 생활하는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쉬는 시간을 없앴나 줄였나 해서 수업을 2교시를 연달아하는 고충을 겪으며 불평이 많았다. 그래도 학교를 갔던 게 어딘가 싶다. 문득 당시 언론에서 화두가 되었던 형제끼리 라면 끓여먹다가 화재가 나서 오랜 시간 혼수상태로 있었던 이야기도 떠오른다.(라면끓여먹던게 아니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코로나로 엄마는 일하러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집에 방치되었기에 문제가 생겼다) 그 아이들 뿐이랴. 정말 많은 아이들이 사각지대에서 고충을 겪었을 것이다. 워킹맘들도 힘들었을테고,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해내야 했을 많은 아이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때를 지나온 아이들이 생활력 강한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래본다. 


모두 코로나로 잃었던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코로나를 지나왔고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 역사 상 전 세계를 지나간 전염병이 있었던가 싶으리 만치 강한 역병을 모두가 지나왔다. 어디선가 이제 세계화는 끝났다는 얘길 봤는데,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랜선 세계화만 가능할듯하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많이 달라졌다. 나도 달라졌고, 우리 아이들도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역사적인 거대한 사건 앞에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아직도 갈등이 많고 양극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로 하나가 되지 않았나. 

우리는 코로나로 세계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공통 화두가 생겼다. 


꼬부기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꼬부기 1학년 되면 해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지금 당장 해줘야 할 숙제였다. 어린이집 엄마 중에서 코로나로 인해 몇 년간 휴직하였다가 이제 다시 복직하는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 복직하기 전에 얼른 약속 잡아야겠다 싶어서 급하게 연락하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보았다. 

늘 형아를 중심으로 관계가 움직이고  꼬부기는 엑스트라처럼 껴서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는 꼬부기가 주인공이 되어서 친구네 집에 놀러 갔으니 얼마나 낯설고 기분이 좋았을까.


꼬부기는 친구네 집에서도 거의 한 마디도 안 하더니 조용조용 소곤소곤 몇 마디 하며 놀았다. 가기 전까지는 들뜨고 좋아 보였는데, 막상 그 집에 가서 우리 꼬부기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아서 친구가 우리 꼬부기랑 노노는게 재미없다하면 어쩌지하고 불안했다. 그래도 꼬부기는 그 집에 있는 다양한 장난감에 빠져서 재미나게 보낸 듯했다. 헤어지며 다음엔 우리 집으로 오라고 약속을 잡았다. 꼬부기가 그 친구집에 다녀온 뒤로 어린이집 사진을 보니 둘이 같이 노는 모습이 자주 찍혔다. '노력의 열매가 벌써 이렇게 맺혔을까' 놀랍고 감사하면서 '왜 이렇게 늦게서야 했나..' 후회도 많았다. 변명을 하자면 작년까지 갑상선암 수술로 여력이 없었고, 아직도 체력이 회복 안되어서 누굴 만나는 게 겁부터 난다. 


일주일 후, 친구가 우리 집에 온날. 꼬부기의 목소리가 두배 더 커졌다. 아니 원래 목소리로 돌아갔다. 친구 엄마는 꼬부기가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에 오니 달라지네요"라고 한다. 나는 "밖에서 달라졌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집에서는 늘 저 모습이었다. 꼬부기가 바깥에서는 조용한 캐릭터가 만들어져서 그 캐릭터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다. 나도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 여러 가지 캐릭터를 갖고 있다. 때론 적극적인 사람, 때론 푼수, 때론 조용한 사람등등. 우리 꼬부기도 어떤 캐릭터이든 자기가 정한 범위 안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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