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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pr 21. 2022

늦게 찾아온 육아 번아웃

  나는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번아웃이 올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왜냐면, 아이들은 나에게 열정이 일어나게 하고, 심장이 뛰게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고, 결혼하고 몇 개월의 신혼이 지나서부터  아이가 생기길 간절히 원하고 기다렸다. 그때부터 6년 뒤 첫 아이를 품에 안을 때까지 나의 기다림은 길었음에도 그 열망은 하루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혼 1년도 안되었을 때인 거 같은데, 임신이 안되어서 동네 산부인과에 찾아가서 상담하였고, 책을 찾아다녔고, 조언을 찾아다녔다. 

매번 찾아오는 생리 시기에 임신 증상과 유사한 증상을 느끼며 한껏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를 반복했다. 생리가 시작되고 나면 늘 실망으로 하루는 우울하였는데, 그다음 날이 되면 다시 희망이 찾아오면서' 다음 달에 임신될 수도 있어'라며 일어섰다. 이 상황을 5년간 반복했으니 나의 30대는 임신을 간절히 기다리며 꿈꾸고 기다려온 거 말고는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점점 더 간절해지며 임신소망의 불이 나의 모든 것을 삼킬 만큼 커지자 그때서야 아기가 찾아왔다. 결국 새벽기도에 나가서 목숨을 건 기도를 하였는데, 아이가 안 생기면 이곳을 떠나서 외국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인생을 다시 출발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남편도 안 가겠다 하면 나만 떠나야지 생각도 했었다. 아기가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어서 결혼생활도 의미가 없다 생각했다. 


  임신을 기다리는 마음은 그렇게 간절해진다. 한 번의 계류유산으로 아기를 보낸 뒤 다시 찾아온 아기를 품게 되어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조심 살았었다. 임신 후반이 지나서야 비로소 임신을 즐길 수 있었다. 아기를 낳고 나서 갑상선 저하로 힘듦에도 나를 돌보지 못했다. 그래서 7년 뒤 결국 갑상선 암으로 수술하기에 이른 게다. 

그래도 나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첫 아이를 품에 안고 하루 종일 아이 얼굴을 바라보고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꿈만 같고 좋았다. 너무 사랑스러운 조그마한 아이를 품에 꼭 껴안고 얼굴을 부비며 뺨에 입 맞출 수 있었으니까. 


  둘째를 낳고 나서는 아기가 더 예뻐 보였다. 첫 애 때는 모든 게 서툴고, 어렵고, 걱정되는 게 많아서 느끼지 못하던 것들이 둘째 때는 한결 여유로우면서 아기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몇 배 더 잘 볼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다. 나의 아기 사랑은 끝이 없을 듯했는데, 꼬부기 7살이 되니 끝이 나버렸다. 

꼬부기 6개월 때 청천벽력처럼 대두증 의심으로 대학병원 신경외과에서 정기적으로 검사하며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머리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약을 먹이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도 두렵고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없어서 가슴이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의 미소를 보며 행복했고 내 팔에 기대어 잠드는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밤새 내 팔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주고 싶었다. 그랬으니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꼬부기의 발달과 발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늦는 건 아닌지 늘 체크하면서 살펴보았다. 하필 12월생이어서 늘 느려 보여서 마음이 항상 조마조마했다. 감정표현이 잘 안돼서 폭력을 쓰거나 떼를 쓸 때가 많고, 언어 표현도 잘 안되니 짜증이 많았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감각은 예민하고, 짜증과 떼쓰기를 매일 하는 아이를 돌보며 지쳐버렸나 보다. 게다가 야뇨증으로 잦은 이불빨래까지. 


  꼬부기가 커지면서 점점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서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을 좀 키운 뒤에 입양하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있었다. 나의 소명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이들을 보면 특별한 마음들로 감동되고 마음이 움직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사라져 버렸다. 나에게 아기/육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조그마한 아기였나 보다. 그 조그마한 아기가 커져서 자신의 생각이 생기고 의사표현을 하며 나와 반대의 길을 가려고 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나 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인생을 모르고 세상을 몰랐으며 철부지 같은 생각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번아웃이 왔거나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을 너무도 모르고 있어서 이런 오판을 했거나. 

 남자아이들을 키우려면 체력도 많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체력도 이미 파산상태다. 갑상샘 전절제 수술로 더 해졌다. 체력 흙수저 상태로 버티고 버티며 하루하루 참으며 지내다 이제는 더 이상은 못할 거 같은 상황이 왔나 보다. 

아이들의 작은 잘못에 폭발하듯 화가 나고, 감정이 극으로 가버린다. 아이들을 보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 진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그런 내 마음을 알 턱이 없으니 불난 집에 기름을 부으며 나를 더 격노케 한다. 처음엔 아이들이 문제라 생각했으나 가만 보니 내가 너무 지쳐버려서 더 이상 이겨낼 힘이 없어져서 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지금은 나에게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십자가인지를 

내가 변화되어야만 하고

내가 죽어야만 하는 

고통의 자리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이 짐이 너무 무거워서 쓰러질 거 같다. 


 아이를 낳고 나서 모든 엄마들이 위대하게 보였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녀를 키운 부모들이 위대해 보인다.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다들 어떻게 참으셨어요?"

"저는 못 참겠어요. 파업이라도 하고 싶어요 잠시 시계를 멈추고 싶어요" 

그래서 아이를 일찍 낳아야 한다고 하나보다. 나는 36살과 38살 늦게 낳아서 키우며 게다가 갑상선도 잃어버리고 나니 체력이 안되어서 육아번아웃이 온거 아닐까 번아웃이 온 이유를 찾아본다. 


나도 혹시 번아웃 증후군?


□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갑자기 떨어진다.
□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커진다.
□ 육아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 나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 지난 과거가 후회스럽게 느껴진다.
□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다.
□ 현실을 벗어나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1~2개 : 번아웃 증후군의 초기 단계로서 주의를 요함 
3~5개 : 번아웃 증후군의 중기 단계로서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함 
6~7개 : 심각한 번아웃 증후군 단계로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함


-출처:네이버 베스트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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