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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01. 2022

특수체육 한 달!

특수체육 두 번째 수업이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월화수목금토일'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해서 나를 슬프게 했었던 꼬부기인데, 

이제는 달력 금요일 칸에 '채육 선생님'이라는 글자를 써두었다. 

일요일은 '교해가는 난'이라고 써두고. 


 얼마나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나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체육선생님은 의외로 여자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이게 더 좋았나 보다. 7살 꼬부기는 요즘 부쩍 이성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서 내가 옷 갈아입거나 하면 눈을 가리며 못 봤어라고 얘기하고는 혼자 재밌다는 듯 큭큭 웃곤 했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남자 선생님을 만나기 힘들다 보니 여자 선생님이 적응하기에 편했으리라. 

 

 이번 주는 금요일을 기다리며 지내는 듯했다. 꼬부기는 형아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하고 퀴즈를 낸다. 그리곤 "금요일"이라고 형이 답하면 "왜 그러게?"라고 다시 물어본다. 

"체육수업 가서~" 

여러 번 얘기해서 우리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꼬부기의 마음이 얼마나 신나고 체육수업을 기다리고 있는지 다 들통난다. 

진즉 해줄걸 하는 생각에 또 엄마의 마음은 한 켠에는 죄책감이 든다. 

예쁜 여자 선생님과 둘이서만 수업을 진행하는 데다가 선생님은 꼬부기가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신다. 그러니 아이는 즐겁고 신난다. 형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고 못 들어온다는 사실에 승리한 사람처럼 들뜬다. 

"형은 못 들어와"라고 몇 번을 말하던지..

첫둥이도 나도 시켜달라 야단이다. 꼬부기야 바우처 지원을 받으면서 진행하니 지원이 되는 8세 이전까지 부지런히 시켜주려하지만, 첫둥이에게는 미안하게도 비용 때문에 해줄 수 없다. 


꼬부기도 남자였다. 운동을 잘하고 싶고 몸을 잘 사용할 줄 아는 남자이고 싶었다. 여자애들이랑만 어울리고, 체구도 작고 얼굴도 여자애처럼 곱고 목소리도 고음-미성이어서 운동을 싫어하나 보다 했었다. 게다가 태권도 학원 같이 가자는 형의 간절한 얘기에도 울면서 절대 안 간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던 모습에 아직은 운동이 무서운가 보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보다.           


꼬부기는 약간의 완벽주의 경향이 있다. 잘하지 못하면 시작도 안 하려는 듯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조금 해본 뒤 자신감이 생기면 열심히 한다. 그래서 꼬부기에게는 자신이 어느 정도 잘한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1:1로 배우는 것이 잘 맞는 듯하다. 

아이마다 성향이 달라서 부모의 지원도 달라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꼬부기는 개인 수업이 잘 맞는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형은 여러 명이 함께 수업하며 경쟁을 통해 승리감을 얻는 것이 즐거운 반면 꼬부기는 여러 사람이 있으면 긴장되고, 게다가 경쟁이 시작되면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에 안 하겠다고 화내거나 포기해버린다. 형과의 경쟁에서 늘 지는 경험을 했기에 트라우마처럼 작용하는 듯하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발견하려 한다. 어릴 적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 아이였을까. 나도 저런 어려움들을 겪었고 극복했었겠지?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굵직한 흐름의 스토리들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은 바보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처럼 기억에 남지 않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내 생각 속에 파묻혀 있어서 바깥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친구들의 세밀한 표정과 말투와 말의 의도 같은 것을 캐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 뭐했어?, 오늘 뭐 배웠어?" 물어보면 "몰라, 기억 안 나"라고 말하는 우리 아들들처럼 털털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래도 그중에 몇 가지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자세한 전후관계와 스토리들은 건너뛰고 그냥 맥락 없이 딱 거기부터 기억이 난다.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생각을 했었지. 맞아, 나도 저런 걸로 속상했었지' 하고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고 '나도 그때 이렇게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에게도 저렇게 위로해주고 내 감정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 나의 실수에 대해 혼내는 게 아니라 "놀랐지?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타깝지만 더 나쁘고 학대하는 부모들을 만났거나 버려지지 않고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자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가 컸던 어린 시절에는 자녀의 감정을 이해해주고, 꿈을 심어주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하는 양육태도가 없었다. 부모님은 많은 자녀들을 돌보랴 세탁기 없이 빨래하랴, 가스레인지도 없이 음식을 만들고, 연탄보일러에 불을 살리고, 그 불에 밥이랑 국이랑 반찬까지 다 만들어 먹으며 설거지도 식기세척기 없이 직접 하고 청소기도 없이 빗자루로 청소하고 걸레질까지 하느라 너무도 지쳐있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런 얘길 하셨다. 그때는 다들 자식이 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엄마의 회한이 담긴 고백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 셋을 키우고 집안일 하나도 안 도와주는 남편,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와서 술주정하거나 욕설을 해대는 남편까지 섬겨야 했으니 엄마의 사랑탱크는 채워지지 않았고, 번아웃 상태였으리라. 게다가 몰래 바람이라도 피우고 와도 참고 살아야 했던 엄마들은 모성애로 넘쳐나는게 아니라 오히려 메말라 있고, 상처에 피가 흐르고  있었으리라. 


지금은 꼬부기와 첫둥이를 보면서' 어쩜 아이들이 이리도 말을 안 듣고 부모의 말에 반항하고 무시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 생각을 하면서 내가 부모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을 자녀들에게 과하게 부어주며 허용적인 부모가 되어 가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더 주려고 노력할수록 아이들은 더 망아지처럼 통제가 안되었고, 나는 어릴 적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아무도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듯 서러워서 감정이 펑하고 폭발해버리곤 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잘못된 양육태도가 문제의 시초가 된 거다. 애당초 무한적인 사랑으로 자녀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주기 위해 마지막 에너지까지 짜내고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허용적으로 변해갔던 게 자녀를 훈육하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가도록 훈련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와서 다시 훈육과 훈련을 시키려니 3개월도 안되어서 번아웃이 왔다. 그렇게 번아웃 올 정도로 3개월 동안 훈련시킨 것은 고작 아침에 일어나서 물 마시고, 아침 먹고 양치하고 지각하지 않고 학교 가기. 자기 전에 씻고 양치하기, 가방에 연필 깎아두기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것밖에 없다. 이것만 3개월 동안 시켰는데 아이들도 참 너무했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 4살 자녀는 야무지게 혼자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던데.. 

우리 아이들은 9살이 되어서도 "양치해라 세수해라" 매일 얘기해줘야 한다는 게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듯 싶다. 진이 빠진다. 그런데 어떡하랴. 그것을 훈련시키지 못한 게 나인걸. 그러니 3개월의 회개와 자숙의 시간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할 일을 먼저 하고 놀도록 하는 것을 훈련할 계획이다. 이것도 3개월간 쭈욱 하면 습관이 생길 것이라 기대하며 하는데, 벌써부터 방전된 핸드폰처럼 힘이 없다. 이것을 이끌고 갈 힘이 나에게 없다. 당장 엄마 역할을 파업이라도 하고 일주일만이라도 쉬고 싶지만, 대체 근무자가 없다. 

그래서 서글프고 힘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메달은 이미 포기했지만 완주를 위해 비틀거리면서도 한걸음씩 걸어가는 마라톤 선수처럼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엄마는 성장하는 것 같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나의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 나의 내면이 자꾸 성장해서 스무 살의 성인이 되려고 한다. 첫둥이와 꼬부기를 키우면서 마주하는 한계와 극한상황으로 인해 내가 어른이 된다.

엄마가 되는 꿈이 작은 꿈이 아니었다. 엄마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커다란 자아, 어른 자아로 성장하는 과정을 겪기 위해서는 엄마가 되어야만 했다. 알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문득 엄마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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