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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03. 2022

중독 가족

오늘 그냥 인정했다. 내가 중독이 있다는 사실을. 

그런 면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중독 가족이다. 

먼저 시작은 나와 남편이다. 나는 영화를 공부했었기에 대학시절 영화를 무한정 보기도 했다. 하루 종일 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 느꼈던 기분은 밤새 도박을 하다 아침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에 눈이 부셔서 햇볕을 가리며 현실을 회피하고 싶고, 모든 감각이 둔탁해져서 세상이 낯설어지게 되는 그것이다.

도박은 안 해봤지만, 도박의 자리에 미디어(스마트폰) 또는 일, 게임 등을 넣을 수 있겠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왜 여기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생각이 들 때가 생기고, '아무리 그래도 잠은 잤어야지' 하는 후회가 찾아온다. 다행히 갑상샘암 수술로 잠을 못 자면 체력이 안돼서 앞으로도 강도 높은 중독까지 가진 못할 거 같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스마트폰/미디어 중독이다. 쓸데없이 뉴스 기사나 유튜브 동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클릭하고 시간을 킬링 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움 되는 것을 보자면서 자기 계발 메시지나 설교라도 들으려고 소리라도 켜놓는다. 

그런데, 이 정도는 뭐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 하지 않나 하는 위안 같은 생각을 하며 바꾸려 하지 않는데, 내 인생이야 그렇다 치지만, 문제는 우리의 자녀들이 똑같이 닮아가고 더 빠른 속도로 중독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거다.

남편은 아무리 스마트폰 중독이어도 회사에 가있는 동안 일해야 하기에 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다. 그러니 집에서 핸드폰과 컴퓨터만 붙들고 있어도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참았으니 저 정도는 내버려 둬야겠지 하는 맘이 생긴다. 걱정은 9살 남아 첫둥이다. 첫둥이에게 최근에 닌텐도 스위치를 사주었다. 몇 년 전에는 닌텐도 위, 그리고 마인크래프트 게임까지. 마인크래프트는 모바일 버전으로 사고 pc버전으로 사는 2중 3중 지출을 했다. 이유인즉슨 온라인으로 동생과 친구와 만나서 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발전하더니 PC버전에는 자신의 캐릭터를 볼 수 있어서 pc버전도 사달라고 했다. 나중에는 '그래 네가 게임을 하다가 언젠간 질리겠지' 싶어서 게임 유튜브도 만들어 보라고 촬영도 하게 하고, 편집도 가르쳐줬다. 물론 편집은 힘들어서인지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고도 관심은 게임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갖고 있는 닌텐도 스위치를 매일같이 노래를 부르며 간절해 하기에 어느 순간에 사주지 않고서 내가 더 이상 참기 힘들겠다 싶어서 사주었다. 

성경에 기도에 대한 비유로 불의한 재판장에게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과부가 매일 찾아가 울며 간청하자 재판장이 귀찮고, 내일도 또 찾아와서 얘기할 것이기에 자신은 불의한 자임에도 과부의 억울함을 해소해준다는 내용이 나온다. 첫둥이 때문에 그 재판장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저렇게나 끈질기게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생기면 나도 저렇게 기도해야겠다 싶다. 


암튼 게임을 사줬으니 끝났겠지 싶었지만.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었다. 학교를 안 가려 했다. 이유인즉슨 게임을 하고 싶어서. 

학교 끝나자마자 태권도 학원도 방과 후 수업도 안 가고 싶어 했다. 이유인즉슨 게임이 하고 싶어서. 

게임 시간은 제한이 있었음에도 아이는 그런 생각은 없고 집에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기가 있으니 집으로만 오고 싶어 했다. 그래, 산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러니 몇 주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2주 정도 지나자 그러한 것은 좀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대화와 모든 사건의 기승전결이 게임이다. 

갑자기 맥락도 없이 툭 던지는 얘기와 질문에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다시 물으면 게임 속 이야기를 말하는 게다. 


그래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게임을 30분~1시간씩 매일 하더니 게임을 끌 때마다 난리였다. 꼬부기도 첫둥이도 난리. 꼬부기는 더 난리. 게임 속에서 빠져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분~20분. 

그렇게 기다려줘도 못 나오고 강제 진압하면 울고 불고 난리가 10분 이상 이어진다. 


안 되겠다 싶어서 게임 날짜를 일주일에 이틀로 몰아서 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알아들을만한 녀석인 첫둥이는 계속 반복하며 질문한다. "오늘 하면 안 돼?", "왜 안돼?"

예를 들어 게임 할 수 있는 날짜를 수, 금으로 정한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월요일로 바꾸게 해 달라 하고 목요일이면 목요일로 바꾸게 해 달란다. 억울한 과부가 호소하듯 멀미날 정도로 나에게 호소한다. 

안된다고 이유도 설명해보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렇게 월요일 게임을 하고 나면, 화요일 다시 얘기한다. 금요일 할 것을 화요일로 변경하겠다고 말이다. 


이 미칠 것 같은 쳇바퀴에 두손두발다들고 항복하고 싶어 진다. 너의 인생을 네가 망가뜨리든 허비하든 내가 관여하고 싶지 않다. 너도 니 인생을 망가뜨리면서 아침햇살이 부담스러워 햇살을 가리고 한낮에 겨울잠 자는 곰처럼 깊은 잠을 자봐야 알지!  


그나마 아직 어려서 나의 울타리로 지켜주고 있는데, 좀만 더 나이가 들면 못해줄 듯하다. 나는 어떤가. 게다가 우리 남편은 어떤가. 남편은 그렇게 게임만 해보았었다. 그래서 척추측만증이 왔단다. 남편은 동생이 갑자기 사고로 죽고 나자 스무 살 초반부터 몇 년을 게임만 하며 생각을 멈추고 싶어 했었다. 그렇게라도 고통을 잊으려 했는데, 이해가 간다. 


중독자들의 뇌는 다르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게임 중독자의 뇌에는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뇌의 비슷한 부분에서 활성화가 일어나는 거을 볼 수 있는데, 게임이나 마약은 작은 노력으로 큰 보상이 주어지기에 쉽게 만족감/행복감을 느끼게 하여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다. 공부나 운동의 경우는 오랜 시간 힘들고 고통스럽게 자신과의 싸움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성취감과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게임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노력하며 한 걸음씩 해나가는 매일의 연단 과정을 인내하기 힘들다.

 

정상적인 뇌는 자극에 반응하고, 시각과 감각으로 사고하는데, 게임중독자의 경우 시각적 감각이 떨어지게 나온단다. 게임이 시각적으로 정보를 확인하고 손으로 즉각 반응하기 때문에 시각과 손 근육 사용만 하여서 후두엽과 측두엽의 약간의 활성화라는 간단한 과정만 거친다. 생각/ 사고를 관장하는 전두엽은 사용하지 않기에 전두엽이 발달되어야 함에도 발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게임/영상은 보는 것이니 시각(후두엽)이라도 발달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시각 감각이 떨어지는 이유는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 뇌는 강한 시각 자극에만 반응하기에 일상과 일반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생각으로 연결되지 않게 되어 오히려 일상에서 느끼는 시각정보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영상도 스토리가 있어서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고 정답처럼 모든 게 보이니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따라가고만 있다. 그러니 만화책/영상미디어 모두 전두엽의 발달을 방해한다. 여자는24살, 남자는 30세까지도 전두엽이 성장하여 완성되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자녀들의 미디어 중독은 뇌 발달을 방해한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했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탄수화물 중독자가 탄수화물을 먹을 때 일어나는 변화와 유사했다. 마약만큼의 효과를 갖다 주는 탄수화물 디저트. 

나의 중독을 열거해보니 미디어 중독, 탄수화물 중독

남편의 중독은 미디어 중독, 게임중독, 일중독

첫둥이 중독은 게임중독

꼬부기 중독은 아직 없고 게임 과몰입과 게임 끝내기 어려움. 


7살 꼬부기가 그나마 나은 것은 세상을 살아낸지 얼마 안 되기 때문인 거 같다. 세상을 더 살면 무언가에 중독되기 쉽다. 세상은 우리를 중독이라는 입을 벌린 채 삼키려고 하는 게 너무나 많다. 중독 없이 살아간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다. 아이티 강국에 살아서 그러나..


어느 날, 핸드폰에 있는 웰빙 기능에서 나의 핸드폰 사용량을 보여주는 걸 보면서 

내가 중독이라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뭐 심하지 않은 중독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집안일하고 아이들 돌보고 이것저것 하는 시간 이외에 내게 주어진 황금 같은 자유시간 고작 3 시간을 한 곳에 몰빵하고 있는 것이니 심각한 게다. 

나에겐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3시간을 허튼데 빼앗긴 셈이니 나의 미래가 어찌 밝으랴. 내 중독을 인정하고 나니 아이들에게도 우리 같이 바꿔나가자라고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집순이 집돌이들이지만, 집을 벗어나서 발로 걷고 몸을 사용하며 다른 즐거움을 찾아 나서야겠다. 

길을 찾아 나서면 뭔가 대안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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