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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May 20. 2022

'욱'의 역사"애들아, 엄마 사람되게 해줘서 고마워"

오은영 박사의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책을 보면서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이유인즉슨 바로 나의 이야기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해서 그렇다. 

일단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너무 많이 욱해버렸다. 나의 감정 주머니가 작아서이거나 허용적 부모라서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부드럽고 자상하게 대해야 하지만, 단호함도 있어야 하고,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부모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이고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꺼라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실전은 다르다는 점이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듯 실제에서는 다르게 반응이 나온다. 물론 이론을 잘 몰랐기 때문일 수 있지만 이론은 머릿속에 저장해 놓은 정보정도 밖에 안될 때가 많다. 

 요즘은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이 있어서 엄마들은 책 안 읽고도 쉽게 육아 비법을 배울 수 있긴 하다. 

실전/적용 편으로 나오니 얼마나 좋은 육아 해법 방송인가.  


쉬워 보이고 문제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내가 그 상황이 되면 다르다. 그래서 다른 부모의 육아법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면 안될꺼 같다. 육아의 정확한 법칙이 있는 게 아니라 아이마다 성향과 기질과 상황과 다양한 작용들이 버무려져 있는 상태라서 색깔과 향과 맛으로만 소스 안에 무슨 재료가 들어가 있는지 모두 파악하기 힘든 것처럼 나의 육아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다. 훈육은 무썰듯 답이 딱 나오거나 하지 않을 때가 많다. 답이 바로 나오는 때는 그렇게 하면 되지만.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져서 애매할 때가 참 많다. 


그래도, 금쪽같은 내 새끼 이전과 이후로 엄마들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나오기 이전에 아이가 꽤 커버렸기에 좀 아쉬운 부분이 남아 있긴 한데, 열혈 시청자이기에 빼놓지 않고 보며 배우는 마음으로 우리 집에 적용할 내용을 찾아 바꿔나가고 있다. 더 일찍부터 알고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감사할 따름이다. 

그 중, 욱하지 말하야하고, 아이에게나 남편에게 소리 지르거나 화내면서 말하는 방법은 고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배우면서도 이게 정말 안 고쳐진다. 


고칠 수 있는 파란 약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먹고 과거의 나를 잊고 싶다. 잊고 싶은 것은 거슬러 올라가서 나의 원 부모님의 집부터 잊고 싶다. 그렇다면 욱이 없어질까나 해서.


오은영 박사도 우리나라의 빨리빨리와 급한 성격과 분노, 화는 역사적 결과물이라고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나도 그 이야기에 크게 동감한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가난했었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다. 전쟁세대이기도 하고 전쟁 시기에 태어나거나 자라서 부모님들의 사랑과 이해와 공감을 받고 자라기 보다 짐처럼 여겨졌고,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적인 부분은 도움을 받았으나 그 외의 부분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 했다. 


오은영 박사는 우리나라의 역사 중 식민 통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식민 통치당하면서 억울했기에 한이 가슴에 쌓였고, 식민통치도 전쟁도 분단도 우리 힘과 우리의 의사로 결정된 게 아닌 외세의 힘과 권력의 논리에 의해 휘둘리게 되었기에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 안에는 모두 억울함과 한이 있다고 한다. 그래 우리는 약자였기에 피해자가 되었고, 역사적이고 사회적 상황으로 인한 '한' 만있는게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들,딸 차별등으로 인한 억울함과 한이 있다. 


'대한 정신건강 의학회에서 2015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절반이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에도 있다. 남편과 내가 그랬고, 우리의 욱과 분노 표출로 인해 아이들도 분노하고 있다. 화가 나고 억울할 때의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욱하는 것으로 배워버렸다. 

지금은 이것을 바꾸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보지만, 정말 정말 어렵다. 차라리 다시 태어나서 시작하는 게 나을 정도다. 


나의 학창 시절 엄마 아빠의 싸우는 소리가 너무도 무섭고 싫었었다. 욕설이 난무한데, 나는 방에 숨어서 그 소리를 들으며 바깥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며 불안에 떨었었다. 당시 그런 나에게 언제부턴가 혼자서 가만히 있을 때면 무언가를 부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거실에 있는 티브이부터 해서 유리와 전화기 모든 가전제품부터 가구와 유리와 모든 것들을 부수고 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그러고 나면 좀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런 상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정말 상담이 필요한 시기였으나 그런 것은 사치였다. 아무도 나의 감정과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감정을 한 번도 읽어주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고 이해해주려 하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잘하다가도 한 번씩 도저히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되고 미워지면 펑하고 터지듯 소리 지르며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변해버린다. 그렇게 한 번씩 무섭게 소리 지르면 아이들이 말을 듣기 시작했었기 때문에 가끔씩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사용하다 보니 길이 생겨서 더 빨리 더 자주 소리 지르게 되었다. 

나의 뇌가 욱하는데 활성화되고 최적화되어가려 하는데, 이 길을 없애고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한다고 하니 정말 고된 작업이고 병에 걸릴 것처럼 괴로웠다. 


나는 허용적인 부모에 해당되는 듯하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루어 주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게 나의 기쁨이 되기도 했으니 되도록 아이들에게 맞추어 살아왔다. 허용해주다가 어느 선을 넘어서도 말을 안 들으면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돼버린다. 


애초에 허용적인 부모가 되어선 안됬었고,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분명하고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들은 떼를 쓰고 한 시간 째 울어도 단호하게 일관되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 놓이면 당장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 흔들리고 의심이 생긴다.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내가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오늘 하루에 아이를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우리 아이의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예외 상황이니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수많은 의심과 확신이 없음으로 인해 중간에 그만두게 되거나 다른 쪽으로 해결하거나 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랬더니 정말 더 힘들어졌고, '떼'도 길어진 게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늘 원인을 찾지 못한다. 미궁 속으로 빠지듯이 어디가 시작점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근래에 계속 놀이치료와 상담을 다니면서 내 모습을 조금씩 보게 되면서 무얼 바꿔야 하는지를 느끼고 있다.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다면 많은 진보가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그동안 화날 때 소리 지른 거 정말 잘못했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 너희들도 고치려고 노력해줘."  얘기하며 수차례 나의 잘못을 끄집어내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들이 바뀔 수 있길 바라면서. 

정말, 정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다. 어렵다. 너무 어려워서 지금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좋은 관계를 맺는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신 부모들을 보면 그냥 존경스럽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면서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좋은 사람이 되어가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아이들의 말에 내가 그토록 변하지 않았던 나의 나쁜 습관을 바꿔야지 하는 생각이라도 하게 된다. 

"애들아, 고맙다! 엄마 사람 되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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