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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10. 2022

"얘는 빼!, 똥 쌌었잖아"

7살 꼬부기가 확 달라졌다. 요즘 매일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1시간 이상씩 놀고 있다. 뭐, 예전에도 놀다가긴 했지만, 전에는 내 바짓가랑이 붙들고 간식만 먹고 있었다면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놀이치료 선생님이 꼬부기에게 짝 치료가 필요할 꺼 같다고 제안하셨다. 또래 친구와 상담실에서 같이 만나서 선생님이 계시는 상태에서 두 아이가 함께 어울려 놀이를 하면 좋단다. 

또래 친구와 놀이를 하는 경험들을 많이 쌓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꼬부기가 사회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음을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과 놀이를 할 때도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감정표현도 어려워한단다. 

그래도 집에서는 형아랑은 엄청 잘 노는 꼬부기인데. 아무도 우리 꼬부기가 얼마나 활달하고 외향형 아이인지 잘 모른다. 나만 안다. 


놀이터에서 놀기를 일처럼 열심히 했다. 꼬부기가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내가 먼저 꼬부기 친구 엄마들과 어울려야 한다. 나는 내향형이기에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솔직히 조금 힘들다. 그래서 늘 끝나자마자 아무도 안 볼 때 후다닥 꼬부기 손잡고 집으로 향했다. 느리게 걷는 꼬부기에게 간식으로 유혹하며 집에 가자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짝 치료나 다름 없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1:1로 놀이를 하기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할 수 있다. 아이들은 엄마가 혼자 앉아 있는 것보다 여러 엄마들과 어울려서 놀고 있고, 웃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친밀감의 띠를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도 어제 놀이터에서 함께 놀았었던 경험 덕분에 그 친구에게 다가가는데 한결 편해진다. 꼬부기를 위해 어린이집 엄마들도 여러 명을 만났다. 기존에 알던 3명 이외에도 3명을 더 사귀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하루 동안 모아서 이 시간에 쏟는것 같았다. 


여러 가지가 시너지로 작용한 덕이겠지만, 꼬부기는 놀이터에서 노는 게 즐겁고 편해진 듯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앉아 딱지치기를 한참 동안 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개미를 잡으며 뭐라 뭐라 얘기도 나눈다. 

이젠 짝 치료가 필요 없을꺼 같다. 다음 주에 선생님한테 가서 우리 꼬부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자랑해야겠다. 


3가지 칭찬하기. 놀이치료, 특수체육, 친구들과 1년 반 동안 같은 반으로 있으면서 함께한 시간들이 쌓이는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비빔밥처럼 섞이며 작용했으리라.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갔다. 소풍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몇몇 남자 친구들과 닌텐도 스위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단다.그 일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우쭐대는 표정으로 얘기하던지.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꼬부기가 "엄마한텐 얘기 안 해줄 거야", "아~기억 안 나" 라며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귀염과 애교를 부리는데 얄미운 게 아니라 기뻤다. 


'그래, 세상은 참 즐거운 곳이야. 친구들을 사귀고 얘기가 통하고 경험과 생각을 나누다 보면 내 마음이 씻길 때도 있고, 힘이 날 때도 있고, 위로를 받을 때가 있지'  


꼬부기가 친구와 우정을 쌓아가니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에 나도 덩달아 진지해진다. 

문득 그런 좋은 친구들이 지금은 내 곁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랜 단짝 친구. 내 허물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옛날 친구는 없는 것 같다. 이제는 꼬부기가 아니라 내가 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할까. 정작 같이 어울려 놀 때는 딴 사람이 된것처럼 오버해서 불필요한 말까지 잔뜩 늘어놓고, 감정도 오버하고 리액션도 크게 하고. 그러고는 진이 빠져버린다. 이러니 힘들어서 혼자 있고 싶은 거겠지. 


문득 1학년 때 처음 입학식 날부터 기억에 생생하게 난다. 기억하는 모든 날들이 이렇게 생생하진 않고, 특별한 날들만이 뇌리에 박혀있는데 대부분은 충격과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남겨있다. 뭐, 웃으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몇몇 순간들도 기억에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나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이제는 괜찮아,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어. 너를 보호할 수 있어. 힘이 생겼다고' 얘기하며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다. 


기억 속 입학식은 수많은 학생들이 운동장에 일렬로 줄을 맞춰 서었다. 선생님들은 교단에 서 있는 교장선생님을 호위하듯 뒤로 학생들과 마주보며 일렬로 서있었다. 키도 제법 큰 나를 선생님은 맨 앞에 세우셨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갈 때 줄을 맞춰 선생님을 따라 들어가는데,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걸어가셨다. 내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학교는 좋은 곳이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질문도 많이 하고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탈이 났던 건지 수업 중에 배가 아프기 시작하며 큰일이 보고 싶어졌다. 보통 때와 다르게 배가 아파왔는데 아마도 탈이 났었던 것 같고,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설명을 하고 계셨고, 모두 조용히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저히 선생님의 말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 그냥, 손만 조용히 들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라고 하면 됐었을 텐데, 아마 그정도는 알았을 테지만, 자신감이 없었겠지. 

그렇게 참고 버티다 그만 옷에 싸버리고 말았다. 

냄새가 났고, 응가는 설사였으니 의자 아래로 분비물이 흘렀다. 


옆에 친구들이 "선생님, 00이 똥 쌌어요"라고 말해주는데, 사랑 많던 그 선생님은 경멸스럽다는 표정으로 "네가 닦아"라고 소리 지르셨다. 

나는 울지 않았고, 휴지로 의자 아래 분비물들을 닦고 집으로 갔다. 그날 엄마가 옷을 벗겨서 씻겨주셨는데, 아무 말도 없으셨다. 그냥, 탄식만 하셨다. 으, 앗 이런 종류로만.

그날 이후로 선생님은 나에게 실망하신 듯 더이상 나를 앞에 세우지 않았고, 친구들은 놀리기 시작했다. 


"숨바꼭질 할 사람 여기여기 잡아라" 친구의 얘기에 손을 잡으면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얘는 빼, 똥 쌌었잖아"

그 친구는 매번 내가 뭔가를 하려 할 때마다 똥 쌌던 일을 꺼내서 못하게 했다. "놀리면 안 돼", "그게 무슨 상관이야?"라고 얘기 해도 되었을 텐데 어린 내 안엔 그런 힘이 없었다. 

나는 이해가지 않았지만 반박할 말을 못 찾았다. '아, 똥을 싸면 어울릴 수 없게 되는 건가보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은 나와 멀어져 갔고, 나는 그 이후로도 간간히 몇 가지 기억이 나긴 했지만, 대부분 수업시간에 딴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고, 2학년, 3학년, 4학년이라는 3년의 시간을 그냥 흘려 보냈다. 그래서 기억이 없다. 4학년 때는 기억나는 게 있는데, 방학 때 선생님의 정갈한 글씨가 가득 담긴 답장을 받았던 일이 기억난다. 그 일은 나에게 큰 자부심을 줬다. 


그리고, 5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알에서 깨어 나오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을 만나 사랑과 인정과 지지를 듬뿍받으면서 5학년과 6학년시기의 기억이 많이 저장되었다. 그리고, 그때에 비로소 단짝 친구도 생긴것 같다. 지금도  간간히 소식을 묻는 (잘 살고 있는지 확인만 하지만) 서로에게 소중한 의미가 있는 친구다. 


나의 경험을 미루어 보더라도 어릴 적 마음이 탄력이 있어서 회복력이 있고, 완전 무너지지 않도록 기초가 잘 쌓여 있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나는 외로웠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의 감정을 물어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서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부엌에서 혼자 일하고만 계셨다. 

집에서 언니와 동생이 있어서 재밌게 놀았지만,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깊은 마음속 어둠과 아픔들을 꺼낼 줄 몰랐었다. 그냥 세상은 씁쓸한 곳이라 생각했다. 나의 경험을 생각하면 우리 첫둥이와 꼬부기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잘 읽고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도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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