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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29. 2022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다.

며칠째 비가 쏟아지고 있다. 오랜 영화인데, 차이밍량의 <구멍>이 생각난다. 영화 내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영화에서는 독특하게도 건물 안에서도 비가 내리듯 물이 쏟아져 내렸다. 스토리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환상처럼 컬러감과 음악이 흐르며 여인이 등장하던 장면들이 기억난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이 등장할 때마다 긴 장마 중에 만나는 햇살같이 아름답고 반가웠다. 지금 딱 햇살을 보게 된다면 영화 속에서 여인을 만날때 느꼈던 기분이 들겠다. 


오늘 나는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뭐, 집에서 아이들에게 폭발하는 것은 다반사였으나 이번에는 밖에서 나의 코치에게 폭발해버렸다. 남들이 보면' 에이 그게 폭발?'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 폭발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오랫동안 버텨오고 있었다. 그들도 내가 할 수 있도록 최소로 편의를 봐주며 일을 맡겼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게 이유를 설명하자면 끝도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올 거 같아서 차마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번아웃이 왔고, 우울감에 잠겨 있다. 그것을 타인의 입술을 통해 들으며 확인하고 나자 더 이상 내가 버티는 것은 미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도 우울증으로 고생해본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원래 허무주의와 염세주의가 있었기에 우울한 정서가 있는 게 특이하지 않았다. 그냥 세상이 재미없고,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알고 있음에도 나의 몸과 마음이 고장나버린 것처럼 힘들다. 

요즘 나도 내가 뭔가 이상해서 자꾸 유튜브에서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나 번아웃이 오는 이유를 찾아들었었다. 그렇게 듣고 나면 감기처럼 면역력이 생기고 나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남편이 없고, 육아를 혼자 도맡아 하면서, 꼬부기와 첫둥이의 훈련되지 못한 행동들을 매일 보며 뚜껑이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하면서 더 심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여유 없을 만큼 팽팽하게 늘어난 고무줄 같았다. 내가 이 줄을 놓으면 아이들이 다친다. 그리고 나도 다친다. 결코 아이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못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코치님은 "나도 짐작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나의 얘기들에서 그런 징후들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고충. 육아와 인생살이의 어려움. 2년간의 코로나.

그리고, 문제는 바로 힘든데도 열심히 하고 있는 나 때문에 힘들었다. 아직도 내 속에서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가 무너져 내리는 구슬을 주어 담으며 '내가 다시 해볼게. 이것만 해결되면 다시 행복해질 거야, 조금만 더 힘 내보자' 라며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슬픔이'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야, 정말 무너져버릴 수도 있어. 차라리, 지금 슬픈 게 나아' 


슬픔 이에게 주도권이 빼앗겼다고 해서 조이가 사라지는 게 아니듯,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니듯 

우리의 인생은 총천연색과 다양한 색깔로 수 놓이고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 탓도 있지만, 뉴스에서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돌아오지 않던 아이와 가족이 모두 주검으로 발견된 소식에 더 우울하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숙소에서 나오면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분리수거를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분리수거할 때, 자신의 에너지 전부를 사용해서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말고, 조용히 끝내자라고 생각했을지도.

이 동네에서 본 적 있었던 것만 같은 낯익은 얼굴의 그 여자아이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못난 나 같은 사람도 아줌마가 될 때까지 살면서 인생이 다채로운 색깔이라는 것을 배워가는데, 그 아이가 다른 색깔을 경험하지 못하고 끝나서 안타깝다. 그 부모들도 다른 색깔을 찾아가도록 살아남았어야 했는데..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끝까지 살아봐야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끝까지 사는 게 힘든 요즘, 힘들어도 끝까지 같이 갔으면 좋겠다. 외로운 인생인데 옆에 있는 그 아무나 사람이랑 서로 의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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