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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내장을 보게 될 줄이야

이토록 힘들고 사랑스러운

by 그래그래씨


피아노는 죄가 없다.
이제 이만 놓아주고 싶다.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남편에게,

“내 친구들이 나보고 작가래~

내가 글을 쓸 테니.... 백수로 살게 해 줄 수 있어?”

라고 물었더니...


“요즘 집에만 있더니,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 같다”며...

오늘은 남편이 저를 가게에 끌고 왔습니다.

(단칸에 세 얻어 구멍가게 하나 운영 중입니다.

자영업이라도 하지요)


가게 제 의자 뒤에

집에서 쫓겨난 피아노 내장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습니다.


30년 전 산 피아노를

껍데기는 테이블로 쓴다고

어느 날 갑자기 해체하더니,

내장은…

그냥 세워뒀나 보더라고요.

(피아노 껍데기에 다리를 붙여서

테이블을 만들 거래요.)


“피아노 내장이 저를 덮칠까 봐

무서워서 일을 못하겠다”라고 했더니...

못으로 고정을 시켜주겠다고 합니다


피아노 내장은 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요?

아시는 독자님들 계시면 알려주세요...


아무래도 남편은

한번 산 물건은 절대 안 버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포함인가요? ㅡㅡ


날... 좀 놓아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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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우리 집 수납장에는

피아노를 분해하면서 우두둑 떨어져 나온…

건반 조각들도 보관돼 있답니다.


왜 안 버리냐고 남편에게 물었더니,

30년 동안 아끼던 피아노라

기념으로 남겨두고 싶대요.


30년 동안

한 달도 안 쳤다던 그 피아노인데…

그 시간들이

이제 와서 애틋해지기라도 한 걸까요?


요즘은

그 건반들이 제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쯤이면… 날 좀 놓아줘.’ 하고요


아이들 3/4 바이올린을 사줘야 하는데,

그 수납장을 볼 때마다

합사 시키려면 피아노건반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고,


‘혹시 3/4 바이올린도 평생 책임져야 하나?’

하는 생각에

선뜻 못 사주겠습니다.





버려지지 않는 물건과
버려지지 않는 감정은
어쩐지 닮아 있습니다.

말은 안 해도
어디 구석에 꼭꼭 숨겨두었다가,
어느 날 툭—
입을 열더라고요.

오늘은
피아노 내장을 보며
내 안의 내장도
한번 꺼내봅니다.
글을 쓰며,
깝깝한 내장이 정리되는 듯한 마술...
역시 털어놓는 게 약입니다.

다들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물건, 마음이 있다면 털어놔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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