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회색, 험난하다. 마지막 학년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학년이 되었습니다. 아까 제가 2학년 2학기 때 논문 주제를 정하라고 했었다는 말 기억하시나요. 네 그때, 논문 주제를 써서 냈고 이제 3학년 개강을 했으니 논문을 써야 했습니다.
개강하자마자 오우 스케줄이 진짜 장난 아니었습니다. 수업 듣기, 수업 및 세미나 준비, 각 과목 formative(점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과제들, 그 사이에 틈틈히 논문 섹션별 (Literature Review, methodology)을 써서 내야 했습니다.
그 다음 full draft (자기가 썼던 내용을 다 제출), 마지막으로 최종 버전을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식과제인 summative 과제까지. 12주 동안 수업 듣기, 수업 및 세미나 준비, formative, summative 과제들, literature review 그리고 methodology 내고 다음학기에 똑같이 내고 full draft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고 최종 논문을 내는 것이 제 마지막 학년 생활이었습니다.
1학기 (12주)
-수업(lecture)/세미나(seminar) 듣기(12주 내내)
-수업/세미나 준비(12주 내내)
-각 과목 formative 과제들 (제 기억으로는 10월-11월 초사이)
-Literature review 제출 (10월)
-Methodology 제출 (11월)
-Ethics forms 제출(연구 계획서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11월)
-각 과목 summative(점수에 들어가는) 과제들 제출 (12월-1월)
2학기(12주)
-수업(lecture)/세미나(seminar) 듣기(12주 내내)
-수업/세미나 준비(12주 내내)
-full draft (2월)
-각 과목 formative 과제들 (3월)
-논문 제출 (4월)
-각 과목 summative 과제들 (5월 초)
각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다른 것들도 같이 하면서 논문 연구하고, 수정하고 해야하는 스케줄입니다. 영국 대학교는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시간 관리 싸움입니다. 스케줄이 저런데 시간 관리가 안되면 진짜 큰일 납니다.
물론 학교에서 논문 위크샵을 해줍니다. 이 섹션은 이렇게 써야하고 저렇게는 쓰면 안 된다고 말이죠. 그러나 이는 큰 틀에 불과합니다. 학교와 교수님들은 도움을 주시기는 하지만 본인이 본인 연구에 대한 목적, 틀이 없으면 학교와 교수님들은 도와주시고 싶으셔도 도와주시기가 힘듭니다.
틀은 학생이 만들고, 그에 대한 질문들은 교수님들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도 논문 워크샵을 듣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한국어로 논문 구성하고 써도 힘든 것을 영어로 하려니 머리가 아주 복잡해졌습니다. 다른 에세이들과는 달라서 감이 잘 안 왔습니다. Literature review( 한국어로 하면 문헌 검토라고 합니다)를 써야하는 데 다른 섹션도 그렇지만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논문 주제에 대한 백그라운드 즉 배경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전 연구들은 어떠한 방법 혹은 결과를 얻었는지, 이전 연구들의 장점과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왜 내 연구가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어필을 하고 소개해야합니다. 이전 연구에서~~~이러한 점은 잘 했지만 ~~~이러한 점은 부족했다. 그러나 내 연구는 이러한 점을 중점적으로 파고들려고 한다. 그래서 내 연구가 필요성이 있고 중요하다. 대충 이러한 식으로 설명을 해주어야 독자들이(교수님들) 왜 이러한 연구를 하고 이 연구 주제를 정했는지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짜 거짓말 안하고 거의 자료 100개 정도는 읽고 요약하고 한 것 같습니다. 거의 100장 되는 논문에서 20-30장정도가 reference list 참고 문헌이거든요.
특히 에세이, 논문 쓸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저자는 그 내용을 계속 보고 쓰니까 저자가 이것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 뭘 쓰려고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쓰다보면 저자가 독자도 당연히 알겠지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발생합니다. 에세이도 마찬가지고 논문도 독자의 눈높이에서, 입장에서 생각하고 써야합니다. 이 주제를 한 번도 보거나 연구하지 않는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을지를요. 무조건 어려운 말/ 단어 많이 썼다고 좋은 글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 입니다.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서 쓸 것은 많고, 할 것도 많고 시간도 빨리 가니 그야 말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외국어로 써야하고, 자료 읽어야 할 것도 많고, 분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지,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것도 다 저 혼자서 해야했으니까요. 다시 생각해보아도 머리가 지끈지끈 거립니다. 3학년은 거의 대부분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도서관 가서 맨날 노트북 타이핑하고 숙사에서도 타이핑하고 그러다보니 신체에서 신호가 오더군요.
네, 신체가 망가지는 신호요. 손 피부도 다 까지고 손목 보호대를 쓰고, 거짓말 안하고 저 탈모 왔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침대를 보면 누가 제 머리카락을 뜯어놓은 것처럼 침대에 머리카락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진짜 해탈의 경지에 다다랐던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학년 때는 나 혼자만 그런 건인가? 였다면 이때는 모두 다 학과를 막론 하고 모든 마지막 학년 학생들이 다들 힘들었으니까요. 그래도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라는 마음으로 3학년을 질주 했습니다. 한 때는 이런 걱정도 했었습니다. 내 논문, 통과하겠지?? 그래도 50%는 넘어야하는데. 누가 보면 바보같은 걱정이라고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국 대학 점수 체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절실했고, 죽기 살기로 했었으니까 저 걱정을 하지 않았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학년 때는 사람 몰골로 안 다니고 좀비로 다녔습니다. 다른 학년 때와 달리 화장도 안하고, 마스크 쓰고 다니고 그랬지요. 지나가서 본 다른 학년 학생들, 특히 1학년 학생들은 너무나 활발하고, 생기발랄하고, 반짝반짝 거리더군요. 저와 다르게 말이에요. 한편으로는 나도 1학년 때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알았는데 또 스멀스멀 불안한 기운이 보였습니다. 네, 슬럼프의 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슬럼프라기 보단 지금 보면 저를 찾아가는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에 겪었던 고민이 난 앞으로 어느 분야로 나가야 하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였습니다. 생각할 때는 이 분야가/ 이 일이 나와 맞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나랑 전혀 맞지 않고. 정작 나랑 안 맞다고 생각했던 분야나 일이 나와 맞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전 불안했었습니다. 논문은 쓰고 있고, 졸업은 다가 오고.
대학생이긴 하지만 단순히 학생이라기 보다는 학생이면서 성인이기도 하니까요. 홀로 서야한다. 그러나 난 아직 100% 홀로 세상을 걸어가기에, 완벽하지 않은데, 한편으로는 미래를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했었습니다. 영국은 저에게 애증의 나라여서, 더 그랬는지 몰라도.어떤 날에는 좋다가도 어떤 날에는 내가 여기 있어야하나? 한국으로 가야하나? 라는 고민도 했었습니다.
이런 시간이 한창 바쁜 시기에 찾아 왔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과 시간을 겪어야 하는 것인데. 그 당시는 가득이나 바쁘고, 정신 없는 와중에 오니 엄청 힘들었습니다. 이 감정을, 생각을, 불안을 어떻게 대처하고 절 다시 refresh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친구들하고 1학년이나 2학년처럼 같이 놀러다녔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놀자고 하기에는 친구들도 너무나도 정신이 없고 바빴습니다. 그냥 힘들다. 힘들다. 할 수 있을까인 생각과 불안/걱정인 시기를 보냈습니다. 진짜, 마지막 학년에는 걱정 인형이 여러개 있었어야 했나 싶네요.
마치 비가 막 쏟아지기 전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요. 그래서, 제 마지막 학년을 색깔로 표현하면 회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