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라는 사람
11장. 내 어머니라는 사람
– 엄마를 다시 엄마라 부르기까지
늘 ‘권사님’, ‘장로님 사모님’, ‘누구의 어머니’로 불리던 어머니.
신앙 안에선 존경받는 분이었고, 가족 안에선 중심이셨지만
정작 한 사람의 ‘엄마’로 온전히 불리던 시간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에게 어머니는 강인하고 부지런한 분이었다.
잠든 새벽에도 기도하셨고, 자식들이 다 자란 뒤에도 도시락을 챙기고,
집안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처럼 고된 삶을 감당하시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는 말씀 없이, 언제나 단정하고 침착하셨다.
하지만 병이 깊어지면서 남편은 처음으로
어머니의 작고 연약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요양원 면회길,
어머니는 더 이상 ‘사모님’도, ‘권사님’도 아니셨다.
자꾸만 작아져가는 존재.
어릴 적 자신을 안아주던 손길처럼,
이젠 아들이 그 품을 감싸 안아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 아들… 엄마가 미안하다”
그 한마디에 남편은 오래도록 삼켜왔던 단어를 꺼냈다.
‘엄마.’
남편 마음속에 어머니는 언제나 완벽한 분이었다.
고운 한복 차림으로 교회에 가장 먼저 도착해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시던 모습.
깨끗하게 다려진 옷, 반듯한 머릿결, 조용한 미소.
그 모습은 늘 ‘존경’이라는 단어로 기억되었다.
궁평항 횟집에서,
어머니는 회보다 아들의 지갑 사정을 먼저 걱정하셨다.
“괜찮다”는 아들의 말에도 메뉴를 줄이시고
정작 본인은 거의 드시지 않으셨던 날.
남편은 그때를 떠올리며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그 조용한 배려가 얼마나 깊은 사랑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묵묵한 기도와 봉사가
자신을 내려놓고 가족을 품어낸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그립고, 더 미안하고, 더 아프다.
어머니의 마지막 자리가
그분이 평생 바라셨던 ‘평안’이기를,
남편은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