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잇는 하루
12장. 기억을 잇는 하루
– 비워진 자리를, 사랑으로 채우며
한여름, 결혼 전 처음으로 남편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던 날이 아직도 선하다.
어머님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팔을 걷어붙인 채, 포도알을 하나하나 닦아 통에 담고 계셨다.
그렇게 포도주를 담그고 계셨는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낯설고 조금은 무서웠다.
그런데 어머님은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어서 와라” 하며 웃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미소 하나가 전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어머님은 내 결혼의 시작을 함께 준비해 주셨다.
혼수 장만부터 신혼여행 준비까지,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시집온 어린 며느리였고, 솔직히 믿지 못할 구석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나 같은 며느리는 만들지 않겠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삶을 가르쳐주셨다.
친정에서 보낸 시간보다 어머님과 함께한 세월이 훨씬 더 많다.
이젠 친정엄마가 담가주신 김치보다 어머님 김치가 더 익숙하고, 더 맛있다.
그런 내가 가끔 철없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젠 정말 마음이 간다.
누구보다 날 예뻐해 주셨고, 누구보다 잘 살 거라고 늘 응원해 주셨던 분.
결혼 후 세 아들의 산후조리도 어머님이 손수 해주셨다.
친정이 멀고, 장사하느라 바쁜 친정엄마를 대신해
아무 말씀 없이, 기꺼이, 기쁘게, 따뜻하게 도와주셨던 분.
그 모든 순간이, 지금도 하나하나 생생하다.
지금 나는 그 기억들 위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비어버린 자리에 어머님의 기억이 남아 있고,
그 기억 덕분에 나는 여전히, 따뜻한 하루를 지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