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깊은 가르침, 그 이름 ‘어머니’
말보다 깊은 가르침,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님은 자녀를 반듯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다.
크게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그분이 살아온 방식 자체가 자식들에게는 ‘가르침’이 되었다.
남편은 늘 진중한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내기보단 속으로 책임을 다하는 사람.
아버님께선 보여주지 못했던 자상함과 섬세함,
어머님이 삶으로 보여주셨던 부지런함과 곧은 마음을 그대로 닮았다.
가족을 아끼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전하는 사람.
누가 봐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 말할 만큼
남편은 어머님의 삶을 삶으로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다.
남편의 누나이자 어머님의 장녀인 고모 역시
믿음 안에서 참 곱게 자라났다.
시부모님을 공경하며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어디를 가든 “참 바르게 컸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어머님은 종종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딸이야”라고 하셨다.
자랑이자 말동무였고,
어머님의 마음이 가장 편히 놓일 수 있는 존재였다.
어머님은 표현은 적으셨지만,
자식 앞에서는 늘 단정하고 흔들림 없었다.
그 모습은 말보다 깊은 교육이 되었고,
그 자식들은 어머님의 마음을 배워
저마다의 삶에서 뿌리처럼 단단하게 서 있다.
사람들은 그랬다.
“그 자식들, 참 잘 컸다. 잘 배웠다.”
그 말 안에 어머님의 수고와 삶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가르침을, 가까이서 오래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살림도, 예의도, 삶의 방식도, 심지어 믿음까지도
하나하나 어머님께 배우며 자랐다.
어머님의 기준에 완전히 들진 못했겠지만
나는 순종했고, 조용히 그 집안의 색을 닮아갔다.
그렇게 착한 며느리로, 말없이 그 가정에 스며들 수 있었다.
어머님께는 말보다 삶이 먼저였고,
그 삶이 내게는 가장 깊은 교과서였다.
가끔은 두렵고, 때로는 답답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어머님을 통해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운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