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다. 시댁 먼저였던 나날들
돌아보면, 다 시댁 먼저였던 나날들
– 가족보다 시댁을 먼저 챙겨야 했던 맏며느리로서의 고단한 우선순위
명절은 늘 어머님 댁이었다.
아버님의 형제들이 모이는 자리,
대가족의 법도라며 늘 그 집이 중심이 되었다.
거실이며 방 안이며,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며느리로, 조용히 일손을 보태야 했다.
상 차리고, 상 걷고, 설거지하고, 또 음식을 만들고,
그 반복의 시간 속에서 허리와 다리는 물론, 마음까지 무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2층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친척들이 모여드는 명절이면 나는 힘들었다기보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 많은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소극적인 내가 설 자리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고,
쉴 틈도, 숨 돌릴 틈도 없이 어색함과 긴장 속에서 움직여야만 했다.
장남인 아버님은 ‘집에 다 모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셨다.
술상은 빠지지 않았고, 음식은 ‘바리바리’ 넉넉하게 준비되어야 했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어머님의 몫이었고,
어머님은 몇 달 전부터 냉장고와 냉동실을 점검하며
음식 재료들을 하나둘씩 미리 준비해 두셨다.
특히 아버님은 김치도 겉절이처럼 ‘방금 한 것’을 좋아하셔서,
명절 아침이 되면 어머님은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양념을 버무리고 배추를 절이고, 장독을 들여다보며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 겉절이를 내놓으셨다.
나는 어머님이 앉아서 쉬시는 모습을 명절에 본 적이 없다.
늘 부지런히 움직이셨고, 손끝은 바빴고,
표정은 단단했다.
그 시절, 어머님은 당신 자식보다 시댁을 먼저 챙겨야 했던
맏며느리였고,
나는 그런 어머님의 등을 보며
‘가족보다 시댁이 먼저였던 시간들’이
당연했던 시절을 배워야 했다.